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유물
모두가 집을 나갔다가 밤이 되어 네 식구가 거실에 모였다.
나는 온종일 혼자 집에 머물렀고, 밤이 되어서야 모인 식구들이 반가웠다.
티브이를 켜두고 두 남자는 긴 소파 양쪽 끝에 드러누워, 한 남자는 소파 테이블 앞에 대자로 누워 각자의 휴대폰만 바라다보고 있었다. 소파 테이블 앞에 앉아서 나는 그들을 번갈아 보며 쳐다보았다.
티브이를 슬쩍 꺼버렸는데도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보는 사람이 없었던 것.
한참을 그들을 지켜보다가 나는 한마디를 툭 건넸다.
"여보, 나는 당신의 휴대폰이 되고 싶어."
큰 아이가 웃으면서 "와, 엄청 로맨틱한 말이네?"
온종일 나가있다 왔으면 가족들 얼굴 좀 보자는 말이지.
습관처럼 집어드는 휴대폰이다. 딱히 볼 것이 없어도 한번 잡고 나면 쉽사리 내려놓기가 힘들다. 어디서 봤던가? 우리는 하루에 평균 1000번 정도 휴대폰을 열어 본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는데 설마 그 정도일까 했는데, 그만큼 심각하다는 얘기다. 나도 의식하지 않으면 휴대폰에 사로잡혀 있는 시간이 많다.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더 늘어난 것 같기도 하다. 그게 브런치의 유일한 폐해라면 폐해이다.
어찌 됐건 내가 던진 로맨틱한 고백덕에 아이들도 남편도 휴대폰을 겸연쩍어하며 내려놓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책을 통 읽지 않는 큰 아이에게, 책을 점점 멀리하고 있는 작은 아이에게 휴대폰 볼 시간 반만 할애하여 책을 좀 읽어보라고 했다. 책방을 가득 채운 저 많은 책들, 나 혼자 읽자고 소유하고 있는 것들이 아니라고, 너희들이 언젠가는 같이 읽어주길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는 책들이라고, 같은 책을 읽고 책 얘기를 함께 나누는 가족, 그게 엄마의 로망이란다... 이렇게 애걸을 했다.
그게 효과가 있었던 걸까? 작은 아이가 먼저 제 방에 뛰어가더니 책을 가져와서 앉았다. 큰 아이가 작은 아이를 보더니 "연기하냐?"라며 비웃으며 한 마디 내뱉더니 책방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술술 잘 읽히는 소설 하나 골라줘 봐"라고 해서 나는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을 권했다. 이거야 말로 술술 잘 읽히는 소설이지. 그렇게 세 모자는 12시가 넘도록 책을 읽었다. 재미있는지 두 녀석 다 한동안 움직임 없이 책을 몰두해 읽었다. 책 읽는 아이들의 모습은 보고 있기만 해도 흐뭇했다. 남편은? 새벽 출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잠자리로 가버렸다.
큰 아이는 중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책을 제법 많이 읽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좋아해서 그의 책을 모두 사서 읽을 정도로 팬이기도 했다. 그러더니 고등학교 다니는 동안 생기부에 기록할 책들, 그러니까 좀 어렵고 있어 보이는 책들을 억지로 접하면서 겨우 책과 인연을 유지하더니 대학에 들어가며 그마저도 끊어져버렸다. 자발적 흥미로 인한 독서가 아닌 필요에 의한 독서로 생긴 부작용인 셈이다. 책이 아니고도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지기도 했고. 아이가 다시 책 앞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엄마가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그렇게 만들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책은 누가 보란다고 보는 것이 아니므로. 책이 주는 재미와 효용성을 스스로 느낀다면 아무리 말려도 책과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내가 그랬듯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고, 특히나 종이책의 지속 여부가 불투명하다고까지 할 정도로 출판업계의 위기를 논한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어제 오전에 줌으로 영어 사설 스터디를 했다. 주제는 영화 업계의 위기를 다룬 기사였다. 필자는 유튜브가 완전히 장악해 버린 콘텐츠 시장에서 영화관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극장 경험이 재점화될 거라는 희망을 여전히 버리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희망을 품고 있는 자들을 'cultural relics - dinosaurs clutching shortwave radios'에 비유했다. '단파 라디오를 들고 있는 공룡 같은 문화적 유물'. 이 비유가 너무 재미있었다. 언젠가는 종이 책을 들고 있는 사람들도 이런 문화적 유물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엄마가 책 읽으라고 아무리 잔소리 한들 아이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고, 대신 엄마가 책 읽는 모습을 보이라고 누가 그랬다. 그것도 사실이 아닌 것 같다. 엄마가 아무리 옆에서 책을 읽어대도 아이가 스스로 동하지 않으면 아무 효과가 없다는 걸 나는 몸소 경험했다. 어제 나의 절절한 애원에 아이들은 잠시 움직였으나 이게 지속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어제 잠들기 전, 큰 아이는 내게 말했다.
"나, 내일 서울 자취방에 갔다가 다음 주쯤 다시 올게."
혹시, 책 읽으라고 그래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