'은유'란 삶에 대한 태도

걷다가 든 생각

by 낮별

매일 반복되는 일상, 인간의 뇌는 반복되는 일상의 기억을 삭제한다고 한다.

365일 중 300일이 별 새로울 것 없는 일상이라면 300일의 기억은 사라진다는 얘기다.

그래서 한 해가 끝나는 지점에 가면 아연실색하며 놀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매일 새로운 경험을 해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하루 어떤 시간이라도 기록해 보는 것은 그 하루를 기억하는 좋은 방법이 되기도 한다.


어제 해가 뉘엿뉘엿 저문 후에서야 혼자 산책을 나섰다. 늘 가는 6킬로 코스이다. 낮 동안 뜨거워진 기온 탓에 해진 후에 산책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 많은 사람 속에 특색 없이 섞여서 바삐 걸었다.

혼자 걸을 때면 별의별 생각들이 다 찾아온다. 마중물이 되는 것은 누군가와의 대화이기도 하고, 어떤 책에서 읽은 한 줄의 글이기도 하고, 산책 나온 사람들의 모습이 되기도 한다.


나는 '문학, 내 마음의 무늬 읽기'에서 본 '은유'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심리학적 측면에서 한 사람이 쓰는 은유는 삶에 대한 그의 고유한 이해를 알려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삶은 축제'라는 은유를 가진 사람과 '삶은 지옥'이라는 은유를 가진 사람,

'사랑은 여행'이라는 은유를 가진 사람과 '사랑은 전쟁'이라는 은유를 가진 사람,

이렇게 서로 상충되는 은유를 가진 사람들끼리의 관계에서는 일종의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한다.


은유의 상충이라고 했지만 이건 삶에 대한 다양한 가치관의 상충을 말하는 것일 테다.

이를테면 긍정적 vs 부정적, 결정론적 vs 목적론적, 자기 주도적 vs 의존적, 내향적 vs 외향적, 이런 태도의 문제이다. 그에 비하면 짜장이냐 짬뽕이냐, 찍먹이냐 부먹이냐 하는 취향의 문제는 정말 사소한 문제다.


하지만 삶에 대한 다양한 가치관이 모두 일치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방향이나 정도에 있어서 조금씩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것을 서로 맞추어 나가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 삶의 여정이다.


며칠 전, 나는 남편에게 질문했다. "당신은 살면서 나한테 영향받은 거 있어?"

남편은 무엇을 딱히 무엇에 영향받았다는 구체적인 답변은 하지 않았지만 1초도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남편과 내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나 역시 남편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고, 내 삶은 남편으로 인해 달라졌다.


일단 눈에 보이는 것은 취향이다. 내가 엘지트윈스의 광팬으로 살면서 월요일을 제외한 다른 요일에 야구로 인해 감정의 기복을 겪으며 살아가는 것, 뜨끈한 국밥에 소주 한잔의 기쁨을 알게 된 것은 보이는 변화이다. 나는 남편 때문에 블록버스터 액션 무비들을 보고 스트레스를 풀고, 남편은 나 때문에 잔잔한 영화를 보며 뜻하지 않은 힐링을 얻는다.


태도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그래서 알아차리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태도 역시 25년 긴 세월을 함께 보내면서 삐걱대고 충돌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는 함께 태도를, 은유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굳이 하나를 골라 기꺼이 그러기로 결심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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