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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Sep 21. 2022

<농촌 체험하기> 아이러니

- ‘농촌에서 살아보기’ 6개월 과정에서 겪은 스물 아홉번째 이야기

  “톡 톡 톡” 

  프라이팬 안의 쥐이빨 옥수수가 뜨거운 가스레인지 불에 견디지 못하고 튀어 올라서, 프라이팬 덮개에 부딪치곤 했다. 동료들은 멍하니, 옥수수가 튀겨지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언니네 텃밭 회장님이 횡성군의 장날에 전통 씨앗을 홍보하기 위한 이벤트 중 하나라면서, 우리들에게 보여주었다. 전통 종자인 프라이팬 안의 쥐이빨 옥수수가 튀겨지니까 매우 맛있었다. 


  6월 중순 어느 날 횡성읍에 있는 언니네 텃밭에 도착하니까, 구면인 팀장님, 회장님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미 와본 적이 있는 곳이라서 그런지, 정감이 느껴졌다. 사무실의 회의 탁자에 자리잡은 우리들은, 회장님이 설명하는 토종씨앗 지키는 사업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이미 토종씨앗이 사라져가고 있는 상황인데다가, 보유하고 있는 토종씨앗도 재배하는 과정에서 다른 유사 종들과 교배가 이루어지면서 전통 씨앗을 찾기 어려운 실정이란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토종 씨앗을 찾고 재배하는 사업은, ‘전통 종자 지키기’라는 측면에서 중요하다는 설명이었다.

  반면 개량종자를 만드는 역할을 하는 곳이, 정부기관인 농업기술센터였다. 농업기술센터는 농민들의 소득을 올리는 것이 목적이어서, 병충해가 적고 생산량이 많은 개량종자를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전통 씨앗을 지키려는 언니네 텃밭과는 대척점에 있는 사업이다. 정부기관이 농민들을 위해서 개량 종자 개발을 하는 반면, 여성농민들이 회원인 언니네 텃밭에서는 오히려 전통 씨앗을 지키는 사업을 한다는 말이 아이러니하게 들렸다.

  우리가 둘러앉은 회의 탁자 위에는 선비잡이콩(얼룩이콩), 퍼런콩, 서리태, 쥐이빨 옥수수, 벼 등의 재래 종자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이중 일부 종자를 우리들에게 심어보라고 나누어 주었다.


  언니네 텃밭에서 교육이 끝난 뒤,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서 횡성읍 중심가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넝쿨링 카페로 향했다. 10여년 전에 귀농을 해서, 이제는 사업이 안정화 단계에 들어선 곳이란다. 특수 작물을 재배하면서 카페를 운영하는 곳이었다. 천평의 부지에 살림집, 카페, 그리고 넓은 정원을 꾸며놓았다. 정원에는 머루포도와 애플수박 넝쿨로 치장을 해놓아서, 여름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줄 수 있었다. 

  카페 부지 옆에는 9백평짜리 수박밭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남자 사장님이 혼자서 가꾸고 있었다. 허름한 옷에 밀집모자를 쓰고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한때 종로학원 원장도 역임하였지만, 14년전에 귀농을 해서 10년동안 수학강사를 하면서 이 터를 가꾸었다고 한다.

  이 분은 종로학원에서 근무할 때,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해서 장이 내려앉아서 일어설 수도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으로 내려왔단다. 처음에는 이곳이 습지여서, 농어촌공사에서 싸게 임대를 해서 시작했고 이후에 매입을 했다고 한다. 이후 열심히 이곳을 가꾸면서, 건강을 되찾았단다. 그래서 농사 일이 곧 건강을 찾는 일이라는 신조를 가지고 있었다. 

  사장님은 정원의 천장부위에 만들어놓은 조그마한 그물망에서, 작년에 넣어놓았던 죽은 애플수박 부스러기를 보여주었다. 친환경 농사로 생산해낸 애플수박은, 절대로 썩지 않고 단지 말라비틀어질 뿐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만큼 몸에 좋은 것이라는 의미이다. 

  넝쿨링 카페의 점심식사 메뉴는 가지밥이었다. 가지를 넣어서 지은 밥을 양념으로 비벼먹으니까, 무척 맛이 있었다. 자연에서 나온 건강한 야채들로 만들어진 식사였다. 카페에 식탁이 7~8개 정도만 있어서 그다지 크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점심시간이 되니까 빈 자리가 없었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점심시간에 식사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건강한 밥을 먹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일 것이다.


  서울에서 회사에 다닐 때도 항상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생각이 있었다. 왜 생명을 단축시키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회사 생활을 해야 할까? 일을 하더라도 건강해지면서 스트레스를 덜 받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욕심일까? 살기 위해서 직장을 다니는데, 스트레스로 건강을 축내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였다.

  문득 하느님은 한쪽 방향으로 삶을 살아가는 방법만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방향성을 열어놓고, 사람이 스스로 선택하게 한다. 때로는 서로 모순되는 아이러니한 옵션을 주시기도 한다. 어떤 옵션을 선택하느냐가 그 사람의 삶의 컨텐츠를 만들고, 그 사람의 삶의 가치를 규정짓는다.

  넝쿨링 카페 사장님은 건강을 위해서 횡성군에 정착해서, 그동안 살아왔던 삶과는 전혀 다른 컨텐츠를 채워 나갔다. 물질적인 풍족함보다는 건강과 행복을 채워 넣는 컨텐츠를 만들어온 것이다. 넝쿨링 카페 사장님이 제시한 행복한 삶의 방향성이 나에게도 깨달음을 주는 메시지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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