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가 쉽지 않은 30대 중반의 상념
꼰대라는 단어로 검색을 하면 '권위적인 사고를 가진 어른을 비하하는 은어'라는 정의가 나온다. 문장 중 가장 중요한 단어는 '권위'인데 그 권위라는 것의 사전적 정의와 '꼰대'를 1:1로 연결하면 아리송해진다. 그 이유는 권위가 이상하게도 그렇게까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권위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1. 남을 지휘하거나 통솔하여 따르게 하는 힘
2. 일정한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위신
1번은 남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상황에 따라 '강요'라는 부정적 의미를 찾아낼 수 있지만, 2번의 경우에는 표면적으로 뭐하나 부정적인 의미를 찾아내기 어렵다. 사실상 2번은 '전문가' 혹은 '유명인'처럼 오히려 모든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의 유형이 아닌가?
나는 꼰대일까? 이 질문을 하게 된 계기는 1번의 '강요'라는 상황과는 거리가 있다. 물론 '강요'의 측면에서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100%의 자기 확신은 없지만 나의 개인적인 질문은 2번 정의에서 기인한다.
바야흐로 변화의 시대이다. 변화하지 않으면 발전도 없다는 마음으로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하다 보니 꽤 좋은 커리어가 쌓였다. 꽤 좋은 커리어라고 말하면 거쳐간 회사의 네임밸류와 승진 이력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커리어의 확장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좋은 커리어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며 직장인 이후의 삶까지 계획한다는 면에서 나는 꽤 성실히 사는 것 같다. 다만 문제는 지금이라는 시간과 현실이라는 공간에서 발생한다.
지금까지의 내 커리어는 '의사소통(https://brunch.co.kr/@02435e251863494/9)'을 통한 문제 해결에 기반했다. 그러다 보니 내 주장을 상대에게 효과적으로 납득시킬 상황을 만드는 언어/논리/상황/정치 등 다양한 요소에 대해 기민하게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그런 점들이 동료들에게서 인정받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새로 시작한 직무는 조금 많이 다르다. 냉철하고 딱 떨어지고 깔끔한 스타일의 무기가 필요하다. 훨씬 더 많은 지식이 필요하고 그 내용이 꽤나 체계적이고 방대하다. 게다가 이제는 쌓여버린 썩 좋은 경력 때문인지 일을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가르침을 받지 않고도 그 분야의 전문가들보다 더 능력 있는 척을 해야 하니 이것 참 쉽지 않다. 변화가 이렇게 어려운 거였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어렸을 적 롤모델을 묻는 질문에는 딱히 대답할 사람이 없었다. 대답을 못하고 나면 괜히 생각 없는 사람처럼 낙인찍힐까 두려워서 대화 말미에는 꼭 이런 말을 붙이곤 했다. '음, 롤모델은 없지만, 늙어도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러면 사람들은 '지혜로운 사람은 뭔데?'라고 묻곤 했고 그 대답은 '항상 변화에 적응하는 사람이요.'라고 공식처럼 답변했다. 그랬다. 나는 변화에 적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한 말을 꽤 잘 지킨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실제로 최근 8년 정도, 나는 변화에 적응을 잘해왔다. 그 과정에서 많이 배웠고 나만의 시야도 생긴 것 같았다. 조금 과장하면 '내 분야에서 전문가로 남들에게 인정받고 있다'라고 생각했다. 엇, 권위의 2번 정의가 뭐였지?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단 1명에게서라도..)을 맛보게 되면 그것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이 너무 어렵다. 타인에게서 인정받는다는 것은 일정 분야에서 납득할만한 성과를 보이거나 그 이상의 것을 보여 준다는 의미다. 결국 특정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더 많은 경험을 헤치고 난 사람들이 타인에게 전문가로 인정받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경험이라는 것이 '일(특정 분야의 노동)'의 형태를 띠지만 문제 해결 과제에서는 얻는 인사이트는 인간적인 것이 많다. 결과적으로 일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여러 가지 인간의 반응과 상황을 분석한 사람이 본인의 특성을 잘 파악하여 특화시킨 자아가 남들에게 인정받는 전문가라고 생각한다.
전문가는 답변을 쉽게 내놓지 않는다. 답안지가 A와 B만 있는 객관식 문제에서도 상황에 따라 A일수도 B일수도 있다고 대답하는 것이 전문가의 특징이다. 그만큼 다양성에 대해 열려있다. 문제는 그 다양성을 '나'라는 존재에 반영하려고 할 때의 거부감에서 시작된다.
내가 지금 부족한 역량이 지식이라면 그것은 학습을 통해 채우면 된다. 그런데 더 냉철하고 깔끔하라는 주문을 들으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글쎄, 그 분야의 스타일만 너무 강조하는 거 아니야? 오히려 모두 그렇게 냉철해서 일이 막상 진행이 잘 안 되는 거 아니었나?' 혹은 '그래 그런 스타일이 아무래도 좋겠지. 근데 그건 내 강점이 아닌 건데.. 괜히 이길로 가는 건 시간 낭비 아니야? 그냥 내 분야에서 전문가로 살아가면 마음도 편하고 좋은데..'
일의 문제가 생기면 사려 깊게 판단을 도와주던 다양성이 나 자신의 문제에 와서는 지금까지 쌓여온 평판을 지키려는 방패로 쓰인다. 더 많은 다양성을 가진 더 높은 수준의 전문가라면 그 벽은 더더욱 높아질 것이다. 그러다 완전히 벽이 완성된 그날엔 '네가 뭘 안다고 떠들어, 내 분야에서 나를 인정하는 수준은 이 정도인데'라고 말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인정받는 것, 아니 인정받았다고 여기는 것에서 냉정하게 나를 떼어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것이 정말 먹히는 기술이었다고 하더라도 세상이 변하는 한 그 기술도 꾸준히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그 업그레이드 기회는 더 넓은 세상에서 주어진다. 결국 같은 것만 계속 봐서는 크게 변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퇴보하는 제품의 공급자들은 신제품을 발매할 때마다 항상 새롭다고 하는데 고객이 볼 때는 이전과 달라진 게 없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제품이 완전히 변했다고 하는데 정말 완전히 변해서 이전의 매력조차 없어진 경우다.
내가 좋은 제품(혹은 지혜로운 사람)으로 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자동차에 관심이 있어서 가끔 취미로 인터넷 커뮤니티의 글을 탐독한다. 한국의 프리미엄 승용차를 평가할 때 '헤리티지(Heritage)가 없다'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그 주된 이유로 정체성 없는 디자인 변화가 꼽힌다. 같은 커뮤니티에서 유럽 프리미엄 승용차를 평가할 때는 '사골이냐'라는 표현도 많이 보인다. 그 변화가 너무 미미하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악평을 얻기 쉬운 이 커뮤니티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호평하는 차량도 있다. 그 평은 보통 이렇다. '이 브랜드가 만들면 달라. 이게 SUV이냐 완전 세단인데.'
SUV가 현재를 나타내는 트렌드라면 세단의 움직임은 기존의 전문성이다. 결국 전문성을 가지고 트렌드를 압도해가는 것이 헤리티지의 본질이다.
차량 평가에는 이러쿵저러쿵 냉철하면서 나 자신이 어떤 브랜드인지 고민해봤을까? 전문성이라도 너무나 확실하면 조금만 변화를 추구하고 어떻게든 헤리티지라고 밀어붙일 수라도 있겠지만 그 정도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결국 헤리티지를 갖는 다는 것은 어렵지만 그 방법은 알 것 같다. 트렌드에 맞춰가며 정체성을 잘 키워가다 보면 그 살아남은 것 중 몇 개는 헤리티지가 된다는 것을.
다시 '꼰대'라는 단어로 돌아와서 앞으로는 이런 정의를 썼으면 작은 위로가 될 것 같다.
'권위적인 사고를 가지고 의심조차 하지 않는 사람을 비하하는 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