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책일 뿐

종교가 되어서는 안 된다

by 낮별

엊그제 주문한 책이 도착했다. 해킹 사태로 시끄러웠던 예스 24에서 모든 고객들에게 사과 쿠폰 5000원을 소리소문 없이 한시적으로 제공했다는 걸 운 좋게 알아버렸다. 그 기간 내에 알아서 찾아 먹든지 말든지, 그 난리통에도 예스 24를 다시 찾아준 고객들이나 혜택을 받던지 하라는 얘기다. 소문을 듣고, 5000원을 찾아 먹으려고 장바구니에 잔뜩 담아둔 책 중에서 세 권을 골라 주문했다.


매달 5만 원에서 많게는 10만 원까지 책을 구입하는 편이다. 집에 책이 너무 많이 쌓이면서 요즘은 가급적 5만 원 이내에서만 구입을 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내 장바구니에는 심리 분야 책들이 대거 담기기 시작했고, 대학원 입학 전 두 달 동안 읽고 싶은 책들이 줄지어 아우성이다. 이 분야의 고전이라고 일컫는 책들을 거의 접해본 것이 없으니 심리 필독서라는 책들, 대가들이 쓴 책들이 자신을 읽어야 한다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중이다. 심사숙고 끝에 세 권을 골라 담았다.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 어빈 얄롬의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이다. 그리고 한 권은 다음 달 독서 모임 책인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이다.


택배로 새 책을 받아 들었을 때 미세한 떨림을 느낀다. 외형적으로는 책 커버는 어떤 디자인일까? 책 두께는? 그리고 처음 읽어보는 저자의 책이라면 그 떨림이 좀 더 명확해진다. 어떤 사람을 알게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책 속에는 한 사람의 가장 정제된 영혼이 담겨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니 처음 맞이하는 영혼과의 조우에서는 긴장과 설렘이 교차한다. 어제 도착한 꾸러미 속에서 제일 먼저 펙과 얄롬의 책을 집어 들고 펼쳐보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두꺼워서 순간 아찔해졌지만 문체가 편안해 보여서 다행이다. 펙과 얄롬의 책은 처음이라 처음 맞이하는 손님처럼 환대를 받았으나 익숙한 유시민 작가의 책은 뒤로 미뤄두었다. 유시민 작가를 좋아하는 남편이 먼저 덥석 낚아채 갔다. "먼저 읽고 줄게." 책 읽는 아들 보듯 흐뭇했다.


얄롬의 책을 먼저 읽기 시작했다. 내가 왜 그동안 이 책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소설이다. 읽으면서 이미 얄롬의 다른 책들까지 결국 사모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책 소비에 대한 가계 지출은 줄기는커녕 점점 더 늘겠구나 예감했다.


언젠가 매달 5만 원 정도 책을 구입하고 있다는 내 얘기를 들은 한 지인이 내게 대뜸 그랬다.

"그 돈으로 소액 적금이나 하나 더 들지 그래요?" 난 그 순간,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그 순간 내 마음은 왜 모욕감을 느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게 그럴만한 일인지...

우리는 너무 다른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하고 넘겼어도 될 일인데 순간 모욕감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 내색은 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갔다. 사람 사이에 그런 순간들이 반복되면 사이는 저절로 멀어져 갈 수밖에 없다.


일을 관두고부터 시작된 것 같다. 내가 책에 많이 의존하고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는 동안 나에게 책은 종교와 같아졌다. 그래서 내가 선택하여 읽고 있는 책에, 내가 읽고 너무 좋았던 책에 누군가가 반기를 들고일어나면 그렇게 마음이 상하기도 했다. 그런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 마음 상함은 전적으로 내 문제라는 것을 인식했다. 다른 사람들의 다른 마음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책에 대한 나의 절대적 믿음이 문제였던 것이다. 소액 적금이나 들라는 지인의 대답도 웃고 넘어갈 일인데 나는 마치 나의 믿음을 부정당한 사람처럼 울컥했다. 책은 책일 뿐, 종교가 아니다. 책에 관하여 어떤 다양한 생각도 가능해야 한다. 그게 책 읽는 사람의 올바른 마음이다. 좀 더 유연한 마음을 가져야겠다 마음먹었다. 내가 유연해지면 그렇게 멀어져 간 관계도 다시 회복될지도 모른다. 그럴 인연이라면 그래지겠지. 조금씩 맞지 않아도 다른 좋은 장점이 많은 사람들인데 나의 옹졸함과 편협함으로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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