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진 Nov 24. 2022

<농촌 체험하기> 갈등 2

- ‘농촌에서 살아보기’ 6개월 과정에서 겪은 마흔 두번째 이야기

  “지난 주말에 놀러온 딸 부부에게 수확한 옥수수를 싸주고 싶었는데, 하나도 없다고 해서 놀랐네요.”

  “지인들에게 열심히 판매를 하다 보니까, 우리가 수확한 옥수수가 부족할 정도로 주문이 많이 들어왔어요.”

  최선생님과 교장선생님간의 대화 내용이다. 최선생님이 점잖게 말을 시작했지만, 화가 나있다는 것이 얼굴에 나타나 있었다. 서울에 살고 있는 최선생님의 아들과 딸 부부가 가끔 산채마을에 놀러 오곤 했다. 지난 주말에도 딸 내외가 하루 지내고 간 모양이다. 서울로 돌아가는 딸 부부에게 최근에 수확한 옥수수를 챙겨 주고 싶었는데, 빈손으로 보낸 것이 못내 아쉬웠던 것이다.

  반면 교장선생님은 동료들간에 합의된 규칙에 따라서 지인판매를 한 것이기 때문에, 잘못한 것은 없다는 입장이었다. 우리는 이전에도 곰취나 곤드레를 지인 판매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판매수량에 제한이 없었기 때문에, 팔 수 있는 동료는 원하는 만큼 판매를 했었다. 문제는 곰취나 곤드레와 달리, 옥수수는 수확량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옥수수를 둘러싼 갈등이 표면에 드러난 것은 8월 중순 어느 날이었다. 옥수수를 8월초 1차 수확하였고, 1주 뒤에 교장선생님 부부가 5백개 정도를 2차로 진행했다. 두 차례에 걸쳐서 수확한 옥수수들은 모두 동료들의 지인들에게 판매되었다. 그중 교장선생님이 지인들로부터 1천개가 넘는 옥수수 주문을 받았다. 정작 옥수수를 키우느라고 고생한 동료들은, 제대로 된 옥수수를 맛도 보지 못한 상태였다.

  옥수수를 수확한 날에도 서로 갈등이 표면화 되면서, 하루 종일 동료들간의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까, 즐겁지 않았다. 아니 작업량이 많지 않았는데도 피곤하였다. 나는 남은 과정을 즐겁게 보내기 위해서는, 갈등을 해소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만큼 몇몇 동료간의 갈등이 심각한 수준이었다.

  6개월 교육과정중에서 이제 중간 지점인데, 앞으로 남은 약 2개월이 더 중요할 것 같았다. 그 기간이 6개월동안의 공동체 생활이 즐거운 추억으로 남느냐, 아니면 아픈 상처만 생각나는 시간이 될 것이냐의 갈림길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남자들만 술 한잔 하는 시간을 갖자고 제안했다. 남자들간의 감정의 골이 비교적 깊지 않았고, 서로 화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일정이 마무리된 후, 카페에서 대표님을 포함해서 남자 동료들 6명이 모였다. 맥주, 소주와 함께 간단한 안주거리를 각자 들고 왔다. 처음에는 서로들 갈등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했다. 구태여 껄끄러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이리라. 작업 계획이나 작업할 때 어려운 점 등을 이야기하였다. 그렇게 어느 정도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판단되었을 때, 내가 말을 꺼냈다.

  “모두들 3주전 두 번의 파티를 준비하면서 너무 힘들었고, 그 피로감이 남아있어서 서로 갈등이 생긴 것 같네요. 이제 남자들부터 서로의 앙금을 어느 정도 걷어내고, 남은 한달 반 동안 잘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하면 좋겠네요.”

  그러면서 갈등을 드러냈던 교장선생님과 최선생님이 서로 화해의 악수를 나누었다. 한번의 술 자리로 감정의 응어리까지 풀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라도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는 것이 훨씬 나았다. 


  동료들간의 갈등이 표면화 되는 시점에, 가족들과 같이 ‘비상선언’이라는 영화를 관람했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난생 처음 극장에서 눈물을 흘렸다. 비행기 안에서 바이러스 테러가 발생하자, 비행기 기장과 부기장은 비상선언을 하게 된다. 비상선언을 하게 되면, 각국 정부나 관련 단체들이 최우선적으로 비행기의 안전한 착륙을 지원해야 한다. 그런데 그때 지상에서는 비행기 착륙 반대 시위가 벌어진다. 사람들이 바이러스의 확산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살고자 몸부림치던 비행기 안의 사람들은 처음에는 지상의 반대시위에 어이없어 했다. 하지만 차츰 비행기 안의 사람들도 자신들의 착륙이 자칫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그리고 마침내 비행기를 착륙시키지 않기로 결정한다.

  송강호, 이병헌, 김남길, 전도연, 임시완 등 쟁쟁한 배우들이 참여했고, 300억원이 넘는 제작비가 투입되어서 관심이 집중된 영화였다. 하지만 BEP수준인 5백만명 관객의 절반도 못 되는 205만명이라는 다소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내고 말았다. 관객들이 영화에 빠져들 수 있도록 하는 스토리 구성이 미흡했던 것 같다. 같이 영화를 본 둘째 아들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영화의 스토리라면서 평가 절하를 할 정도였다. 감정의 몰입을 유도하는 데 실패하면서, 관객들이 영화를 이성적이고 비판적으로만 접근하도록 만들어 버린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농촌에서 살아보기’ 동료들의 모습이 투영되어 다가왔다. 바이러스의 강한 전염성에도 불구하고, 비행기를 착륙시키려던 사람들과 반대 시위를 하는 사람들간의 자기만 살겠다는 이기주의적 모습들. 마침내는 착륙하지 않기로 한 비행기 안의 사람들간에 의사 결정 과정과 희생정신.

  ‘농촌에서 살아보기’ 동료들 간에도 수십 년간의 사회생활에서 익숙해진 자기 중심적인 삶의 잔재가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다. 그 당시 옥수수 분배를 둘러싼 갈등이 극에 달한 시점이어서, 나에게는 더욱 이 영화가 가슴속 깊이 다가왔던 것 같다. 하지만 비행기 안의 탑승객들과 같이, 우리 동료들도 협력과 배려를 통한 희생정신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6개월동안의 공동체 삶이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경쟁이 판을 치는 도시 생활과 다르게, 농촌에서는 협력과 배려를 통한 공동체 정신이 더 중요한 삶의 기준점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이전글 <농촌 체험하기> 실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