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asis - <The Masterplan>
오아시스는 때론 과대평가라는 이유로 폄하되기도 한다. 90년대를 이끈 메가 밴드였고 수많은 록팬들의 첫사랑이었음에도 말이다. 너무 대중적이라는 말과 팬들의 올려치기가 심하다는 사유다. 어떻게 이 밴드가 레드 제플린이나 비틀즈와 맞먹는 밴드냐는 비아냥을 듣곤 한다. 물론 나 역시 6,70년대 밴드들의 음악사적 영향력을 생각해보면 오아시스의 영향력은 그들에 비해 떨어진다는 점을 안다. 오아시스는 좋은 노래를 많이 냈지만 후대 밴드들에 선구자 격으로 영향력을 끼치진 못했다. 그들이 푹 빠져 좋아했던 스톤 로지스나 스미스보다도. 그렇지만 오아시스가 여타 선배 밴드들보다 나은 점 한가지는 컴필레이션 앨범을 단순히 히트곡 모음이란 인식에서 벗어나, 정규 앨범과 필적할 만한 퀄리티의 명반으로 냈다는 것이다.
<The Masterplan>은 정규 앨범이 아니다.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이런 앨범은 보통 황혼기에 접어든 밴드들이 내는 히트곡 모음집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오아시스는 1,2집을 내면서 정규 수록곡에 아쉽게 탈락한 B사이드곡들을 모아 넣았다. 탈락한 사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이 앨범이 2집 이래로 나온 오아시스 앨범들 중 가장 좋게 들린다는 것이다. 3집부터 오아시스는 스타일이 살짝 변했다. 곡이 길어지고 정통적인 록 사운드보다 조금 실험적인 사운드를 접목하기도 했다. 그 변화는 대다수 팬들이 기대하던 방향이 아니었다. 특히나 3집은 1,2집의 대성에 이은 기대감을 충족시켜주기 부족했다. 이후 앨범들에서도 심기일전했지만 다시는 초기 앨범의 마성에 못미쳤다. <The Masterplan>은 그런 점에서 매력이 충분하다. 이 앨범에서는 1,2집의 향기가 난다. 그도 당연한것이 1,2집 제작 시절에 만든 곡들을 모아논 거니까.
첫번째 트랙인 'Acquiesce'는 2집에 왜 수록되지 못했는지 가장 궁금한 곡이다. '(What's the story)Morning Glory?'를 인트로로 사용해 시작되는 이 곡에는 초기 오아시스가 보여주던 날 것 같은 사운드와 시원한 후렴이 돋보인다. 무엇보다도 노엘의 멜로디 메이킹 능력이 돋보이는 곡이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2집의 분위기와도 어긋나지 않아 들어갔을 법도 한데 의아하다. 오아시스 팬이라면 많이들 알 일화가 담긴 'Talk Tonight'은 서정적인 아름다운 곡이다. 어쿠스틱 기타와 박수로 맞추는 박자, 서정적인 곡에는 리암보다 더 잘어울리는 노엘의 보컬이 합쳐져 실로 아름답게 들린다. 노엘이 미국 투어 도중 밴드를 잠시 떠났을 때, 자신에게 힘이 돼준 여성과의 대화를 다뤘다. 이 곡과 함께 녹음된 'Half The World Away'는 밝은 느낌을 준다. 이제 이 곳을 떠날 거라는 가사는 홀가분해하며 즐거워하는 느낌을 준다. 'Talk Tonight'과 같이 녹음되었다는 것에서 이 곡은 밴드를 떠났을 당시 심정을 가사로 적은 것 같다. 가사에서 말하는 도시는 마치 밴드를 지칭하는 것 같다. 당시 밴드를 맘에 들어하지 않아 홀로 떠나버렸던 노엘의 심정이 밝은 멜로디와 가사로 전달되는 것 같다. 듣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질 만큼 밝고 좋은 곡이다.
1집 시절 작업해 'Cigarettes&Alcohol'의 싱글에 수록됐던 'Fade Away'는 1집 시절 정제되지 않은 사운드가 남아있다. 1집의 느낌을 좋아하는 이라면 만족하며 듣을 만한 곡이다. 이 곡 뒤에 나오는 'Swamp Song'은 연주곡으로 앨범 중간 환기시키는 역할을 수행해준다. 'Swamp Song'의 연주가 끝나면 본 앨범에서 유일한 라이브 음원이 나타난다. 'I Am The Walrus'. 비틀즈의 곡을 커버한 것인데 오아시스가 다른 어느 밴드보다 낫다고 확신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곡에 있어서만큼은 오아시스보다 훌륭한 커버가 없다. 원곡의 심심한 사운드를 덮어버리는 기타 사운드, 정말 바다코끼리마냥 부르는 리암. 본래 난해한 가사 때문에 따라 부르기가 어려운 곡에 속하는데 리암은 잘 소화해냈다. 노래는 3분 경까지만 부르고 나머지 3분은 연주만 나타나는데, 이 때 나타나는 사운드들이 꽤 재밌다. 'Listen Up'은 인트로가 1집의 'Supersonic'과 유사해 처음 들었을 때 놀라움을 줬다. 그런데 정규에 수록되지 못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라고 한다. 낙관적인 가사와 밝은 분위기가 오아시스만의 색깔을 전해준다. '(It's Good)To Be Free'는 곱씹을 수록 좋은 곡이다. 다른 곡들보다 멜로디가 평면적으로 들려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앨범을 돌려 들을 수록 그 담백함이 마음에 든다. 앨범 후반부 'The Masterplan', 'Half The World Away'와 함께 가장 좋은 것 같다. 곡의 막바지에 아코디언 연주와 함께 모스 부호로 추정되는 소리가 들리는데 왠지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Stay Young'과 'Headshrinker'는 특별한 인상을 주지 못했다. B사이드에 어울릴 곡이다. 하지만 이 앨범을 끝까지 듣어야 하는 이유는 마지막 곡에 있다. 앨범의 제목과 동일한 'The Masterplan'. 노엘 스스로 오아시스의 곡 중 가장 좋은 걸작이라 평할 만큼 뛰어난 곡이다. 곡의 기승전결과 사운드의 풍성함, 역시나 오아시스의 강점인 멜로디 라인이 모두 뛰어나다. 'Acquiesce'와 함께 본 앨범에서 왜 정규에 수록되지 못했는지 가장 궁금한 곡이다. 물론 분위기가 2집과는 조금 달라 통일성 면을 위해 뺀 건가 추측은 된다. 이 곡은 2집에 넣기에는 너무 장엄하기도 하다. 들리는 일화로는 'Wonderwall' 싱글의 B사이드용 곡으로 제작했는데, 소속사 사장 앨런 맥기조차 감탄했지만 노엘은 B사이드곡 만들래서 만든 거니 그대로 B사이드로 내는 것을 고수했다 한다. 노엘의 자신감과 함께 그 당시 그의 작곡 실력을 엿볼 수 있는 일화다. 어쨌든 'The Masterplan'은 B사이드로 나와 컴필레이션 앨범의 타이틀이 됐다. 정규에 실린 히트곡들보다도 더 큰 인기를 업었다. 히트곡 모음집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당당히 밴드 커리어의 주요 앨범으로 평가받는 <The Masterplan>에 방점을 찍었다.
정규 앨범 수록에 탈락했던 곡들. 안타까운 곡들이 모여 오아시스라는 밴드에 있어 가장 뛰어난 앨범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앨범의 묘미는 무엇일까. 핵심은 팬들이 좋아하던 오아시스의 사운드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3집부터 사라졌던 그 신묘한 소리. 멜로디를 중심으로 짜 거칠게 포장된 세션. 이 앨범을 끝으로 오아시스에서 이와 같은 음악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그로 인해 밴드는 초기 반짝, 거품이라는 불명예를 입기도 했다. 실제로 음악 커뮤니티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오아시스에 대한 열렬한 팬이 있는가하면, 그들을 못마땅해하는 이들도 상당하다. 그런들 어떨까. 2집갑이든 뭐든 오아시스에 대한 팬심을 놓을 수 없는 이유는 나 역시 오아시스로 인해 록 음악에 입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놓인 많은 음악들을 돌고 돌아 결국에는 오아시스로 돌아오게 된다. 이렇게 종종 음악을 듣을 때 가장 흡족함을 주는 밴드는 오아시스였단 것을 줄곳 되새기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