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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하해 May 01. 2024

벌파리

벌파리 나네

아내가 일을 시작한 지도 4개월이 되었고 직장에 묶여있으니.. 직접 내려오기는 힘이 들고 

잡채와 불고기를 안겨주고 동네 두부집에서 홍어무침이랑 묵사발을 사가라고 했다

책사(아내는 나의 책사)의 말을 듣고 난 감사하며 월요일 점심에 집에서 내려왔다.


교회에서 받은 팥고물이 많아 묻어 뚝뚝 떨어지는 떡을 두부집에서 사간 모두부와 홍어무침과 함께 엄마랑 아빠랑 먹고 있으려니.. 아빠가 본인이 손수 하셨다는 감자전을 꺼내시고 또 모자랄까 봐 먹다 남은 닭볶음탕을

우리는 저녁을 푸짐하게 때웠다.  

그 후 난 책을 보고 있었는데 아빠가 참외를 깎다 손가락을 비었다. 피가 화장지에 묻어있는 것을 보고서야 알았다.

약 바르고 손가락을 싸매는 것을 보고 책을 다시 보려는데 참외를 다시 잘라 내시니 또 내 손가락은 참외로 간다.


허기?

난 무엇을 채우고 싶은 걸까?


다음날

아침은 당연히 알람을 울렸다 출근하기 위해 일어나야 하는 시간 새벽 4시..

일어나 이불을 정리하고 미역을 불리고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만들어 준 잡채를 데우고 미역국을 끓이고 불고기를 볶고 있으니 엄마가 나와서 빼꼼히 처다 보신다.


"울 아들이 다 했어?"


"엄마 오늘 무슨 날인지 아시죠?"


"글쎄 무슨 날인 거야?

내 생일인가?"


"들어가서 더 주무세요.."


"아직 아침 드시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어요."


원래라면 출근을 해야 하는 날.

오늘은 화요일, 오랜만에 처음 받은 연차 날.

감사하다.


오랜만에 처음 받은 연차라고 들으면 뭐 쉬지도 못하고 일만 한다고 아님 일만 시키는 곳에서 일한다고 오해하겠지?

건설일로 먹고사는 걱정으로 여러 일을 전전하다가 누구 덕분에 건설일이 아예 없어 나중엔 교회에 들어가서 일을 하게 되어 교회 정직원이 되고 받은 첫 연차날.

오늘은 울 엄마 생일날이기도 하다.


잡채를 데우다 너무 많아 집에 다시 가져가려고 봉지에 담았다. 양이 많으면 가지고 왔던 자가 다시 가져가면 된다.

남겨져 꾸역꾸역 드시는 것보다 모자란 듯 맛있게 드시는 것이 더 좋겠지.


아침에 생일 상 차리고

아빠랑 나는 엄마 생일축하노래를 불렀다.


생일축하합니다..

.......

사랑하는 신봉자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울 엄마라 부르지 않았다.

엄마 이름을 부른다.

엄마 이름만 부를꺼다.


점심은 울 엄마가 드시고 싶으시다는 옹심이칼국수

아빠는 약속이 있으셔서 나가셨다.

"엄마 언제 왔었는지 기억 안 나셔도 돼요. 아들하고 먹은 것만 기억해 주세요"


엄마가 배부르다며 나에게 칼국수를 덜어주셨네

난 배가 불러도 맛있게 먹네

집으로 오다가

죽어가는 꿀벌을 보았다


사라지는 것은 모두 아련하고 불쌍하다

꼭 우리를 보고 있는 것 같다


멀리서 달빛이 쏟아져 내리고 베토벤의 월광소나타가 흘러나오는 것 같다

난 어쩜 꿀 벌인척 하는 벌파리 아닐까?

어질 것을 모른척 애써 태연한척


아빠꽃 엄마꽃

꿀만 빨고 있는

더러운 파리가 아닐까?


벌파리 나네


                                             류하해


엄마랑 밥을 먹었다

울 엄마 좋아하는

옹심이 칼국수

어미가 남기면

남긴 면

맛있게 먹는

난 꿀만 빠는

노란색 줄 처진

꿀 맛 아는

꿀돼지 아들

집에 가는 길

땅바닥 뒹굴며

엄마 찾는 줄무늬 친구

너는 어미 위해

동생들 위해

꽃 따고 꿀 따고

뻘뻘 일했지


그냥 난

그런 널 보고 그냥

내 몸에 검은색 줄을 치면서

아직도 꽃밭을 찾아 헤매지


꽃이나 제대로 딸 수 있을까?

꿀이나 제대로 딸 수나 있나?

노란 줄에 검은 줄에 다시금 긋는

난 꿀꿀 꿀 좋아하는

꿀돼지 아들


노란 줄 검은 줄 쳐 저 있으면

주의 또는 위험 신호가 될까?

약한 놈은 강하게 보여야 해서

뻘뻘 일하는 친구로 보여야 돼서

일부러 노란 줄 검은 줄

몸에 두르고

파린데 벌인척 행세를 하는

꽃들 등에 척들러

달라붙어서

오늘도 꿀 빠는

꿀파리 나네

날쎄 날쎄

오늘도

꽃등에 나네



"아들 엄마가 사줘야 되는데..."


"엄마 맛있는 거 많이 사주세요

엄마 생일마다 얻어먹을 껀데요

저 얻어먹으러 내려올 거예요

20번 이상 사주셔야 돼요.. 꼭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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