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나
얼마 전 나는 영국에서 1만 원으로 생활한 이야기를 다룬 글을 올린 적이 있다. 무려 한 달 동안 지우고 쓰고를 반복하다 결국 다음 이야기를 위해 마무리를 못한 채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던 글이다. 덕분에 오늘 그다음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되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나는 계속해서 더하는 삶에 익숙해져 있었다. 초등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면서 지식은 더욱더 더해졌고 사회생활 초반에 만든 통장의 잔액도 꾸준히 더해져 갔다. 경력이라는 숫자도 더해져 갔고 연봉 또한 더해졌다.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연락처의 숫자들도 계속해서 더해졌다.
내 삶은 어느새 더하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빼려는 시도는 해본 적이 없었다. 빼려는 시도는 하지 않고 최대한 많은 것을 하기 위해 새벽 2-3시까지 나를 몰아붙이며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야 했다. 그렇다고 지난 시간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지난 시간 동안 젊은 패기와 함께 나는 참 많은 것을 시도했고 단기간에 많은 것을 빠르게 배울 수 있는 값진 경험의 시간이었다. 다만 최근에 나는 이러한 삶에 대해 돌이켜봐야 하는 사건을 겪었고 더해지는 삶에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을 곱씹어 봤을 때 그것이 과연 내 삶에 어떤 의미를 가져다 주었는가를 곱씹어보게 된 것이다.
회사가 나를 영국 한복판에서 버림으로써 나는 어쩔 수 없이 내 삶에서 많은 부분을 도려낼 수밖에 없었다. 이미 회사를 위해 영국으로 떠나면서 나의 많은 부분들을 도려냈던 터였다. 영국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사비로 비행기 티켓을 구매하고 입국 심사 때는 여행 왔다고 대답하라는 대표의 말만 들은 채 나는 영국으로 입국했다. 도착하자마자 한국 집에 내고 있는 월세에 더해져 런던의 살인적인 월세 또한 감당해내야 했다.
거액의 투자가 끝나자마자 회사는 억지스러운 방법으로 나를 밀어내려 시도했다.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싸워서 얻는 것이 나를 밀어내려 하는 사람들과의 동행이라면 싸우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빈손으로 물러나기로 결정하고 두 손을 불끈 쥔 채 회사 문 앞에 섰다. 그때 회사가 나를 불러 세웠다. 그래도 마지막에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려나 싶어 뒤를 돌아 섰을 때 대표가 말했다. "그 주먹 쥔 손 좀 볼 수 있을까요?"...
당시에는 이 모진 경험이 왜 나에게 벌어졌는가에 대해 스스로에게 되묻고 되물었다. 그 어느 때보다 기도에 의지했고 일적인 고민이 아닌 온전히 내 삶에 대해서만 깊게 파고드는 시간을 가졌다. 봄 날씨가 완연한 영국은 아름다웠지만 나의 하루하루는 아름답지 못했다. 내가 영국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이용해 내게 남은 것마저 빼앗아 가려는 회사와 계속해서 씨름해야 했다. 참 모질기도 하고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다. 잠을 이룰 수 없을 때는 와인 한잔으로 위로하며 잠이 들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디어가던 어느 날 결심이 섰다.
"그래, 빼자."
살아오면서 참 오랫만에 무언가를 빼기로 결정했다. 어쩌면 런던에서 지낼 수 있는 시간을 더하기 위해 결정한 것이지만 이전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 무언가를 빼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모진 시간과 깊은 고민의 시간이 결국 나를 빼는 삶의 문턱까지 데려다주었다. "런던에서 만원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하고 시도했던 그 이야기가 바로 빼는 삶의 시발점이 되어 준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에서 얻은 깨달음이 계속해서 빼는 삶을 연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아, 어쩌면.. 빼는 게 더 행복해질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