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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May 15. 2023

<농촌 체험하기 퇴고글>농부근육 만들기-지옥의 멀칭작업

- '농촌에서 살아보기'과정에 대한 열두번째 글

“아이고 힘들어! 나도 모르겠다!”

힘들다고 툴툴거리던 신반장이 밭에 벌렁 누워 버렸다. 마침 옆에서 밭 이랑의 흙 고르기 작업을 하던 교장선생님이 웃으면서 쳐다봤다. 동료들 중에서 제일 나이 어린 신반장이 힘들다고 누워 버리니까, 제일 나이 많은 교장선생님이 재미있다는 듯 쳐다보는 모습이 대조적이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검은 비닐의 멀칭 작업을 했다. 비닐 멀칭을 하게 된 것이 농사일의 혁신을 가져왔다고 한다. 멀칭 비닐은 작물을 따뜻하게 해줄 뿐 아니라 토양의 수분을 유지시켜준다. 온갖 병충해와 잡초를 방제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비닐 멀칭을 수작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지옥과 같은 과정이었다. 멀칭 작업을 할 수 있는 관리기가 고장난 탓도 있지만, 대표님은 교육생인 우리들이 직접 수작업으로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비닐 멀칭 작업은 보통 3~4명이 한조를 이뤄서 진행했다. 여자 동료 2명이 무거운 비닐 두루마리를 양쪽에서 돌리면서, 비닐을 펼쳐준다. 펼쳐진 비닐의 양쪽 면에, 남자 동료 1~2명이 삽으로 고랑의 흙을 파서 덮어준다. 계속 허리를 굽힌 상태로 삽질을 해야 해서, 허리가 금방 아파왔다. 고랑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작업을 시작하게 되면, 고랑이 끝나는 지점에 다다라서야 겨우 허리를 한 번 펼 수 있다. 비닐을 펴가는 속도에 맞춰서, 고랑의 흙을 덮어주면서 따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동료들은 바로 그 전날에도 6~7백평 정도 되는 단호박과 고구마 밭의 멀칭 작업을 했었다. 어제 작업의 피로가 채 가시기도 전에, 1천평이나 되는 옥수수 밭에서 같은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멀칭 작업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서, 허리와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자연히 작업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동료들은 뙤약볕아래서 2개조로 나누어 열심히 멀칭 작업을 진행했다. 나는 신반장 부부, 장미씨, 그리고 전장군님 형수와 한 조가 되었다. 우연이지만, 주로 나이가 젊은 사람들로 구성된 조가 되었다. 반면 다른 조에는 교장선생님 부부, 최선생님 부부, 그리고 전장군님, 이렇게 나이가 많은 분들로 구성되었다. 우리가 멀칭 작업에 서툰 탓도 있지만, 1~2명이 쉬어 갈 수 있는 여유를 갖기 위해서 5명으로 한 조를 꾸린 것이다.

당연히 젊은 우리 조가 더 빠르게 비닐을 덮어갈 줄 알았다. 그런데 30여분이 지나고 나서 보니까, 다른 조의 작업속도가 더 빨랐다. 다른 조의 나이든 분들은 우리보다 일하는 요령이 좋았다. 우리는 비닐 양쪽 면에 흙을 많이 퍼서 덮어준 반면, 다른 조는 적당한 수준의 흙만 뿌려주었다. 삽으로 흙을 비닐 위에 덮어주는 속도가, 멀칭 비닐을 펼치는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러자 나이든 분들은 비닐이 바람에 날라가지 않을 정도의 양만 흙을 덮어준 것이다.

하지만 일하는 속도에 영향을 준 것은 이것보다 더 중요한 요인이 있었다. 바로 작업에 임하는 자세였다. 젊은 우리 팀원들은 어제 작업으로 인한 피로감을 정신적으로 이겨내지 못했다. 이 사람 저 사람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내뱉으면서 작업을 느리게 진행했다. 자연스럽게 작업 능률이 떨어졌다. 결국 우리 조의 신반장이 땅바닥에 벌렁 누워 버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이 많은 동료들은 별다른 불만 없이 묵묵하게 일을 해 나갔다. 그들도 피곤하고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을 텐데...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이었다.

우리의 멀칭 작업은 더디기만 했다. 1천여평 옥수수 밭의 절반정도 진행했을까? 그 뒤부터는 작업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졌다. 강렬하기만 했던 5월의 햇살도 점차 누그러지면서, 석양으로 변해갔다. 먼저 산채마을로 돌아갔던 대표님이 여러 차례 전화를 했다.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우리들이 걱정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육묘장에 있는 옥수수 모종이 빨리 옮겨 심어야 할 정도로 자라버린 상황이기 때문에, 그날 중으로 멀칭 작업을 완료해야 했다. 동료들은 힘들어서 말이 없어진 지 오래지만, 묵묵하게 작업을 마무리해 나갔다. 작업을 먼저 마무리했던 다른 조의 나이든 동료들이 우리 조의 작업을 도와주었다.

작업을 마무리하고 산채마을로 돌아간 우리들은, 대표님과 함께 가볍게 막걸리 한잔을 들이켰다. 대표님은 ‘왜 그렇게 오래 걸렸냐?’면서 우리를 타박했다. 3~4명이 작업할 분량을 10명이 하면서, 그렇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단다. 그러자 옆에 있던 여자동료들의 입이 튀어나왔다.

“대표님이 기계가 아닌 수작업으로 멀칭 작업을 해봐요! 그것도 이틀 연속으로. 얼마나 힘든지 알 거예요.”

한 여자동료가 화난 얼굴로 대표님에게 쏘아붙였다. 그러자 대표님이 웃으면서 말을 되받아 친다.

“아직 농부가 안돼서 그래요. 농부 근육이 붙으면, 쉽게 작업할 수 있을 거예요.”

동료들은 막걸리 한 잔과 함께 고된 노동으로 지친 몸을 달랬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대표님으로부터 그날 작업한 내용에 대한 feedback을 받았다. 이틀 동안의 멀칭 작업으로 인한 허리와 다리의 통증은 며칠간 지속되었지만, 농부 근육이 더 늘어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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