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는 사람
큰 아이가 일어나자마자 데리고 집을 나섰다. 운전이 익숙해지자 운전이 재미있다고 하는 아이가 운전대를 잡았고 나는 조수석에 앉았다. 드라이브를 즐기기 좋은 4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예쁘다 소문난 브런치 카페가 목적지였다. 며칠 집에만 있자니 무료하던 차였고, 날은 역시나 더웠고, 대화를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공부 메이트가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구나 싶었다. 카페는 소문대로 예뻤다. 음식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너무너무 시끄러웠다. 평일 오전 이름난 대형 카페들은 애들 학교 보내놓고 해방감을 맛보러 나오시는 어머니들의 구역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책 보고 공부하기 부적격한 장소였다. 삼삼오오 모여서 접시가 깨지도록 박장대소를 터트리는 걸 보면서 짜증도 나고 동시에 궁금해졌다. 뭔 얘기가 저리 재미날까? 너무 여러 테이블에서 접시가 깨지니 당최 무슨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카페의 높은 천장덕에 볼륨은 커졌지만 모두 한 덩어리로 섞여 웅웅거렸다. 아들은 이어폰을 챙겨 와 귀를 틀어막고 옆에서 접시가 깨지거나 말거나 시험공부를 이어나갔고, 나는 책을 보다 말고 자꾸 그들에게 시선이 향했다. 나에게도 저런 시간들이 있었겠지. 누군가에게 민폐이기도 한데 그것도 모르고 마냥 즐겁기만 한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을 어떻게든 이해하고자, 눈에서 까칠한 레이저를 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주문한 브런치와 차를 마시고 원래 계획대로라면 좀 더 오래 머물 예정이었지만 서둘러 자리를 떴다. 돌아오는 운전대도 아들이 잡았다. 운전하는 아들의 옆모습을 보니 든든하다. 앞으로 내가 운전할 일은 점점 줄어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뒷무대로 점점 물러나게 되는 것이 순리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카페가 다 좋았는데 너무 시끄러워서 다시 갈 일은 없을 것 같다는 내 말에, 아들이 말했다. 카페 안에 자연을 조용히 즐기는 분들을 위해 대화 소리를 낮춰달라는 안내가 적혀 있었다고 했다. 아무런 소용없는 안내였지만. 나처럼 그 안내를 미처 못 본 것일 테지. 카페 "묵리 459"에서는 정숙하랍니다. 여러분!!!!
오고 가는 차 안에서 아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나눴다. 전날 아들이 친구와 함께 고성 금강산 산행을 당일치기로 다녀왔는데 그 이야기도 듣고, 제주 여행 이야기도 들었다. 공부할 거 많다고 이번 방학에는 알바도 못한다더니 놀 계획만 잔뜩 세워놨구나 싶어 실눈을 뜨고 보고 있었는데 친구와 놀러 다니는 것도 이 나이에는 공부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겠구나 싶다. 살아보니까 그런 기억만 남는다. 젊어서 그렇게 무리해 놀러 다녔던 추억으로 살게 된다. 금강산에 같이 다녀온 친구는 내가 가르쳤던 녀석이기도 해서, 두 녀석이 여태 마음 맞춰 우정을 쌓고 있는 걸 보면 그저 흐뭇하고 예쁘다. "옛날에 내가 많이 예뻐했었는데, 걔는 알고 있니?", "응, 자기가 엄마 애제자 1호라던데? 그래서 내가 그렇다 치자고 했어", "1호까지는 아니어도 탑 10에는 들 것 같다", "실망하겠다. 탑 5에 넣어주자" 아들과 이런 대화를 나눴다. 학원을 운영하던 10년 동안 짧고 길게 나를 거쳐간 수 백명의 아이들 중 대다수가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또렷이 기억나는 아이들이 있다. 아주 예쁘고 사랑스러웠거나 아주 힘들었던 아이, 엄마가 보기 드물게 좋으셨거나 보기 드물게 진상이었던 집 아이. 뭐 대체로 이렇다. 아들의 친구는 참 뉘 집 아이인지 잘 키워놓으셨다 싶은 생각이 들었던 그런 아이 중 하나였다. 아들과의 대화 끝에 나의 아이들은 타인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내가 잊어버린 대다수의 아이들처럼 특이점이 없는 아이들일 가능성이 크지만 이왕이면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러자면 좀 더 다정하게 키웠어야 했고, 그보다는 먼저 내가 다정한 엄마여야 했다.
요즘처럼 더운 어느 날,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학원에 도착해 내게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을 내밀었던 쑥스러움을 많이 타던 아이가 있었다. 평소 말도 별로 없던 그 아이가 내민 아아를 받아 들고 "어머, 이게 웬 커피야?"라고 질문했더니 "구청에 장애인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500원 주고 샀어요, 선생님 드세요"라고 했다. 그 아이가 너무 사랑스럽고 고마웠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5000원이었으면 무지 부담스러웠을 텐데, 500원이라 소중했다. 다정함, 쉬운 듯하면서도 어려운 그것. 좀 더 다정한 사람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