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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Dec 03. 2022

<농촌 체험하기> 브로맨스(bromance)

-‘농촌에서 살아보기’ 6개월 과정에서 겪은 마흔 네번째 이야기

  대표님이 운전하는 트랙터의 쟁기부분에 전장군님과 최선생님이 올라탔다. 대표님이 두 사람을 태운 쟁기부분을, 풀솜대 지붕의 빗물받이 높이까지 올려 주었다. 전장군님이 모종삽을 이용해서 빗물받이 안에 쌓인 나뭇잎과 쓰레기들을 퍼냈다. 몸을 앞으로 기울여서 작업을 하는 전장군님을 지켜보던 최선생님이, 갑자기 뒤에서 전장군님을 껴안았다. 땅에 떨어질 위험이 있다고 판단해서, 보호하기 위한 자세였다. 동료들 사이에서 유명해진, 두 사람간의 백허그 장면이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산채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인 풀솜대 지붕 위에 큰 소나무가 쓰러졌다. 태풍 힌남노 때문이었다. 나와 신반장은 대표님이 운전하는 트랙터의 쟁기부분에 전동 톱을 가지고 올라가서, 소나무 가지들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내가 전동 톱을 익숙하게 다룰 수 있었기 때문에, 소나무 자르는 역할을 맡았다. 신반장은 옆에서 내가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소나무의 맨 윗부분부터 가지를 하나씨 잘라나갔는데, 잘라낼 때마다 쓰러진 소나무가 움직이는 바람에 조심스럽게 작업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자칫 소나무가 땅으로 쓰러지는 날에는, 전동 톱 작업을 하던 나도 같이 땅에 떨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1시간 정도 작업을 진행하고서야, 소나무 제거작업이 완료되었다. 

  소나무를 제거한 뒤, 나뭇잎과 쓰레기들이 가득 쌓여있던 빗물 받이를 청소해주었다. 이것들을 제거해주지 않으면, 비가 건물 안쪽으로 새거나 이물질들의 무게 때문에 빗물 받이가 떨어져 나갈 수도 있었다. 3시간여에 걸쳐서 소나무 제거작업과 빗물 받이 청소까지 마무리 되자, 대표님이 너무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사실 풀솜대는 산채마을 건물들 중의 하나여서, 대표님이 관리하고 있었다. 우리 동료들이 대표님을 도와준 것이다. 


  며칠 뒤 전장군님의 깜짝 생일 파티가 열렸다. 선미씨와 팀장님이 카페에 생일 잔칫상을 준비하고, 불을 끈 뒤 전장군님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카페에 들어선 전장군님을 향해 동료들은 폭죽을 터트렸다. 그런 다음 케익에 꽂혀있던 초에 불을 켜고,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6개월 과정 중 처음으로 생일잔치를 진행했다. 그 동안 생일을 맞은 사람이 없었다. 마침 그날은 코로나에 감염되어서 교육에 참가하지 못했던 최선생님 부부도, 일주일 만에 같이 자리할 수 있었다. 지난 며칠 동안 이런 저런 이유로 교육에 참가하지 못했던 다른 동료들도 오랜만에 모였다. 그래서 그런지 동료들은 그 동안 못다한 이야기들로 꽃을 피웠다.

  며칠 전 힌남노 때문에 근처 마을에서 산사태로 집이 메몰 되어서, 한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었다. 자연재해가 거의 없던 횡성군에서는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덕분에 동료들이 여기 저기서 안부전화를 받은 일이 화제에 올랐다. 그리고 비를 흠뻑 맞으면서 옥수수 수확한 일 등 최근에 진행했던 작업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면서,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동료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그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행복했던 자리였다. 


  생일잔치를 마치고 원주 집에 돌아왔을 때, 같이 글 쓰는 교육을 받고 있던 이작가님이 사진을 한 장 올렸다. 내가 며칠 전에 보내준 옥수수를 맛있게 쪄서, 굴비와 같이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내가 보내준 옥수수를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내 마음도 덩달아 훈훈해졌다.

  불과 얼마 전에 옥수수 배분문제로 동료들간의 갈등이 노출되었었다. 서로에 대한 오해 때문이든 각자의 이기주의적인 생각 때문이든, 갈등이 생기면 서로를 품어주는 생각의 공간이 좁아진다. 이날 풀솜대 지붕의 소나무를 제거해주고 전장군님의 생일잔치를 열어주면서, 동료들간에 공유된 따뜻한 감정의 공간이 다시 넓어진 느낌이다. 옥수수를 맛있게 먹어준 이작가님의 마음도 같은 것이리라. 

  남을 도와주거나 베풀어주려면, 나의 마음 안에 상대방을 생각하는 공간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도와주는 작업을 통해서 상대방을 생각하는 나의 마음이 같이 전해지게 된다. 감사해하는 상대방의 마음 안에도 ‘나’라는 존재가 각인되게 된다. 서로의 마음 안에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자리잡는다는 것이, 훈훈한 감정을 만들어내는 원천이 되는 것 같다.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 순간, 신반장이 카톡방에 동영상 하나를 올렸다. 최선생님과 전장군님이 풀솜대의 빗물 받이를 청소하는 모습으로 브로맨스 동영상을 만들었다. 두 사람이 백허그를 하고 있는 장면에다가, 사랑을 주제로 하는 배경 음악까지 넣은 멋진 동영상이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카톡방에서 다시 한번 즐거운 회식자리가 만들어졌다. 이 장면을 처음 본 여자동료들은 모두들 비명을 질러댔다.

  “아니, 지금 뭐하는 거예요? 언제 이런 일이 있었어요? ㅎㅎㅎ”

  “언제부터 최선생님과 전장군님이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어요? ㅋㅋㅋ”

  잠이 들면서까지 큰 소리로 웃었던 것은 실로 오랜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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