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남의 귀환
종강을 했다며 큰 아이가 집으로 들어왔다. 종강을 해도 학교 근처 자취방에서 방학을 보내곤 했는데 이번엔 어쩐 일인지 이번 방학은 집에서 보낼 거라며 미리부터 선전포고를 해뒀었다. 그러더니 정말 마지막 시험을 끝내자마자 집으로 짐을 싸가지고 들어왔다. 아들 얼굴 많이 보는 건 너무 반갑고 좋은 일이지만 전적으로 좋기만 한 건 아님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일단 아들이 없는 틈을 타 아들의 방을 내방으로 점거하고 있는 터라, 나의 공간을 뺏기는 것이 가장 큰 타격이다. 아들이 돌아오겠다는 얘길 듣는 순간 뇌리에는 '그럼 나는 이제 어디서 자야 하나?' 밤새 드르렁드르렁 코골이 폭격을 귓전에다 해대는 남편 옆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폭 1미터인 책방에서 잘까 싶어 누워봤는데, 책이 빼곡히 꽂힌 책장이 나를 덮칠 것 같은 불안이 느껴졌다. 꽂아두고 수 년째 거들떠보지도 않은 책들의 저자들이 밤새 내 목을 조를지도 모른다.
그리고 큰 아들이 어느덧 손님같이 어려워지기도 했다. 내 품을 떠난 지 어언 6년째, 알레르기 비염으로 고생하는 아들이 집에 온다고 하면 미리부터 침구류 세탁에 대청소에 분주하다. 작은 아이랑 둘이 먹는 단출한 식탁차림으로는 괜히 미안해서 장을 보고 이것저것 평소에 하지 않던 짓을 하게 된다. 그러니 이 여름 큰 손님맞이하는 기분이 들기도 해서 살짝 귀찮음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엄마가 이런 마음인 걸 알면 많이 서운 할 것 같아서 절대 내색하지는 않는다.
이번 방학에는 집에 있으면서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에서 운동도 매일 하고, 자격증 공부를 할 거라고 했다. 4학년이 되더니 방학을 알차게 보내려는 포부가 생겼구나 싶었는데, 동생이 아침부터 분주하게 등교한 이후인 지금도 여태 자고 있다. 첫날이니까 잔소리하지 않고 내버려 둔다.
어제저녁을 먹으며 두 아들이 서로 대화라는 걸 하는 걸 보고 있으니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두 아이의 나이차는 자그마치 열한 살 차이가 난다. 둘째가 태어났을 때 큰 아이는 번데기같이 속싸개에 돌돌 말린 동생을 안고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표정을 지었었다. 그 후로 형은 제3의 보호자 역할을 성심성의껏 했었다. 나는 그 시절 두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때가 내 인생 최고로 아름다운 장면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큰 아이는 의젓하고 믿음직스러웠고, 작은 아이는 말도 못 하게 사랑스러웠다. 항상 보살핌의 대상이기만 했던 동생이 자라서 키가 훌쩍 커지고 서로 대화라는 것이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둘을 바라보면서 흐뭇해하며 내가 말했다.
"그거 알아? 다음 대통령 선거 때는 얘도 투표권이 있단다."
큰 아이의 반응은 전혀 예상밖이었다.
"대통령 선거를 왜 꼭 5년 후에 할 거라고 생각해? 그전에 할 수도 있지."
와 씨, 이 자식도 이대남이었다.
두 아들의 모습에 훈훈해하던 마음이 갑자기 얼음짝처럼 차가워졌다.
아들과 총리후보 청문회 얘기부터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원, 기본 소득에 이르기까지 서로의 의견차이를 확인했다. 정신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아들에게 몇 마디 말을 하다 말고 다른 얘기로 화제를 전환했다.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남편이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용돈을 끊으라고 했을 것이다.
나는 요즘 정말 이해하고 싶은데 이해가 잘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TK, 이대남, 강남부자들의 심리이다.
이들의 심리를 파악해 보고자 전문가들이 떠들어대는 설명을 들어봐도 어느 것 하나 뾰족하게 납득이 되질 않는다.
심리학 공부를 하다 보니 인간의 행동은 '내면의 결과'이기보다는 '상황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들의 행동은 각자 사고한 결과가 아니라, 그들이 공통적으로 처해있는 어떤 상황 때문이라는 얘기다. 내가 그 상황에 처해있지 않으니 그들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