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같은 세포에서 시작했다. 처음엔 하나였다. 둘로 나뉘기 전까지는. 감수분열이 일어나는 순간까지, 우리는 모든 것을 공유했다. 유전정보도, 세포질도, 같은 리듬의 숨결도. 나눌 이유도 없었고, 나눌 방법도 몰랐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누어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래야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혼소송도 그렇다. 그것은 감수분열처럼 고요하지만 격렬한 결심에서 시작된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서로 다른 사람이라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애초에 다른 존재였다면, 처음부터 결합은 가능했을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혼은 다름 때문이 아니라, ‘한때 같았던 것’이 더 이상 같을 수 없을 때 발생한다.
감수분열의 핵심은 복제가 아니라 차별화다. 같은 유전자가 서로 다른 세포로 나뉜다. 이혼도 그렇다. 서류 한 장으로 끝나는 절차가 아니라, 서로가 간직했던 기억의 DNA를 갈라내는 일이다. 아이를 중심으로 한 양육권 다툼도, 재산분할 협의도, 모두 ‘같았던 것’을 어떻게 ‘다르게’ 나눌 것인가에 대한 싸움이다. 그 싸움은 지극히 생물학적이다. 생존을 위한 분열.
나는 이혼소송을 하면서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이건 진화의 과정일지도 모른다고. 감수분열이 없다면 생명은 세대를 이어갈 수 없다. 같은 DNA만 반복된다면, 변화는 없다. 마찬가지로, 부부가 모든 고통을 참고 살아야만 한다면, 그건 성장 없는 지속이다. 오히려, 차별화되고 분리되는 과정 속에서 다음 삶으로 나아가는 힘이 생긴다.
다만 감수분열과 이혼소송의 가장 큰 차이는, 감수분열엔 감정이 없다는 점이다. 세포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서로 찢기면서도 아무 말이 없다. 하지만 사람은 다르다. 같은 침대를 썼던 기억, 같은 사진 속 미소, 같은 텔레비전을 보며 나눈 대화… 그것들이 일방적으로 갈라진다. 그 갈라짐엔 아픔이 따라붙는다. 그래서 감수분열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오래 걸리고, 더 많은 상처를 남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과정을 부정하지 않는다. 감수분열처럼, 이혼도 한 사람의 삶을 다음 단계로 이끄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 더 이상 같은 DNA를 공유하지 않아도, 각자의 길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변화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선택이다. 단지 그 변화는 생물학적 진화보다 훨씬 고통스럽고, 그래서 더 인간적이다.
오늘도 나는 어떤 부부의 감수분열을 지켜본다. 서로가 같은 유전정보를 나누던 시절을 뒤로 하고, 각자의 삶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해 서면을 쓴다. 나는 유전학자가 아니다. 하지만, 마음의 세포가 어떻게 갈라지고 어떻게 다시 자리를 잡는지, 그 과정을 조금은 알고 있다. 그래서 말없이 응시한다. 나뉘는 순간을, 아프지만 반드시 필요한 그 분열의 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