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도 될까요?

"생일 축하해"

by 낮별

작년 여름부터 시작이었다. 쭈그리고 앉았다 일어날 때 왼쪽 다리오금 부위가 찌릿한 느낌, 그게 시작이었다. 점차 그 증상은 왼쪽 다리 전체로 퍼져나가면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으로 괴로웠다. 정형외과, 한의원, 마취통증의학과를 전전하다 어느 날 허리 MRI를 찍고 그 통증의 원인이 허리 추간판탈출증 증상으로 인한 하지 방사통이라는 진단을 들었다. 그리고 겨울 무렵 멀쩡하던 오른쪽 다리까지 증상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끔찍한 허리 신경 주사 두 번 맞고는 방사통을 치료하기 위한 병원 방문을 중단했다.


의사도 그렇게 말했고, 인터넷에 널려있는 정보가 모두 그렇게 말했다. 운동만이 살 길이라고.

그래서 나는 달리기를 시작했고, 한 달을 매일 4킬로 이상 달린 끝에 발목터널증후군을 추가로 얻었다.

달리기를 멈추고 매일 걸었다. 지난 6월 한 달 동안 410,000보를 넘게 걸었으니 걷기에 대한 내 의지는 대단했다.

달리고 걷는 동안에도 방사통은 계속되었다. 앉아 있는 것보다 걷기라도 하는 편이 훨씬 견디기 나았기에 아파도 걸었다. 그러는 동안 오른쪽 발등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참아보려고 했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통증이 덜해지기는커녕 점점 더 아픈 부위가 넓어졌다.


결국은 어제 다시 병원을 찾았다.

이번에는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정형외과다. 예상했지만 X레이 촬영 결과는 이상무이다. 신경 쪽 염증 가능성이 있으니 혈액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검사 결과가 나오자면 며칠 시간이 걸린다고 했고, 일단 아픈 부위가 발목에서 엄지발가락으로 이어지는 힘줄 부위에 퍼져있으니 발목에 주사를 한 대 맞아보라고 권했다. 그래서 주사를 맞았다. 주사는 조금 아팠지만 참을만했다. 새로 생긴 병원이어서 시설은 깨끗했고, 물리치료에 도수치료 10분 추가 서비스까지 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환자가 많았다. 주사를 맞고 나니 발등 통증이 주사를 맞기 전보다는 조금 나아진 느낌이 들긴 한다.


말끔하게 아무 통증 없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한동안 내 몸상태를 생각하기만 해도 우울했다.

그때 <명상록>에서 이런 구절을 만났다.


에피쿠로스는 이렇게 말했다. "병에 걸려 누워 있을 때에도 나는 내 육신의 고통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았고, 문병을 위해 나를 찾아온 사람들과도 그런 대화를 나누지 않았으며, 도리어 여전히 자연의 원리들에 대해 논했고, 특히 어떻게 해야 정신이 육신의 움직임과 변화에 공감하면서도 침착하게 자신의 선을 흔들림 없이 추구할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내 몸상태에 대해 그간 너무 많이 생각했고, 사람들에게도 너무 많이 얘기했구나. 에피쿠로스에게서 이런 깨달음을 얻고 나서 나는 더 이상 아프지 않은 사람처럼 행동했다. 내가 말하지 않으니 주변 사람들은 내가 다 나았다고 생각했다. 멀쩡하지는 않아도 멀쩡한 것처럼 인식되는 것은 괜찮은 기분이었다. 에피쿠로스처럼 행동하니까 우울감도 줄어들었다. 비록 철학을 논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어찌 됐건, 잘 다루고 다듬어서 수십 년 나의 영혼을 실어 다니는 몸으로 살아야 한다. 불편한 통증도 나이 들어 생기는 주름처럼 받아들이고 잘 다스리며 살아야 한다. 발목 주사를 맞고 나서 의사에게 물었다.

"걸어도 될까요?" 내가 걸어도 되겠냐고 물은 의도는 하루 만보 이상 걷는 운동을 계속해도 되겠냐는 의미였는데 의사는 "그럼요, 일상생활 하셔도 됩니다. 만보 걷기나 달리기는 하시지 마시고요"라고 대답했다.


이로써 나의 걷기 생활도 당분간 쉬어야 한다. 이제 무슨 낙으로 살지?


발목 주사를 맞고 나니 괜히 절뚝거리면서 마트에 가서 장을 봐와서 남편의 생일 상을 소박하게 차렸다.

미역국을 끓이고, 잡채를 만들었다. 애들이라 바비큐 파티를 할까 계획해 놨었는데, 작은 애는 학원 가버리고, 큰애는 친구와 영화를 보기로 약속했다며 나가버렸다. 남편과 나는 둘이서 넓고 넓은 식탁 위에 미역국에 잡채, 반찬만 두어 가지 덜렁 올려두고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나니 산책을 나가야 할 것 같았는데 참고 야구 중계를 봤다. 남편의 생일날, 그래도 엘지가 겨우겨우 이겨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여보,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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