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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Dec 19. 2022

<농촌 체험하기>넝마주이

- ‘농촌에서 살아보기’ 6개월 과정에서 겪은 마흔 여덟번째 이야기

   거의 한 시간채 나 혼자서 검은 멀칭 비닐을 트럭으로 옮겨 실었다. 몇 주전에 감자 수확을 하면서 벗겨낸 비닐들이었는데, 한쪽에 쌓아놓고 방치해 놓았었다. 그 동안 비가 여러 차례 와서, 비닐에는 흙도 많이 묻고 온갖 벌레들이 기어 다니고 있었다. 냄새도 심하게 났다. 자연스럽게 비닐을 옮기던 내가 입고 있던 옷들도 더러워졌다.

  멀칭 비닐은 긴 고랑을 덮었던 것이라서, 상당히 길었다. 옮기는 동안 돌돌 말아놓았던 비닐들이 풀려서, 땅바닥에 길게 끌면서 옮겨야만 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동료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더러운 비닐을 끌고 가는 내 모습이, 마치 쓰레기를 모으는 넝마주이 같다는 것이다. 그런 내 모습이 재미있었던지, 동료들이 잠시 일손을 멈추고 사진을 찍어댔다. 


  우리는 7백평의 밭에 감자를 심었다. 그만큼 수확할 양이 많았다. 8월말에 1차 수확을 한 데 이어서, 9월 중순에 2차로 진행하였다. 1차 수확할 때, 너무 습해서 감자를 캐내기 어려운 곳을 남겨 놓았었다. 어느 정도 밭이 말라야 감자 캐기가 용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동안 비가 내리는 바람에, 밭이 많이 마르지 않았다. 습한 땅에 심어진 감자는 썩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작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남자동료들이 먼저 수확하지 않은 감자 밭의 멀칭 비닐들을 벗겨내는 작업을 했다. 습해서 거의 뻘밭에 가까운 곳의 멀칭 비닐을 먼저 벗겨냈다. 그 곳에 여자동료들이 들어가서, 감자를 캐내기 시작했다. 남자동료들이 다른 감자 밭의 멀칭 비닐을 벗기고 나서, 여자동료들이 작업하지 않는 곳에서 수확을 진행하였다. 동시에 여러 곳에서 진행해야, 수확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었다. 그때 여자동료들중 장미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쪽으로 와서 좀 도와줘요! 뻘밭이라서 너무 힘들어요!”

  뻘밭에서 감자를 캐본 적이 없는 나를 포함한 남자동료들은, 여자동료들이 왜 자꾸 도와달라고 하는 지 이해하지 못했다. 천천히 뻘밭쪽으로 가보니까, 여자동료들의 장화는 물론이고 옷도 진흙투성이였다. 습한 곳이라서 감자도 제대로 자라지도 못했다. 하얗게 썩어버린 감자들이 많아서, 냄새마저도 고약하게 났다. 엉거주춤하게 쭈그린 자세로 앉아서 일하고 있던 장미씨가 코를 막고 일어났다. 

  “발이 빠져서 일하기 힘들기도 하지만, 냄새가 나서 못하겠어요~”

  내가 뻘밭에 들어가서 일을 해보니까, 과연 힘들고 냄새도 많이 났다. 힘든 반면, 좋은 감자를 발견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그래도 잘 자라준 감자를 몇 개라도 찾아내기 위해서, 동료들은 뻘밭을 헤매 다녔다. 


  뻘밭에서 고생하면서 감자를 캐낸 동료들은, 남은 감자 밭으로 옮겨갔다. 그 사이에 나는 뻘밭 바로 옆에 방치되어 있던 멀칭 비닐들을 트럭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날이 마지막으로 감자수확을 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감자 밭을 깨끗하게 해놓아야 했다. 

  처음에는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아서, 혼자서 30분 정도 작업하면 끝날 것 같았다. 그런데 쌓아놓았던 비닐이 너무 많았다. 거의 사백평 정도되는 밭에서 치운 비닐이기 때문이다. 흙이나 나뭇잎 등 이런 저런 더러운 것들이 많이 묻어 있는 비닐들이었지만, 누군가는 버려야 한다는 생각에서 작업을 계속 했다. 

  거의 넝마주이가 다된 내 모습을 보면서 동료들이 잠시 웃을 수 있는 시간이 만들어졌다. 고된 수확작업에 잠시나마 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웃고 있는 사이에 최선생님 형수님이 쑤어온 호박죽과 김치전을 테이블에 늘어 놓았다. 매번 새참을 준비해오는 최선생님 형수님과 전장군님 형수님, 그리고 여자동료들에게 고마웠다. 나는 새참을 준비하지는 못하지만, 넝마주이로 웃을 수 있게 해준 것에 만족했다. 맛있는 호박죽과 김치전을 먹으면서, 동료들은 작업의 피로를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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