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FT 그리고 물류
어렸을 적 치토스가 오리온을 통해 유통된 적이 있었다. 오리온 치토스 하면 공룡 스티커가 떠오른다. 인생 최초의 수집 경험으로 기억된다. 치토스 한 봉지를 사면 공룡 스티커 한 장이 동봉되어있는데 그 스티커를 붙이는 수집판에 붙여서 모으면 된다. 약 15장 정도만 모으면 되는데 한 두 종류의 스티커의 뽑기 확률이 극악이었다. 그러다 보니 과자를 먹기 위해 치토스를 구입하기보다는 마지막 스티커를 얻기 위해 광기 어린 구매를 했다. 잘 생각해보니 집에 치토스 보관 용기도 꽤 큰 녀석으로 구비해 놓았었다. 상당히 많은 과자를 버리기도 한 것 같다. (등짝이 남아나질 않았어야 하는데 묵묵히 지켜본 어머님이 감사하기만 하다) 여하튼 그 공룡 스티커를 모으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치토스를 구매했었고 결과적으로 한판을 다 완성했다. 완성된 한판을 일정 기한까지 오리온 사서함에 보내면 회원증과 함께 과자 선물세트가 왔었다. 그 과자 선물세트를 하나를 받기 위해 과자 10봉은 족히 버렸던 아이러니가 판치는 경험이었지만 아직도 그 희귀함을 갈구하는 나의 경험은 진하게 남아있다. 이후에 유령의 집, 따조 등등 수집욕을 자극하는 이벤트는 더 많이 남아있었다. 같은 맥락으로 국진이 빵, 포켓몬 빵이 새록새록 기억난다.
NFT라는 단어는 각 종 미디어를 통해 한번은 들어봤었지만 크게 관심이 없었다. NFT라는 단어를 제대로 처음 귀 기울여 들은 것은 사무실이었다. 옆 자리에 앉은 동료분이 NFT 프로젝트의 담당이었다. 동료분은 아주 진지하게 회사 고위 임원분들을 상대로 열정적으로 피칭하고 있었다. 그 프레젠테이션의 내용이 좋은 건지 귀동냥으로 듣다 보니 신세계다. 호기심이 생겼고 가장 쉬워 보이는 책을 한 권 구매해서 읽기 시작했다. 블록체인, 메타버스, 가상화폐, NFT 등등 요즘 아주 핫한 단어들이 즐비했다. 여러 가지 어려운 개념들도 많았지만 정리해보면 블록체인 기술의 발달로 가상세계에서의 트래킹이 매우 선명해졌고 그 트래킹이 하나의 증빙이 되어 새로운 소유권의 개념을 만들어 낸다. 그 소유권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가상세계에 가상화폐도 있고 NFT도 있다. NFT는 상품을 뜻하는 개념이고 가상화폐는 말 그대로 돈이다. 돈은 숫자로 표현이 되고 1은 1을 뜻하지만 NFT는 상품이다. 따라서 NFT의 가치는 1과 같은 숫자의 개념이 아니다. 만약 가상화폐가 없다면 물물교환이 되어야 하는 것이 NFT이다. 역사적으로 물물 교환으로 시작하여 돈의 개념이 생겨났지만 진화한 인간에게 역사를 되풀이할 시간은 없다. 따라서 가상세계에서는 돈과 물품이 함께 만들어 냈다. NFT시장은 가상화폐가 꼭 따라다닌다.
그런데 머리 아픈 NFT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뒤로하고 현상만 지켜보면 꼭 치토스 스티커 같다. 마치 수집욕에 기반한 광기 어린 현상으로 보이는데,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열광할까? 거기다 가상 세계의 소유권과 세트로 여겨지는 가상세계, 즉 메타버스는 더 핫한 주제다. 수많은 빅 테크 기업들이 메타버스를 이야기한다. 일반 사람과는 점점 멀어 저가는 테크 기술의 초격차일까? 아니면 패러다임 변화의 전초전일까? 어떤 고민을 해도 기술적 접근을 하면 이내 지쳐버린다. 기술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으니까 더 그렇다. 그냥 나답게 일상과 삶을 통해 접근해 보는 법이 가장 유효해 보인다.
NFT에 대한 설명을 읽다 보면 소유권과 희소성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품'이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가상세계에의 진품이라. 진짜가 나타났다는 이야기인데 애초에 가상이라는 단어와 진짜라는 단어가 어울리기는 한 걸까? 진품에 대해 생각해 보면 본능적으로 생각나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LVMH, GUCCI, Chanel, Hermes 등 명품이라고 불리는 브랜드들의 각 종 상품부터 크레모나에서 생산된 값비싼 현악기들까지 어떤 유서 깊은 브랜드들이 디자인한 인증이 가능한 상품들이다. 이것들은 현실에서 소유가 가능하다. 소유가 가능하다는 것은 소유욕과 연결된다. 특정 브랜드의 상품을 소비하고 그 브랜드의 이미지를 나에게 대입한다. 종종 비난의 대상이 되지만 끊임없이 논란이 되는 것을 보면 명품 소유욕은 인간에게 정말 잘 통하는 공식이다. 역사를 따지고 보면 인기 있는 웬만한 정치 사회적 담론보다 더 수명이 길다.
소유욕의 근간에는 희소성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능력을 갖춘 소수의 사람들 만이 브랜드를 소비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경제능력이 없이 소유욕만 있는 사람들을 위한 가짜상품의 시장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처음에는 조악한 상품들의 시장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의 A급/S급으로 통칭되는 가짜 상품들은 진짜와 구분이 어렵다. 너무 구분이 어렵다 보니 마치 위조지폐를 감별하듯이 스티치와 숨겨져 있는 브랜드 마크 등 현미경 같은 안경을 끼고 들여다봐야 진품 구별을 해낼 수 있다. 결국 실제로 특정 브랜드의 상품이 이미지로 인식되기 위한 수준의 진품 구별은 일반인이 불가능한 정도다. 그래서인지 우스갯소리로 '비싼 차를 타고 가짜 명품을 걸치면 다 진짜인 줄 안다'라는 말도 있다.
삼성 디스플레이에 근무했던 친구가 저녁에 반주삼아 만났던 날에 디스플레이 시장에 대해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몇 년이 된 이야기로 지금은 또 현실이 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그날 그 친구의 핵심은 이랬다. '한국이 디스플레이 분야의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 있어. 근데 그 기술력이 너무 높아. 사람들이 눈으로 화질을 구별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났기 때문에 오히려 다운스펙의 값싼 중국 상품이 시장에서 주가 되어가는 현실이야.' 갑자기 이 대화가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생산기술의 발전과 진품에 대한 정의는 큰 상관관계가 있을 것 같다는 직감 때문이다.
상당히 많은 브랜드 사들은 그 공장을 중국에 두는 경우가 있다. 모든 생산 설비를 브랜드사가 가지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에 외주를 준다. 물론 생산 자체는 아주 높은 기준으로 이루어지겠지만 1번 생산라인과 2번 생산라인에서 생산되는 상품의 브랜드가 각기 다를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과거의 나이키 중국 공장이 그랬다고 한다. 1번부터 10번까지 라인에서 생산된 상품은 나이키 정품이었고 10번부터 12번의 라인은 다른 외주를 위한 설비였다. 거기서 나이키 가품이 찍혀 나온 것이다. 지금 나이키가 어떻게 생산을 관리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진품에 대한 생각이 많이 지게 하는 사례이다.
이쯤 되니 가상공간에서의 진품에 대한 정의를 시도함에 앞서 실 생활에서의 진품에 대한 정의도 매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글에서 자주 쓰는 '도메인'이라는 단어는 아마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IT회사에서 주로 사용하는 단어인 것 같다. 사실 나도 IT회사로 이직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단어이지만 도메인 전문가로서 활동하는 나는 온갖 대화에 '도메인'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내 '도메인'은 SCM 혹은 물류라고 불린다. 두 단어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지만 어찌 됐든 움직이는 모든 수요와 공급에 대해 고민하고 있기 때문에 무엇이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다만 이 영역도 이전처럼 움직이는 기술에 대해서만 고민하지 않는다. 특히 커머스라는 것과 엮어서는 상품 자체의 정보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된다. 그 관점에서 누구보다 쉬운 상품의 인식과 정보의 추출을 생각하게 되는데 여기서도 진품/가품 문제는 존재한다.
유통에서 상품을 관리할 때는 편의성을 위해 바코드를 사용한다. 일정한 상품에 물리적으로 바코드를 부여야 하여 관리하는 방법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같은 바코드가 붙어있는 상품은 동일한 상품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누군가 가짜 상품을 넣어두고 바코드 갈이를 한다고 해도 많은 상품을 다루는 유통에서는 그 확인이 어렵다. 결국 어느 날 재고조사를 통해서 가품 확인을 하거나 고객이 가품이라고 클레임을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아무도 모르게 지나갈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진품 여부가 중요한 브랜드사에서 NFT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모양이다. 가상과 현실세계의 소유권 연결을 위해서도 NFT 기술을 염두하는 것 같다.
글이 다방면으로 튀는 이유는 이야기하려는 객체에 대해 잘 정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가상이라는 세계가 사람들에게 현실과 대등한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날이 온다고 가정했을 때 막강한 소유권의 플랫폼이 하나 더 생긴다고 생각하면 그나마 정리가 된다. 이쯤 되면 중요한 기술이 맞는구나 싶지만 아직 살갗으로 다가오는 현실은 아니다. 보수적인 생각이 가상은 가상이라고 선을 긋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럼에도 NFT라는 단어가 자꾸 신경을 쓰이는 이유는 오프라인에서의 진품 조차도 정확히 정의하지 못하는 사실에 있다. 가상이 아닌 공간에서의 진품이라는 정의가 쉬웠다면 NFT를 신종 치토스 스티커 행사 정도로 취급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가상과 현실을 이어주는 탁월한 제품이 등장한다면 그때는 NFT에 먼저 둥지를 튼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번외]
진짜와 가짜의 구분은 실재(實在) 더하기 믿음에 있다고 생각해본다. 최근 여러 가지 사회 현상에 대한 온라인에서의 의견을 보면 극과 극을 달린다. 온라인에서의 극과 극 현상을 다큐멘터리로 만든 넷플릭스 콘텐츠도 본 적이 있다. 알고리즘에 의하여 내가 관심이 있고 믿고 싶은 영역만 더 많이 보여주는 세상이다. 그 세상에서의 진짜와 가짜는 내가 속한 그룹마다 다를 것이다.
가상에서의 진짜는 내가 믿고 있는 것의 가상공간에서의 실재일 것이다. 그러면 추구하는 가치가 그룹에 따라 많이 달라질 것으로 생각된다.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지금 오프라인에서도 가치 그룹에 따라 소규모로 소비되는 상품들도 많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물리적인 공간에 속해있기 때문에 극단적인 상황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가상세계에서는 단순히 브랜드 레벨이 아니라 소유권을 다루는 플랫폼, 아니 모여지는 가상공간조차 가치에 따라 나누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논의하는 곳도 가상이고 구매처도 가상이기 때문에 국경도 필요 없다. 어쩌면 가상현실에서는 아예 다른 개념의 플랫폼이 다수 생기고 이것이 나라라는 개념조차 위협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가상현실에서의 국경은 물리적 공간 개념의 부재로 무너져있는 사실도 한몫 거둔다. '나 xx 메타버스 사용해'라는 말이 '나 한국사람이야'라는 말과 비슷해 질까?
현실적으로는 지금 나만의 콘텐츠를 기획하는 사람들은 글로벌도 염두에 두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