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 우정은 어려워
가까웠었는데 조금 멀어진 인연에 대해, 다시 가까워질 인연이라면 그래지겠지, 내가 좀 더 유연해져야겠다,라고 썼던 그 순간 떠올렸던 사람에게 망설임 끝에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이야, 잘 지내지?" 겉도는 안부와 근황토크를 하다 더는 할 말이 궁색하여 통화를 마무리하려는데 그녀가 황급하게 말했다. "우리 만나야지?"
그렇게 만났다. 거의 세 달만이다. 한때는 매주 만나서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던 시절도 있었다. 만남의 텀이 길어진 만큼 대화와 대화 사이 공백이 길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내가 내뱉을 말들을 미리 머릿속에서 뇌어 보기도 했다. 자기 검열이었다.
꽤 오랜 세월, 아무렇게나 떠들어도 맘 상하지 않을까 혹시나 내 말을 오해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 따윈 하지 않았었다. 무슨 얘길 해도 뒷말 날까 걱정되지 않았던 사이였다. 분명 유안진 시인이 꿈꾸는 지란지교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었다. 말하기 전 자기 검열 따위는 없었다.
몇 해 전 어느 봄날 오후였다. 루프탑 카페에서 맞춤했던 햇살과 바람, 다정한 사람들, 편안한 대화, 사람과의 관계가 이 정도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싶게 행복감이 차올랐던 순간에 나는 농담처럼 고백했었다. "우리 늙어서도 계속 이렇게 만나자. 사십 대를 너희들과 온통 보냈으니 앞으로도 책임지고 놀아줘야 한다. 이제 새롭게 사람 사귈 자신 없으니까."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른 후 그 단단했던 결속력은 느슨해졌고, 친밀감은 흐려졌다. 어떤 하나의 이벤트가 있었긴 하지만 그것만이 전적으로 이렇게 된 이유였다고 볼 수는 없다. 상처 주려고 아무도 의도하지 않은 말이라 상처가 되었을 거라고 짐작조차 하지 못한, 그런 순간들이 분명 서로에게 있었을 것이다. 미처 몰랐던 마음 상함은 한결같기를 바랐던 기대에 미세한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이런 것들이 모여서 어떤 이벤트에 예전처럼 의연하게 넘기지 못했다. 작은 오해가 큰 상처로 남기 시작할 무렵 오랜 시간 아무런 문제 없이 서로를 받아들여왔다는 사실이 차라리 기적처럼 느껴졌다. 오해를 풀기 위해 말을 할수록 이상하게 어긋남을 느꼈다. 인연의 수명이 다한 것인지도 몰랐다. 어쩌면 모두가 갱년기에 접어들고 있었으니 호르몬이 한 짓인지도 모른다. 약속이나 한 듯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누군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끝날 인연이었나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 루프탑 카페에서 농담처럼 건네었던 그 말이 생각날 때면 특히나.
오랜만에 만난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마치 내가 하고 있는 말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함께 했던 그 긴 시간 좋았던 추억들 덕분에 사십 대를 건강하게 지나왔다고, 그 힘으로 이제 오십 대를 씩씩하게 맞이하고 있다고, 지나치게 예민한 걸까 자신을 탓한 순간도 있었지만 이제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했다. 최종적인 작별 인사 같기도 하고, 들끓던 마음이 마침내 고요에 이르렀다는 자기 고백 같기도 느껴지는 그런 말을 들으면서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말을 고르고 있는 나에 비해 그녀는 비교적 담대해 보였다.
헤어질 때 우리는 서로 밥값을 내겠다며 고집을 피워댔다. 예전에는 더치페이를 칼같이 했었는데, 서로 밥값을 계산하겠다고 설치는 모양새도 참 낯선 모습이었다. 정말 많은 것이 변했다. 더치페이를 칼같이 할 수 있는 사이가 정말 허물없이 편한 사이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이제 애쓰지 말고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둘 일만 남았다. 이따금 생각나는 것이 미련 때문인지, 아쉬움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마음 하나는 알겠다. 더 이상 관계 때문에 머리 아프게 고민하고 싶지 않다는 사실이다. 사춘기에도 해보지 않은 짓을 늙어 하려니 너무 지치고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