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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신대 박정훈 Oct 20. 2022

예상을 뛰어넘은 발전

The 1975 5집 <Being Funny In A Foreign>

 십수 년째 암울한 록 음악 씬에는 좀처럼 이렇다 할 대형 밴드는 커녕 제대로 된 커리어를 갖춰가는 중견 밴드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2010년대에 등장한 많은 신예 밴드들은 ‘주목할 만한’ 단계에서 평가가 그치며 그 이상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실패했다. 그 와중에 보여지는 The 1975의 활발한 활동이 유독 빛나 보이는 것은 그래서일까. 2집부터 2년 주기로 앨범을 내고 있는 The 1975는 지난 10월 14일 정규 5집 <Being Funny In A Foreign Language>를 발매했다. 이번에도 4집을 낸 지 2년 만이다. 


 이들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정규 앨범 1번 트랙에 밴드명인 ‘The 1975’를 붙이는 것이 이번에는 흥미로운 출발이 됐다. LCD 사운드시스템의 ‘All My Friends’를 오마주하는 곡은 두 개의 피아노와 보컬로 시작한 곡에 관현악 사운드가 차곡차곡 쌓인다. 10대 때 꿈꿨던 멋진 20대의 삶이 술과 마약으로 뒤덮혔다는 매튜 힐리 본인의 삶을 꼬집은 가사로 시작한다. 뒤이은 트랙 ‘Happiness’는 톡 터지는 팝 음악이다. 밝은 팝록 사운드에 색소폰 솔로로 마무리하는 구성이 하우스 음악 느낌도 풍기며 가장 귀에 꽂히는 트랙이 되었다. ‘Oh Caroline’과 ‘I’m in Love With You’처럼 후크한 곡도 앨범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한에서 가볍게 듣기 좋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팝 음악 스타일이었다면 ‘All I Need To Hear’에서부터 앨범은 새로운 면모를 보인다. 괜찮은 발라드 다음에 나오는 ‘Wintering’은 찰랑거리는 사운드와 발랄한 보컬, 이를 감싸는 제프 벡이 연상되는 기타 소리가 인상적이다. 감미로우면서도 몽환적으로 흘러가는 ‘Human Too’가 끝나면 분위기를 이어 드림 팝 느낌이 가득한 ‘About You’가 이어진다. The 1975의 첫 정규 앨범에 수록됐던 ‘Robbers’의 연장선 격인 이 곡은 ‘Robbers’가 전해줬던 감성을 그대로 품어가면서 현악기 소리와 여성 보컬 피쳐링을 더해 플러스 알파가 됐다. 앨범의 마지막은 편안한 포크 사운드인 ‘When We Are Together’로 맺는다. 


 The 1975의 전작들은 공통적인 비판점이 존재했다. 몇 개의 좋은 트랙들을 보유했지만 하나의 앨범으로 보았을 때 연결되지 못하는 통일성과 좋은 멜로디를 뽑고도 다소 심심했던 사운드의 아쉬움이었다. <Being Funny In A Foreign Language>는 그간의 지적들을 수용했는지 두 가지 모두 개선된 모습을 보인다. 관현악과 색소폰, 피쳐링 등 다양한 사운드를 접목해 전작들에게서 느껴졌던 소리의 허전함을 보완했다. 그간 앨범들 중 사운드적 발전이 돋보인 앨범이다. 트랙이 너무 많아 중구난방이란 비판을 받았던 4집에서 교훈을 얻었는지 이번 앨범은 11개의 곡으로 44분의 런닝 타임을 가졌다. 이는 밴드 커리어 중 가장 짧은 분량이다. 불필요한 트랙은 제거함으로서 피로도를 줄이고 정제된 트랙들에 집중한 모양이다. 


 하나 더 눈에 띄는 점은 앨범을 쭉 듣다 보면 몇몇 곡에서 어디선가 익숙한 멜로디가 들린다는 것이다. 1번 트랙은 밴드가 LCD 사운드시스템의 열성팬임을 옛날부터 자처한 바 있어 오마주 격으로 들리지만, 과거에 썼던 곡의 연장선 격인 곡을 비롯해 기존에 있던 레퍼런스를 차용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80년대 팝 록, 뉴웨이브 스타일을 사용한 건 좋지만 너무 뻔하게 흘러가 예측 가능한 범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eing Funny In A Foreign Language>는 최소한 수작 반열에는 오를 자격이 있는 앨범이라 생각한다. 고점과 저점이란 단어를 사용해보자. 이번 앨범이 두드러지는 점은 트랙 별 기복이 심했던 전작들에 비해 저점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가장 별로인 트랙 마저도 그저 ‘무난하게 흘러가는’ 수준이다. 커리어 중 가장 일관된 앨범이며 그 사이 사이 ‘Happiness’와 ‘About You’처럼 높은 고점의 곡들이 있어 앨범의 인상을 밝게 비춘다. 1집에서부터 쭉 들어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The 1975의 음악성이 꾸준히 발전하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적어도 1집이 커리어 하이인 여타 밴드들과는 달랐다. 그러나 이번 앨범은 밴드가 확실한 스텝업을 밟은 것 같다.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풍성해진 사운드와 앨범을 구성할 때 일관성을 갖는 방법을 찾은 것으로 보아 현재 대중지향적 록 밴드 중 가장 폼이 좋은 밴드이자 비로소 전성기에 접어들었다고 조심스레 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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