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문과생 신입사원 자소서
커뮤니케이션 스킬. 살아가려면 당연히 해야 하는 '커뮤니케이션' 행위에 '스킬'이라는 말을 붙여 억지로 기술화시킨 모양새이다. 이 단어를 사용하는 본인이 단어의 어색함과 억지스러움을 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꼭 쓰여야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단어이다. 특히 문과 계열 졸업생들의 신입사원 지원서를 받아보면 99%는 들어가 있는 단어이다.(생각해보니 정말 거의 100%에 가깝다) 문과가 좋은가 이과가 좋은가의 문제가 아니다. '스킬' 즉 '기술'이라는 것이 증명이 되어야 일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시대에서의 문과생들은 딱히 학과에서 배운 기술이랄 게 없다. 졸업시즌에 가까운 예비 졸업생들은 허겁지겁 본인의 짧은 학부 이력에서 '스킬'을 발췌하려 하는데 도통 쓸만한 게 없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은 경험, 토론한 경험, 프로젝트를 이행한 경험들을 하나로 모아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도출한다. 아무래도 기술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기술을 가지고 성공한 경험에 대한 예시도 필요해 보인다. 아니, 자소서를 컨설팅해주는 업체에서는 꼭 경험과 함께 쓰라고 조언한다. 결과적으로는 '커뮤니케이션 스킬' 뒤에는 '프로젝트 경험', '동아리 경험'이 실과 바늘처럼 쫓아다닌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제가 프로젝트 팀의 리더로서... 어려움이 있었는데.... 단합을 이끌어내어....'라는 문장이다. 조금 이상한 점은 통계적으로 프로젝트 리더만 기업에 지원하는 것 같다.
같은 주제에 특별한 혜안을 가진 사람은 소수이다. 그 소수의 사람도 단순히 다른 사람들보다 경험이 더 많기 때문에 방법을 아는 경우가 많다. 나를 포함한 평범한 사람들은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같은 상황에서 비슷한 사고와 행동을 한다. 자소서에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쓰는 문과생들의 노력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고 싶지 않다. 오히려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그 평범함 속에서도 피해받지 않으려는 노력을 칭찬해야 한다. 다만 그런 고통을 겪는 문과 졸업생에게도 조금은 도움이 되고 현업에서 기술의 진보를 통한 위기를 겪는 나 자신도 피해 갈 수 없는 질문이 있어서 공유하고 함께 생각해보고 싶다.
그토록 반복해서 사용하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단어, 우리말로 소통이라는 기술의 핵심이 무엇일까? 단순히 생각해보면 어떤 임의의 정보가 발생이 되면 목표에 따라 정보를 잘 흘려보내는 기술일 것이다. 사람은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사람 간 소통의 기술은 언어의 기술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기업은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쓰인 자소서보다는 토익, 토플, HSK 등등 다른 언어에 능통한 사람들을 더 많이 우대하는 경향이 있다. 기업에 입장에서는 당연하다. 증명하기 어려운 기술보다는 정량화된 기술을 가진 사람들에게 가산점을 주는 것이다. 다만 정량적인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우대가 항상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오지는 않는다.
영어를 정말 잘하지만 공감능력이 제로인 사람과 영어는 잘 못하지만 공감능력이 높은 사람이 일을 할 경우를 생각해보자. 경우에 따라서는 전자가 유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이 생각하기에는 후자가 일을 더 잘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 판단의 저변에는 말이 통하는 사람은 일을 쉽게 해결한다는 전제가 있다. 번역 툴을 이용할지언정 남의 말을 공감하는 사람이 더 의미 있는 결과물을 가져다줄 것이라 예상한다.
그러나 내 관점에서는 둘의 우위를 판단하기 어렵다. 가장 중요한 신상정보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 정보는 바로 '일에 대한 이해'이다. 소통에서는 아주 중요한 룰이 있다. 바로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쌍방이 정확하게 정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이야기하는 두 사람은 아예 다른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는 소통이라고 정의하기보다는 단순한 대화로 보는 게 좋다. (한 가지 사안을 가지고 아예 다른 정치색을 가진 두 친구가 하는 대화를 떠올려보자. 둘 다 답을 내기는커녕 요리조리 피해 간다. 오히려 주제를 서로 다르게 잡고 현상을 유지하고자 한다. 기술로서의 커뮤니케이션은 효율적인 답을 내야 하기 때문에 이 같은 대화는 도움이 안 된다.)
따라서 기업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는 '일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시작한다.
주변에서 평가가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그 인간적인 평가와 일은 거의 대부분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전자가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그것은 태도와 관련되어 나오는 부수적인 능력의 가중치의 결과 값일 것으로 생각한다. 오히려 나빠 보이는 사람이 기업의 리더인 경우가 많다. 이것도 어떤 데이터에 의한 증명이 되는 내용이기보다는 단순히 현상에 따른 개인적 판단이다. 결과적으로 사람이 좋고 나쁘고 가 기업에서의 성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바로 일에 대한 이해, 즉 본인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아는 사람들이다. 평소에 대화는 너무 재밌게 잘되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상하게 일을 할 때는 소통이 잘 안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그들과의 대화에서는 보통 디테일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들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깊이 이해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1차원적 현상 외에는 지식을 넓히지 않는다. 게다가 싸울 일도 없다. 내가 좋은 아이디어를 제안한다면 아마도 그것이 더 좋겠다며 맞장구 칠 확률이 높다. 그것은 내가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가정하에 일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가지고 의견을 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분들에게 일이 주는 가중치가 인생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이는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 단순히 일을 하는 개인이 회사와 임금에 임하는 전략과 콘셉트가 다를 뿐이다. 그렇지만 이 글의 목적은 소통을 기업에서의 도구로 더 생산적인 방법을 모색해 보는 시도이기 때문에 황희 정승식의 결론으로 끝낼 수는 없다. 결국 일을 잘 안다는 것을 파헤쳐서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러면 일을 잘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업에서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정보들이 혼재해 있다. 그 정보들을 파악하고 회사에 통하는 나만의 알고리즘을 짜야한다. 보통 고리타분해 보이는 기업의 비전에 알고리즘의 키가 있다. 같은 정보를 다뤄도 기업의 비전에 따라 결과 값이 다르다. 따라서 기업의 비전을 알고 세부 전략을 이해하고 정보들을 파악해야 된다. 결론적으로 어떤 정보가 들어와도 빠르게 이해 분석하여 기업의 입맛에 맞는 결과물을 내어놓는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일을 잘 아는 것의 핵심은 '기업에 통하는 나만의 알고리즘을 갖는 것'과 '많은 정보를 빠르게 이해하는 것'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둘 중의 상위의 기술은 알고리즘이다. 알고리즘은 비전과 전략을 이해하고 정보를 꿰뚫는 경험을 반복적으로 하고 난 후에만 생긴다. 따라서 나만의 알고리즘 갖기는 장기 주제로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러나 '많은 정보를 빠르게 이해하는 것'에 대한 접근은 상대적으로 쉽다. 거기다 최근의 데이터 중심의 사고 풍토 아래 그 접근성이 훨씬 높아졌다.
예를 들어보자. 이전의 기업에서는 어떤 사안이 있을 때 많은 이해관계자를 여러 가지 언어를 통해 설득해야 했다. 데이터, 타이밍, 참신함, 기획안을 밀어줄 정치적 세력 등등 하나하나가 다 기술이다. 특히 사내정치와 타이밍은 정량적인 것이 아님으로 그 분야에 특히 강한 사람들이 득세했다. 그러나 요즘의 기업들은 다르다. 어떤 기획안이 있으면 가장 우선적으로 그 근간이 되는 데이터를 찾는다. 시각적으로 정리가 잘 된 데이터도 좋지만 최근 들어서는 로우데이터까지 요청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모두 데이터라는 언어를 제1의 언어로 사용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다.
조금 더 나아가 보면 데이터를 잘 안다는 것은 '데이터가 의미하는 것을 잘 아는 것'과 '데이터가 어떻게 생기고 모이고 흩어지는'에 대해 아는 것으로 나뉜다. 전자는 해당 도메인에 대한 경험을 통해 획득할 수 있다. 후자는 시스템적 사고라고 부르는 것 같다. 모두가 알다시피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일반적인 내용으로 기업, 도메인과 상관없이 따로 학습을 통해 습득할 수 있는 스킬이다.
정리하자면 스킬로써의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은 그 도구인 언어를 통해 무엇을 말할지를 아는 능력이다. 그리고 최근에 가장 유효한 언어는 상당히 많은 회사에서 통용되는 데이터이다. 데이터를 시스템적 사고를 통해 바라보는 능력을 기본으로 관심 있는 회사의 전략을 생각해 본다면 '커뮤니케이션 스킬'에 대한 기술이 조금 더 명확해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데이터는 현시대의 언어이고 시대에 따라 더 많은 언어를 습득해야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지금 사회가 어떤 언어로 이야기하는지를 많이 고민해보고 그 언어를 가지고 커뮤니케이션 스킬에 대해 고민해 보면 조금 날카로운 단어를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번외]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AI다. AI는 데이터라는 언어를 가장 강력하게 사용하는 기술이다. AI가 도래하는 시대는 데이터를 핵심 커뮤니케이션 스킬로 사용하고 있는 인재에게 어떤 세상일까? 그 결과가 밝지 않다고 해도 우리는 데이터에 대한 이해를 버리면 안 된다. 지금 내가 가진 것이 세상의 변화를 통해 흔해진다고 하더라도 그 흔한 스킬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다음 단계로 가는 티켓을 손에 들지도 못한다. 기술은 이전의 기술을 바탕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다만 방향성을 생각해 본다면 데이터와 합리성이 인간에게 주는 역설에서도 살아남을 만한 스킬을 구현해야 한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탁월한 이벤트는 데이터의 합리성에 의거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우연한 방법으로 일어나거나 혹은 도메인을 너무 잘 아는 사람이 감각적으로 비틀어 버린 역설에 의거한다. 따라서 용케 기업에 잘 입사하고 도메인에 익숙해졌다면 그 분야를 비틀어 볼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지금 하는 일에 국한하여 시간을 투자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내가 더 잘 알고 좋아하는 분야라면 더 좋을 것이다. 다만 적게는 하루의 1/3 많게는 2/3 이상의 시간을 쏟는 일에서 그러한 인사이트를 모색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보이기는 하다. 아마도 위에서 언급한 '대화는 재밌지만 일에 디테일에 부족한 사람'들은 오히려 본인이 잘 아는 분야에 가중치를 높게 두고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