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즐거웠던 주말이

스쳐 가네 파노라마처럼

by 낮별


토요일에 예전에 살던 동네에서 작은 아이 단짝 친구였던 아이와 그 아이 엄마가 집으로 놀러 왔다. 우리 아이가 2학년 때 이사 왔으니 이사 와서도 6년째 우정을 유지하고 있는 소중한 인연이다. 매번 방학 때마다 아이들의 성화로 이집저집 번갈아가며 1박 2일 놀게 하는데 이번에는 우리 집으로 초대했다. 아이 엄마는 아이를 데려다주고 나와 한참 수다를 떨고 갔다.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린 그 엄마는 직업이 아동심리치료사이다. 상담대학원에 입학 예정이라는 내 말을 듣고 너무 놀라고 반가워했다. 우리는 서너 시간쯤 얘기를 나눴는데 대화가 끊어질 틈 없이 이어졌다. 누굴 만나서 서너 시간 수다를 떨고 나면 굉장히 피곤해지곤 하는데, 그래서 집에 돌아오면 바로 소파에 벌러덩 눕고 마는데, 이날 대화에서는 전혀 피곤함을 느끼지 못했다. 집중해 들으려 진을 빼지 않았고, 대화를 이어나가려고 애를 쓰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냥 대화가 즐거웠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동네 노래방까지 가서 신나게 놀고 만화카페에 가서 스스로 저녁까지 해결하고 들어와 엄마들은 자유였다.


큰 아이는 무슨 공연에 간다며 나가더니 너무 더운 데다 공연이 끝나면 대중교통으로 돌아올 수가 없다며 다시 집으로 돌아와 차를 가져갔다. 차키를 가지러 집에 잠깐 들렀는데 공연에 같이 간다는 친구와 함께 들어왔다. 군대 선임이지만 동갑이라 친구로 지낸다고 하는데 우리 아이보다 키가 더 커서 깜짝 놀랐다. 우리 큰 애 키가 189인데 그 친구는 192라고 했다. 훤칠한 청년 둘이 거실에 서있으니 천장이 갑자기 낮아 보이고, 내가 난쟁이가 된 기분이었다. 해외 힙합 가수의 공연이라고 하는데 이름을 몇 번이나 되묻고 아이는 대답을 했는데도 외워지지가 않았다. 반복 질문을 하면서 나는 예전에 내 말귀를 못 알아들어 나를 짜증 나게 하던 엄마가 생각났다. 아이의 표정도 다소 짜증 나 보였다. 이제 그 가수의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한다. 칸예 웨스트. 아이를 보내놓고 검색해 보니 이 사람 문제적 인물이었다. 죄다 19금 노래이고, 노래는 전혀 내 취향이 아니라 한 곡도 제대로 듣기가 힘들다. 게다가 히틀러 찬양과 유대인 비하 글을 써서 세계적 물의를 일으켰다고 한다. 노래는 노래로 즐긴다지만 이런 보편적이지 않은 정신 상태의 사람의 공연을 애써 시간 내어 보러 가는 것이 내심 못마땅해졌다. 나가서 뭘 하는 지, 아이의 사생활은 모르는 편이 낫다. 밤 1시가 넘어 아이는 잔뜩 상기되어 귀가했다. 너무 재미있었다며.


작은 아이도, 큰 아이도, 나도 각자의 즐거운 시간을 보낸 셈이다.


남편은 계엄령이 내린 태국에서 무사히 귀국했다. 계엄령이 유행인가? 태국과 캄보디아 영토분쟁으로 전쟁이 터졌다고 하는데 방콕은 마냥 평화로웠다고 한다. 어제는 나라에서 준 소비쿠폰을 쓰겠다며 외출했다. 저녁 식사도 만족스러웠고 식사 후 카페에 들러 두 시간쯤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작은 아이는 수학 공부, 큰 아이는 자격증 공부, 나는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를 읽었고, 남편은 <오십에 읽는 논어>를 읽으면서 무소음 야구 중계를 훔쳐보았다. 오고 가는 차 안에서 이찬혁의 노래를 들으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요즘 내가 꽂혀있는 아티스트가 악동뮤지션의 이찬혁이다. 그냥 노래 잘 만드는 천재 뮤지션, 노래 잘하는 이수현의 오빠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솔로 활동 영상을 보고 완전히 꽂혔다. 솔로 활동을 뒤늦게 알고 이제야 뒷북치는 중이다. 이찬혁,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이찬혁만의 장르를 만들어 가고 있다. 대단히 자유롭고 거침이 없다. 무대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 근심걱정이 사라진다. 가사를 음미해 보면 살아있음이 다행스럽고, 기쁘고, 감사하다. 5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두꺼운 철학책이 주는 위로가 전해진다. 음악의 힘은 정말이지 대단하다. 이찬혁이 비디오형 가수였다는 사실에 놀라며 영상을 찾아 헤매고 있다.

"진실로 사랑했던 내 친구여, 왜 이리 좋았던 날에 슬퍼했었나"

(신곡 '비비드라라러브'의 가사 중)


"이렇게 죽을 순 없어. 버킷리스트 다 해봐야 해.

짧은 인생 쥐뿔도 없는 게. 스쳐 가네 파노라마처럼"

('파노라마'의 가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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