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내일에 대한 무지
여느 날처럼 기쁘기도 하고 조금 울적한 마음도 들었던 그런 날이었다.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는 누수가 생겨 거실 창가 쪽 벽지가 젖고 색이 변했다. 관리사무소에 연락하니 외벽 보수 작업 중이니 점검 세대로 추가해 놓겠다고 했다. 에어컨에서 생긴 누수일 수도 있으니 에어컨 작동과 연계하여 누수 정도를 체크해 보라고도 했다. 그래서 온종일 거실 에어컨 작동을 멈추고 있었다. 젖어서 변색된 벽지를 보며 끈적끈적한 날씨를 견디고 있자니 마음이 조금 울적해졌다.
그래서 유튜브에서 이찬혁의 공연영상을 찾아봤다.
놀랍게도 찬혁이의 행복한 얼굴을 보며 나는 웃고 있었다.
요즘 짜증이 나거나 우울할 때 찬혁이의 영상은 내게 특효약이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빛나는 청춘, 자유로운 삶. 그게 다 타인의 것이고 나는 그저 보고만 있었을 뿐인데도 영향을 주는 걸 보면 확실히 사람들은 서로 연결되어 살아간다. 영상 아래 달려 있는 댓글을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찬혁아, 네가 나를 살리는구나'식의 간증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야구, 오스틴이 오랜 휴식 이후 돌아와 멀티히트를 기록했고, 박해민은 또 벽을 타고 올라가는 신들린 수비로 두산의 홈런을 삭제시켜 버렸고, 문보경이 역전 3점 홈런을 쳐서 두산을 이겨 7연승을 이어나가며 엘지가 다시 단독 1위에 올라서 몹시 기뻤다. 만약에 내가 야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이런 기쁨을 모르는 사람이었겠구나 생각하니 마음을 두고 응원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구나 싶다. 그런 게 많을수록 삶이 신나겠구나. 야구와 찬혁이가 있어서 그나마 좋은 하루였다.
지난주에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백수린의 <여름의 빌라>와 백온유의 <유원>을 완독 했다. <여름의 빌라>는 매일 단편 하나씩 읽었고, <유원>은 어제 하루동안 빠져 읽었다. 3년 전에 책 모임 때문에 급히 읽고는 까맣게 잊어버린 <여름의 빌라>, 그 책에 실려있는 단편들이 새삼 너무 좋아서 읽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다시 만나게 된 게 참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상실감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 인생의 어느 여정에서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고독과 외로움 그런 것들이 우아한 문체로 그려져 있다. 백수린의 글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나를 내 인생의 어떤 지점으로 뜻하지 않게 데려다 놓았다. 그렇게 수많은 장면들과 만났다. 그런 순간은 과거의 나를 만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고1 여름방학의 작은 일탈, 봉천동 언덕배기 13평 신혼집에서의 소꿉장난 같았던 생활, 큰 아이를 유모차에 데리고 다니던 시절에 느꼈던 울렁거림, 그런 것들.
백온유의 <유원>은 작은 아이에게 읽히려고 빌려온 건데 내가 먼저 읽었다. 참사의 희생자와 생존자, 그 가족들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처리하는 사람들의 방식에 가끔 혐오의 감정이 들기도 했다. 차라리 무관심이 낫겠다 싶었다. 사람들은 절대 잊지 말자고,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게 맞는 걸까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생각했다. 물론 참사 관계자들은 절대 잊어서는 안 되고 참사 수습과 재발 방지를 위해 애써야 할 테고, 가족들과 가까운 친구들은 애쓰지 않아도 희생자를 기리며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 외 사람들은 되도록이면 빨리 잊어주는 것이 생존자와 그 가족들이 다시금 삶 속으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란 걸 이 소설이 보여준다. 화재 현장에서 이불에 쌓여 던져져 살아남은 '유원'은 사람들이 자신을 두고 "쟤가 걔야, 그 '이불 아기'"라고 수군대는 것을 알고 있고 그럴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혹여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이, 그 수군거림이 그들이 건강하게 삶으로 돌아가려는 발목을 붙잡고 있는 건 아닌 지. 참된 애도가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블로그에 5년 전 내가 쓴 글이 떠서 열어봤다가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좋은 사람들과 즐거웠던 만남, 그날의 사진이 있었다.
모두가 좋아 보였다.
하지만 그중 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5년 전 우리는 아무도 그걸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걸 상상조차 하지 못한 우리들은 모두 활짝 웃고 있었다.
미래에 대해 무지한 것이 얼마나 축복인가?
오늘은 일단 웃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