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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Nov 30. 2022

<농촌 체험하기> 강요

- ‘농촌에서 살아보기’ 6개월 과정에서 겪은 마흔 세번째 이야기

  강원도 지상파 방송의 한 프로그램에서, 우리 산채마을에서 진행되고 있는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찍고 있었다. 단체로 작업하는 모습을 촬영한 데 이어서, 동료들과 개별적으로 인터뷰하는 모습도 찍고 싶단다. 나는 개별 인터뷰 영상을 찍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화장실 가는 척하고, 인근 작은 야산으로 피해버렸다. 한참이 지난 뒤 산에서 내려와 보니까, 전장군님 부부와 선미씨도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나타났다. 8월 중순에 촬영되었던 이 프로그램에 대해서, 우리 동료들은 그만큼 부정적이었다.


  광복절날 서울 집에서 가족들과 쉬고 있는데, 농촌에서 살아보기 동료들간의 카톡방이 울렸다. 이틀 뒤 강원도의 한 지상파 방송에서 우리의 프로그램에 대해서 촬영하고 싶단다. 그런데 우리가 진행하는 작업을 자연스럽게 스케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모습을 연출해달라고 한다. 태풍이 막 지나간 뒤라서 장마 피해를 복구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 이런 저런 일로 바쁜 와중이었다. 그런데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위해서, 온전히 하루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연출을 해달라는 것이다. 

  나와 몇몇 동료들은 카톡방에서 강하게 항의를 하였다. 우리가 계획했던 대로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촬영하는 것으로 바꿔달라고 요구를 했다. 바쁜 시기에 굳이 그들이 원하는 대로 연기를 해달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중간에서 소통을 담당했던 신반장이 무척 난처해했다. 자신도 강하게 요구해서 일부는 바뀌었지만, 더 이상은 어렵다고 방송국 측에서 이야기한단다. 동료들 사이에서는 굳이 이 촬영에 응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오자, 대표님이 끼어들었다. 횡성군청에서 요청하여 진행되는 것이니까, 응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것이다. 

  지난 4개월여동안 여기 저기서 인터뷰나 방송촬영을 하면서, 10번 가까이 응해줬던 것 같다. 이전에는 모두들 우리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찍어가거나 인터뷰를 해갔다. 그래도 너무 자주 촬영을 하다 보니까, 동료들이 부담스러워했었다. 그런데 강원도의 지상파 방송국 측에서 이런 무리한 요구까지 하니까, 다들 마음에 내켜 하지 않았다. 


  8월 17일 하루는 온전히 이 방송국의 촬영을 위해서 희생한 날이 되었다. 아침 9시에 촬영팀이 온다고 해서, 우리도 9시에 모였다. 어제 수확할 수 있는 옥수수를 일부러 촬영을 위해 남겨놓았고, 이것을 수확하기 위해서 옥수수 밭으로 향했다. 

    옥수수 수확 작업은 한 시간도 안되어서 끝났다. 우리가 새참을 먹는 장면을 찍어야 한다고 해서, 교장선생님이 감자를, 신반장이 옥수수를 삶아왔다. 우리가 생산한 작물로 새참을 먹는 장면이 담겨야 한단다. 우리는 옥수수밭 옆의 가장자리에 둘러 앉았다. 나는 카메라에 잡히기 싫어서, 구석자리에 앉아서 막걸리만 연신 들이켰다. 그때 신반장이 우리가 어제 수확한 꽈리고추가 한 박스에 4만 4천원으로, 지금까지 출하했던 것 중에서 가장 높은 가격이 나왔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이것을 듣고 환호하는 우리의 모습을 촬영했다. 이것도 미리 짜여진 각본대로였다.

  점심을 먹고 오후 1시에 산채마을 입구 정자에서 옥수수 포장작업을 하였다. 동료들은 20개나 30개 단위로 박스 포장을 진행하였다. 우리가 옥수수 포장하는 작업을 방송국 촬영팀이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을 했다. 

  옥수수 포장작업이 마무리되고, 우리는 송사장네로 향했다. 사실 이전에 송사장 농장에서 선도농가 교육을 진행했었다. 그래서 이날 추가적으로 방문할 이유가 없었다. 단지 방송국 촬영 때문이었고, 송사장도 바쁜 와중이었기 때문에 달갑지 않게 맞아주었다. 방울토마토 수확하는 것만 진행했다. 송사장이 방울 토마토 따는 법을 알려주고 난 후, 리포터를 포함한 동료들이 비닐하우스 안으로 각자 바구니를 들고 들어갔다. 이날 방송국 촬영은 오후 5시가 지나서야 마무리되었다.


  프로그램 PD는 10명의 동료들을 한 명씩 개별 촬영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몇몇 동료들이 자리를 빠져나가는 바람에, 교장선생님 부부, 신반장 부부, 최선생님 부부만 촬영할 수 밖에 없었다. 나와 전장군님 부부, 선미씨는 개별 촬영을 피해서 빠져나가면서, 불평을 쏟아냈다.

  “시청자들은 있는 그대로의 하루 생활이라고 인지하면서 방송을 시청할 텐데, 이렇게 연기를 해도 되는 건가요?”

  “농촌이 바쁜 시기라는 것을 알 텐데, 프로그램 촬영 때문에 무리하게 하루를 소비하게 하는 것이 맞는 건가요?”

  이날 촬영의 여파는 다음 날까지도 이어졌다. 촬영 때문에 하지 못한 꽈리고추 따는 작업, 장마로 인해 무너져 내린 노루망 보수 작업 등등, 하루 종일 일을 해야만 했다. 나를 포함한 동료들은 그날 촬영한 강원도 지상파의 해당 프로그램에 대해 불신감이 강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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