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부조화(행동과 태도의 부조화) 탓이었다
저녁을 일찌감치 먹고 혼자 집을 나섰다.
인지부조화 문제를 다루는 팟캐스트 한편을 플레이시키고, 스마트워치 걷기를 설정했다.
비 온 뒤라 공기는 상쾌했고 선선한 날씨라 걷기 무척 좋았다.
탄천에 흐르는 물도 적당히 불어나 경쾌했다.
사람의 인지부조화는 흥미로운 주제이다.
자신의 행동과 태도(감정)가 일치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내적인 압박을 느낀다. 이런 부조화를 어떻게 서든 조화시키기 위해 이미 벌어진 행동은 수정할 수 없으니 태도(감정)를 수정하게 된다. 즉, 자기 합리화다.
얼마 전 나는 식탁을 구매했다.
13년 사용한 식탁이 다리가 흔들리고, 상판 상태가 말이 아니라 도저히 더는 쓸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식탁 의자 다리 상태도 언제 무너져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다. 식탁을 바꾸기 위해서 몇 달 전부터 시장 조사에 나섰다. 인터넷으로 보니 다 그럴듯해 보여서 직접 매장을 찾아 방문했다. 인터넷으로 본 것과는 실제로 그 질감이나 앉았을 때의 느낌이 제각각 달랐다. 그런데 보다 보니 자꾸만 눈이 높아졌다. 처음 예산은 이백만 원 선이었는데 자꾸 예산이 올라갔다. 고무나무보다 물푸레나무가 좋았고, 물푸레나무보다 호두나무가 훨씬 좋아 보였다. 호두나무가 눈에 들어온 이상 다른 선택지는 사라졌다. 중국산, 베트남산 보다 국산이 훨씬 견고해 보였다. 국산을 제외한 다른 선택지가 사라졌다.
매장 투어를 두 달에 걸쳐 세 번을 하고 나서야 마음을 먹고 결제를 할 수 있었다.
처음 예산 이백만 원에서 두 배가 오른 금액이었다.
결제를 하면서도 대학원 등록금도 내야 하는데 이게 맞는 걸까 내심 마음이 심란했다.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괜찮아. 어떻게든 되겠지. 식탁은 한 번 사면 10년 이상 쓸 것이고, 나는 주로 식탁에서 온종일 앉아 책 보고 공부하니까 좋은 거 써도 돼. 그리고 열심히 집밥 해 먹으면서 아끼지 뭐.'
가구 단지가 아닌 백화점에서 둘러볼 때는 진짜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식탁 가격이 비쌌다.
천만 원은 아주 우습게 넘어가는 걸 보면서 얼른 자리를 떴었다. '거기 비하면 저렴한 거지 뭐'
아직 식탁은 배송전이다. 새 식탁을 받아 즐김과 동시에 카드대금 결제의 고통도 시작될 것이다.
인지부조화를 들으면서 저질러놓고 열심히 자기 합리화를 했었던 일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해질 무렵, 탄천을 3킬로쯤 걷다가 발바닥 통증이 느껴져 잠시 쉬려고 산책길을 벗어나 언덕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산책길을 걷던 한 사람이 나를 흘끔 올려다보더니 방향을 바꾸고서는 언덕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왜소한 체격에 검은 옷을 아래위로 입고 있었고, 긴 검은 머리, 검은 마스크를 끼고 있어서 나는 순간 여자라고 생각했고 별 경계심 없이 벤치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니 여자가 아니고 남자였다. 검은 콧수염 턱수염이 얼굴 하관을 다 가리고 있어서 멀리서 봤을 때 검은 마스크라고 착각했던 것이고. 그냥 척 보기만 해도 엄청난 두려움이 생겨나는 외관이었다. 내 앞에서 걸음을 서서히 늦추며 나를 지나치는데, 그 순간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 사람에게서 나는 끔찍한 악취였다. 천변을 운동하며 흔히 맡는 땀내와는 다른 악취였다. 나는 숨을 멈췄다. 벗어놓은 운동화를 얼른 찾아 신어야지 하는데 몸은 움직이지가 않았다.
눈을 마주치면 안 될 것 같아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아무렇지 않은 척,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고 앉아 있었다. 그 사람은 나를 흘끔 보더니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멀어져 갔다. 그 사람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지자 나는 얼른 운동화를 신고 잰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수염을 깎지 않았고 세수도 하지 않은 것이 분명한 얼굴이었다.(...) 삐쩍 마른, 근육이라고는 1그램도 없을 것 같은 빈약한 몸의 어디에도 기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 이승우 <사이렌이 울릴 때>
잠자리에 들어 읽은 단편소설 속 문장이 그 사람을 다시 소환시켰다.
소설 속 남자는 천재작가 '이상'을 떠올리게 한다.
어쩌면 악취를 풍기며 내 앞을 지나간 그 검은 남자도 별 다른 악의 없는 그저 자유로운 영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