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7일 아스날:맨시티 커뮤니티 실드 결승전
아스날팬으로서 2023-2024 시즌 개막을 기분좋게 맞이하게 되었다. 지난 7일 열렸던 2023 커뮤니티 실드에서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기 때문이다. 승부차기 끝에 맞이한 승리고, 이마저도 올 시즌부터 바뀐 추가시간 규정이 아니었다면 얻지 못했을 기회였을 테며, 커뮤니티 실드의 권위는 리그컵보다도 떨어지는 이벤트성 대회라는 것에 너무 기뻐하긴 이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날 경기는 단순히 하나의 경기라고만 놓기에는 주목할 점들이 많다.
전반 20분 경까지는 맨시티의 공격 전개에 아스날이 내려앉은 형태였다. 얼핏 보면 아무것도 못하던 과거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하지만 추후 반격을 통해 이 20분의 소모는 전술적인 신중함이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맨시티의 빌드업 형태를 파악한 팀은 순차적으로 전방 압박의 강도를 높였고, 이는 에데르송을 대신해 출전한 맨시티 골키퍼 오르테가의 미스를 유발하기도 했다. 경기 극초반 발이 맞지 않는 모습을 보였던 팀버가 시간이 흐를 수록 동료들과 호흡이 맞으며 그의 공격적 재능을 뽑내는 시간이 찾아왔다. 팀버는 교체되기 전까지 위력적인 모습을 보였다. 지난 시즌 아스날의 과제였던 진첸코의 부재 시 공격 작업의 답답함을 풀어낼 힌트로 보였다. 전반전까지 가장 돋보였던 선수는 새로운 이적생들이 아닌 기존 멤버인 사카와 파티였다. 파티는 순식간에 허를 찌르는 킬패스와 중원 빌드업의 중추로 제 역할을 다했고, 사카는 늘 하던데로 번뜩이는 움직임을 보였다. 꽤나 조용했던 전반전 중 사카는 직접 위협적인 슈팅 하나와 하베르츠에게 결정적 찬스를 만드는 침투 후 패스를 선보였다. 맨시티는 전반전 자신들이 늘상 하던 플레이가 잘 안되는 것처럼 보였다. 홀란드는 살리바와 마갈량이스의 집중 견제로 이 날 슈팅은 커녕 볼터치조차 몇차례 안나왔다. 과르디올라 감독과 필드 위 선수들은 경기가 뜻대로 되지 않음을 표출하는 등 신선한 광경이 연출됐다.
후반전에도 양상은 이어졌지만, 교체 자원으로 시작했던 데 브라이너가 들어오면서 기류가 바꼈다. 중원에 힘을 더한 맨시티의 역습과 교체투입된 티어니에게 닥친 불운이 더해져 팔머에게 선제골을 헌납했다. 자칫하면 맨시티의 페이스대로 끌려갈 수 있는 경기 후반부에 실점한 것이다. 아르테타는 선수진을 대거 교체하며 강공에 나섰다. 램스데일은 이후 포든과 로드리의 슈팅을 막으며 1:0 상황으로 유지시켰다. 끊임없이 두드린 노력과 바뀐 규정으로 경기 시간이 100분이 넘어가서도 진행된 덕에 종료 직전 극적인 동점골을 만들어냈다. 굴절이라는 약간의 행운도 가미한 트로사르의 극장골이었다. 이후 승부차기에서는 다소 싱겁게 4:1로 승리하며 커뮤니티 실드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이 승리는(비록 승부차기로 이겼고, 규정변화가 아니었음 졌겠지만) 맨시티를 상대로 오래도록 이기지 못했던 갈증을 해소했고, 나아가 경기력 면에서도 맨시티와 대등한 모습을 보여줬단 점이 고무적이다. 이 날 맨시티와 아스날의 기대득점값은 0.95:0.98로 근소하게 아스날이 앞섰다. 단순히 운이 좋았다가 아니라 경기 내내 팽팽한 양상을 형성했던 것이다. 더이상 맨시티만 만나면 두렵던 팀이 아닌 대등한 경기를 펼치는 컨텐더로서 면모를 세웠다.
여름 이적 시장에 영입한 3명의 선수가 모두 선발 출장했다. 라이스는 과거 자카가 맡았던 왼쪽으로 치우친 중앙 미드필더, 팀버는 진첸코가 수행하던 왼쪽 인버티드 풀백, 하베르츠는 부상당한 제수스를 대신해 공격수로 나섰다. 당초 라이스를 파티가 수행하던 6번롤에 활용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왼쪽 메짤라 자리로 예상됐던 하베르츠가 제수스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공격수로 올라가면서 그 자리에 라이스가 섰다. 그리하여 왼쪽 진형에서는 라이스-팀버-마르티넬리가 공을 주고 받는 조합이 형성됐다. 이 조합은 상당히 괜찮았다. 비록 마르티넬리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건지, 워커에게 막혀버린 것인지 그의 폼이 떨어져 보이기도 했지만. 팀버와 라이스는 공수에서 존재감을 나타내며 아스날의 왼쪽 구역을 맨시티로부터 차지했다.
팀버는 저번 시즌 진첸코가 부상 등으로 이탈했을 시 공격 전개에서 답답했던 문제들을 해결해줄 것으로 보인다. 티어니나 토미야스, 키비오르가 왼쪽에 서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전술적 움직임을 보여줬다. 프리시즌 오른쪽 풀백 위치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부상이 잦은 진첸코를 대신해 올 시즌 왠지 왼쪽에서 많이 볼 듯 싶다. 라이스는 아직 몸상태가 풀핏이 아니기에 눈에 띄게 활약하진 않았지만 수비적인 부분에서 분명 도움이 됐다. 좋은 신체능력을 활용해 베르나르도 실바의 공을 손쉽게 탈취하고, 상대를 향한 압박으로 전진패스를 차단하는 등 중원 장악 면에서 아스날이 필요로 하던 모습들을 보여줬다. 오늘 경기 전 의외였던 것은 하베르츠였다. 나는 아르테타가 하베르츠를 왼쪽 메짤라. 그러니까 이 경기 라이스가 섰던 그 자리에 활용하려고 데려왔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를 중앙 공격수로 출전시켰다. 해당 포지션을 수행할 수 있는 선수로는 은케티아와 트로사르가 있음에도 말이다. 아르테타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하베르츠의 신체적 능력을 바탕으로 그의 영리함을 칭찬했다. 실제 전반전 가장 위협적이었던 슈팅 두번은 하베르츠에게 나온 슈팅들 뿐이었다. 슈팅 외에도 그는 공중볼 다툼에서 우위를 점했고 이를 바탕으로 팀에 도움을 주는 모습들을 보였다. 비록 골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아르테타가 그에게 기대했던 공격수로서 움직임을 충분히 보여줬던 경기같다.
경기 전부터 다비드 라야와 아스날의 영입 링크가 진하게 나왔다. 나는 램스데일에 만족하고 있었기에 이 링크가 나올 거란 걸 예상치 못했다. 아스날이 라야를 원하는 이유는 그의 선방 능력이 뛰어남과 함께 지난 시즌 불안했던 램스데일의 후방 빌드업 능력을 상위 호환으로 갖춘 선수기 때문이다. 램스데일의 이적 초기, 레노를 압도하는 빌드업 능력을 봤던 나로서는 그래도 굳이 필요할까란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커뮤니티 실드 경기에서 램스데일은 과거 자신이 밀어냈던 레노와 닮아 있었다. 뛰어난 선방 능력으로 팀을 구해내기도 했지만 불안한 볼처리로 위기를 맞이할 뻔 했다. 또 지난 시즌부터 롱킥 빈도가 늘어났는데 램스데일이 이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반면 라야는 수치 면에서 램스데일을 압도하는 스탯을 보여준다. 지난 시즌을 기준으로 램스데일의 롱패스 성공률은 29%에 미쳤던 반면 라야는 42%나 달했다. 라야의 상대 진영으로의 패스 횟수는 경기당 7.7회, 성공률은 38%였다. 램스데일은 그에 못미친 2.3회의 패스 횟수, 22%의 성공률을 보였다. 이를 살펴보면 아르테타가 램스데일로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운 골키퍼를 원하는 이유가 나타난다. 이 글을 작성하는 시점 각종 언론에서 라야의 아스날 이적이 확정적이라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두 선수가 어떤 경쟁을 펼칠 지 지켜보는 재미가 생길 것 같다.
위에서 아스날의 승리는 변화한 추가시간 규정이 있었기 덕분이라 적었는데, 이는 영국 축구의 추가시간 규정이 작년 열린 카타르 월드컵의 추가 시간 규정과 유사하게 변화했기 때문이다. 요즘 피파가 밀고 있는 것이 인플레이 시간 보장이다. 축구 경기의 평균 인플레이 시간은 리그마다 편차가 있지만 60분이 채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파는 인플레이 시간 60분은 보장되게끔 여러 방안들을 논의 중인데, 그 중에 하나가 지난 월드컵에서 선보였던 철저한 측정 후 널널한 추가시간 부여다. 프리미어리그 사무국도 이를 채택해 이번 커뮤니티 실드에서부터 앞으로 긴 추가시간을 줄 것을 예고했다. 이 추세면 100분에 달하는 경기가 심심찮게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트로사르의 골도 후반 추가시간의 추간시간이 부여되어 101분 경에 터졌다. 전반 추가 시간까지 합치면 이날 105분에 가까운 경기를 뛴 셈이다.
이와 함께 경기 초반 파티와 아르테타의 경고에서도 올 시즌 프리미어 리그의 규정 변화를 찾아볼 수 있다. 파티는 7분 경 중원 지역에서 가벼운 반칙을 저질렀다. 문제는 이후 행동이었다. 선수들이 늘상 하는 상대팀의 프리킥 템포를 끊기 위해 공을 의도적으로 건드리는 동작을 취한 것이다. 주심은 이를 시간 지연 행위로 보고 곧바로 경고를 줬다. 사유는 이러했지만 겉으로 보기에 이른 시간 중원 지역에서 벌어진 반칙에 의한 경고로 보였기에 의아하기도 했다. 아르테타 감독은 이후 로드리의 비슷한 반칙이 발생하자 왜 카드를 주지 않는지 따졌다. 이에 주심은 경고로 화답했다. 올 시즌 선수와 감독들이 조심해야 할 것이 이 날 전반적에 모두 나타난 것이다. 프리미어 리그는 올 시즌부터 지연 행위에 엄격히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또 선수나 감독이 심판에게 맞설 시 확정적으로 경고를 준다고 발표했다. 이 두 가지가 커뮤니티 실드에서 드러났다. 시즌 초 모든 EPL 팀들은 이 경기를 기준삼아 주의해야 할 것이다.
이 날 경기까지 아르테타의 컵대회 결승전 진출 시 3전 3승이라는 전적을 세웠다. 1번의 FA컵, 두 번의 커뮤니티 실드다. 커뮤니티 실드가 대단한 대회는 아니지만, 트로피가 걸린 결승전에서 한번도 지지 않는 모습은 고무적이다. 팬들이 아르테타를 지지하는 까닭은 그가 보여주는 언행들이 위닝 멘탈리티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는 최대한 많은 승리를 바라보고 선수와 팬들이 이에 호응하는 모습들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준우승으로 그쳤다면 한풀 꺾일 법도 한 기세가 우승을 통해 계속해서 커져 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제 프리미어 리그 개막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심심했던 주말을 다시 가슴 졸이게 할 시간으로 바꿀 때다. 지난 시즌 아쉽게 2위로 마무리했던 아스날이 올 시즌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하던 팬으로서 이번 커뮤니티 실드 경기에서 긍정적인 요소들이 발견되어 기분 좋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