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심이 부러지는 순간

연필도, 인생도, 다시 깎아야만 이어 쓸 수 있다

by 지세훈 변호사

연필을 잡고 글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딱’ 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 짧고 가벼운 소리는 너무도 일상적이어서 크게 놀랄 일 같지 않지만, 정작 손끝에 전해지는 감각은 꽤나 뚜렷하다. 분명 글을 잘 써 내려가고 있었는데, 부러진 심 때문에 흐름이 뚝 끊겨 버린다. 부러진 조각을 털어내고 다시 깎기 전까지는 어떤 글씨도 제대로 남길 수 없다. 이혼이라는 사건도 그렇다. 오래도록 함께 이어질 줄 알았던 관계가, 작은 압력과 반복된 마찰 끝에 결국은 부러져 나가며 손에 쥔 채 더는 글을 이어갈 수 없게 만드는 순간. 그 부러짐의 소리는 삶을 멈춰 세운다.


심이 부러지는 순간은 갑작스러운 듯 보이지만, 사실은 서서히 금이 간 결과다. 연필심은 단단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이미 흠집이 나 있었고, 작은 힘만 더해져도 그 흠집을 따라 금은 번지고, 결국 끊어진다. 부부 사이도 다르지 않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오랜 시간 쌓여온 불만과 상처가 속에서 균열을 만들어낸다. 결국 어느 날, 별것 아닌 대화 중에도 문득 그 균열이 소리를 내며 드러난다. 이혼은 마치 그 순간처럼, 축적된 금의 최종적인 결과일 뿐이다. 그렇기에 ‘왜 갑자기?’라는 질문은 대체로 공허하다. 이미 오래 전부터 틈은 생겨 있었던 것이다.


부러진 연필심을 그냥 이어 쓰려 하면 어떤가. 손끝은 불편하고 종이는 흠집만 남는다. 글씨가 흐트러지고, 힘은 헛나가며, 끝내는 종이를 찢어 버리기도 한다. 부부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미 부러진 결을 무리하게 붙여 이어가려 하면 서로에게 더 깊은 상처를 낸다. 억지로 평온한 척해도 글씨는 고르지 못하다. 부러진 심을 인정하지 않고 그냥 쓰겠다는 것은, 손끝의 아픔을 감내하며 종이를 훼손하는 일에 불과하다. 관계 역시 억지로 이어 붙이려 할수록 서로의 마음에 불필요한 흉터만 남긴다.


하지만 연필은 부러졌다고 해서 쓸모를 다하는 것이 아니다. 잠시 멈추고, 칼로 다듬으면 여전히 새 글을 써 내려갈 수 있다. 때로는 심이 너무 짧아져 손에 잡히지 않을 때도 있지만, 연필깎이에 넣고 새로 날을 세우면 또렷한 글씨가 나온다. 이혼 또한 그러하다. 부러진 관계가 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다시 써 내려가기 위한 준비 단계다. 중요한 것은 부러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조각을 과감히 털어내는 용기다. 인정하지 않고 억지로 쓰려 하면 손끝만 아플 뿐, 새로운 문장은 결코 시작되지 않는다.


연필을 깎는 과정은 사실 번거롭다. 손때가 묻고, 가루가 떨어지고,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으로 깎이기도 한다. 이혼 절차 역시 마찬가지다. 복잡한 서류, 갈등의 언어, 서로를 겨누는 말들이 흩날린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과해야만 새로 다듬어진 심이 나온다. 그 고단한 절차 없이는 새로운 문장을 시작할 수 없다. 누군가는 연필을 깎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며 그냥 부러진 채 억지로 글을 쓰려 하겠지만, 끝내는 흐트러진 글씨로 인해 다시 멈춰 서게 된다. 차라리 그 시간을 들여 바르게 다듬는 편이 훨씬 이롭다.


때로는 연필심이 자꾸만 부러져서, 연필 자체를 던져 버리고 싶은 순간도 있다. 왜 나만 이런 연필을 쥐었나 원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연필심은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힘의 방향과 세기, 종이와의 마찰이 만들어낸 결과일 뿐이다. 이혼도 비슷하다. ‘누가 잘못했느냐’라는 질문은 답을 쉽게 내기 어렵다. 결국은 두 사람이 걸어온 길과 그 과정에서의 힘이 만들어낸 부러짐이다. 원망만으로는 그 사실을 바꿀 수 없다. 오히려 중요한 건, 지금부터 어떤 연필을, 어떤 손길로 다시 잡을 것인가다.


연필로 쓴 글은 언제든 지울 수 있다. 하지만 지운 자리에는 흔적이 남는다. 이혼 또한 그렇다. 서류상 혼인은 끝낼 수 있어도, 함께한 세월의 흔적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 흔적을 애써 지우려 하기보다, 그 자리에 새로운 글을 덧대어 나가는 것이 더 현명하다. 흔적은 남되, 그 위에 다른 의미가 쌓이면 결국 새로운 이야기가 된다. 부러짐의 흔적을 지우려 애쓰기보다는,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장을 시작하는 것이 삶을 이어가는 길이다.


글을 쓰다 보면 연필심이 부러지는 순간은 불가피하다. 어떤 이는 자주 부러뜨리고, 어떤 이는 조심스럽게 오래 쓰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나 언젠가는 그 ‘딱’ 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중요한 건 그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이다. 멈춰 서서 연필을 다시 다듬을 용기를 가진 사람은 결국 더 또렷한 글씨를 써 내려간다. 이혼의 순간도 마찬가지다. 부러짐을 받아들이고, 그 조각을 털어내며, 새로운 날을 세우는 사람만이 삶의 다음 문장을 시작할 수 있다.


이제는 글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부러짐을 핑계로 책을 덮어 버릴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순간이야말로 삶을 다시 써 내려가기 위한 신호일 수 있다. 연필심이 부러졌다는 것은, 다듬어야 할 때가 왔다는 뜻이다. 이혼이 찾아왔다는 것은, 새로운 문장을 쓸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인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멈춘 자리에서 다시 이어 쓸 수 있다. 삶은 결국, 계속 써 내려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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