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12(토) EPL 1R 아스날 vs 노팅엄 포레스트
약속이 있어 밖에 나왔다. 경기 시작에 맞춰 헤어졌지만, 돌아오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소요됐다. 허겁지겁 집에 와 경기를 트는데 30분 연기됐단다. 관중들이 입장을 못했다나;; 그런 해프닝 뒤 밤 9시 정각 드디어 프리미어 리그 1라운드 노팅엄 포레스트전이 시작됐다. 선발 라인업에서부터 의아함이 들었다. 지난 시즌까지 붙박이로 출전하던 마갈량이스가 오늘은 교체 명단으로 시작한 거다. 특별한 부상 소식은 없었던 탓에 새로운 전술 실험인가 싶었다. 아스날의 포백 라인은 왼쪽부터 팀버, 살리바, 화이트, 파티로 구성됐다. 마갈량이스의 벤치 출발이 흥미로웠던 것은 아르테타가 왼발 센터백이라면 환장하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부상만 아니면 마갈량이스는 선발이었다. 그런 그가 빠지고 살리바와 화이트라는 오른발잡이 선수로만 센터백을 구성했다. 아니 다시 보니 포백 모두가 오른발잡이다. 선수의 주발을 극히 신경쓰는 아르테타가 이 경기에서는 이전과 다른 실험을 하겠다는 의도로 보였다.
파티는 아틀레티코 시절과 지난 시즌 말미에 우풀백으로 출전한 경험이 있다. 파티가 우풀백 출전 시에는 진첸코가 왼쪽에서 해주던 중원 지원을 맡아줬는데 오늘 경기에서도 파티는 그 역할을 담당했다. 측면보다는 중원으로 올라가 라이스와 함께 3선에서 빌드업 시스템을 구축했다. 경기가 지공 양상이 되자 라이스는 종종 공격가담을 하면서 파티가 그 뒤를 커버해주기도 했다. 이러한 파티의 움직임은 지난 시즌 말미에도 찾아볼 수 있었다. 텐백을 사용하는 상대를 공략하기 위해 후방에 최소한의 수비자원만 남겨놓고 미드필더, 공격수를 많이 투입하겠다는 전략같다.
파티가 중앙으로 가면 오른쪽에 사카를 보조해줄 이가 없어진다. 이 자리를 화이트가 기습적인 우측 오버래핑으로 메꿔줬는데, 이 날 경기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움직임 중 하나였다. 포지션상 우측 풀백인 파티가 중앙으로 들어가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센터백으로 나선 화이트는 우측으로 파고든다. 우풀백인 파티가 라이스와 함께 3선에 올라가 공격 시 3241대형을 전제로 하며, 상대를 박스 안에 가뒀을 시 기습적으로 팀버나 화이트를 전진시켜 극단적인 공격형 전술을 펼쳤다. 아르테타의 축구는 시즌을 거듭할 수록 포지션의 구분을 유연히 가져간다. 이번 시즌 리그 첫 경기인 이 날도 더 강화된 유연성을 파티와 화이트를 통해 선보였다.
하지만 이 실험적인 전술은 결국 상대의 텐백을 공략했냐 묻는다면 아직 의문점이 든다. 노팅엄 포레스트의 수비진은 박스 안에 필드 플레이어를 전부 집어넣는 극단적인 텐백으로 대응했다. 아스날은 전반 20분이 넘을 때까지 별다른 득점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러던 24분 경 마르티넬리의 멋진 턴 이후 은케티아에게 전달된 패스가 선제골로 이어졌고, 얼마 안있어 사카의 중거리 추가골로 2:0을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다득점이었지만, 두 골 모두 마르티넬리와 사카의 개인기량이 골에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아직 새로운 전술의 파괴력은 좀 더 지켜봐야할 듯 싶다.
그래도 희망이 보였던 점은 파티 때문이다. 바로 위 문단에서 다루기도 했지만 파티는 오른쪽 풀백으로 나와 진첸코가 하던 것처럼 3선에서 빌드업에 관여했다. 팀버의 부상으로 왼쪽 풀백 자리의 무게가 떨어진 지금,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걸 새로운 선수의 영입이든 전술적 변화로든. 이 날 파티 우풀백 기용은 본의아니게 앞으로 필요할 전술의 실험이 되고 말았다.
후반 70분대부터는 움크려있던 노팅엄의 역공이 펼쳐졌다. 아워니이와 니코 윌리엄스를 교체 투입해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이 교체는 적중했다. 추가로 교체 투입된 엘랑가가 엄청난 돌파를 펼쳤고, 아워니이의 득점을 어시스트했다. 만회골 이후 전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이제 노팅엄이 공격하는 측이 된 것이다. 아스날은 한 골을 수성하려 수비적이고 역습을 노리는 형태로 전환했다. 긴 추가시간까지 포함해 노팅엄의 공세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지속됐고, 동점골 기회도 여럿 있었다. 다행히도 아스날은 추가 실점없이 그대로 경기를 마쳤지만. 아쉬운 점은 후반 이런 양상을 허용하는 것 자체가 아스날팬으로서 익숙하며 더는 보기 싫다는 것이다.
아스날은 지난 시즌 전반을 잘 풀어놓고 후반 집중력이 떨어져 동점을 허용한 사례가 종종 있었다. 시즌 말미 리버풀, 웨스트햄, 사우스햄튼 3연전은 모두 무승부로 끝나며 맨시티에게 1위 자리를 역전당한 결정적인 3연전으로 지목된다. 이 중 리버풀과 웨스트햄전은 모두 선제골을 넣어 앞서가다 후반전 집중력 저하로 실점을 허용해 승점을 놓쳤던 경기다. 해당 경기뿐 아니라 아스날은 앞서고 있을 때 후반전 경기를 안정적으로 마무리하는 데 있어 지난 시즌 경쟁팀이던 맨시티에 비해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1R에서도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전술 변화와 기세라는 것이 있겠지만 아스날은 유독 전반전과 후반전이 다른 팀인 것 같을 때가 자주 나온다.
본 글을 작성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팀버가 큰 부상일 거라 생각치 않았다. 전반 막판 부상으로 의심되는 증세를 보였고, 후반 시작 즈음 다시 나와 잠깐이지만 경기를 뛰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후반전 출장은 결과적으로 독이 된 모양이다. 최근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팀버는 십자인대에 문제가 생겨 최소 7개월은 결장해야 할 지 모른다고 한다. 말이 7개월이지 이 정도 규모의 부상이면 재활 및 훈련을 통한 폼 복귀까지 사실상 시즌 아웃이라 봐도 무방하다. 이제 이적해온 선수가 리그 1경기를 치룬 시점에 아웃된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후반전 투입이 부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인지는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이같이 큰 부상 규모임에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출전을 허락한 의료진이 야속한 건 어쩔 수 없을 듯 싶다.
분명한 건 팀버는 장기간 전력에 이탈할 것이다. 진첸코 역시 이제 막 부상복귀에 폼을 올리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아스날의 왼쪽 풀백 자리는 누구에게 맡겨야 할까. 10년 넘게 팬질을 하면서 왠지 영입없이 강행할 거 같다는게 내 촉이다....사실 저 자리에 선수는 많다. 티어니, 토미야스, 키비오르 다 왼쪽 수비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다만 저 중 전문 왼쪽 풀백은 티어니 밖에 없고, 그마저도 이적 시장 내내 매각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만약 이 상황 속에 티어니를 판매한다면 왼쪽 풀백에 추가 영입이 불가피하다. 진첸코는 곧 돌아오겠지만 이 선수는 부상이 상수라 언제 시즌 중 다칠 지 모른다. 토미야스와 키비오르는 어찌저찌 출전을 시키지만 원래 왼쪽에서 뛰던 선수는 아니라 믿고 맡기기엔 불안하다. 시즌 시작과 함께 닥친 악재를 어떻게 헤쳐나갈 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