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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un 24. 2023

<초보 농사꾼의 하루>기초가 튼튼해야 농작물도 건강하다

- 귀농 첫해에 겪은 열네번째 이야기

  한시간 정도 미생물 배양액을 뿌리던 신반장이 나에게로 다가왔다. 나는 노지 밭 한켠에서 트럭의 PTO(Power Take Off; 동력인출장치) 장치를 조작하고 있었다. 트럭에 장치된 동력인출장치(PTO)를 작동시켜야, 대형 물통에 담긴 미생물 배양액을 밭에 살포할 수 있다. 신반장은 PTO와 연결된 긴 호스 끝 부분에 있던 분사기 노즐을 들어 보이면서 이야기했다.

  “노즐의 구멍이 막힌 모양이네요? 배양액이 잘 나오질 않아요.”

  내가 분사기 노즐을 분리해서 물로 씻고 있는 사이에, 신반장이 한가지 제안을 했다.

  “분사기 노즐이 없는 상태에서 호스로만 미생물 배양액을 뿌려보면 어떨까요? 분사기의 노즐 구멍이 작다 보니까, 배양액 뿌리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거든요.”

  작물을 정식하기 전이어서 굳이 분사기 노즐이 필요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해보자고 했다. 신반장 생각대로 분사기 노즐을 제거하고 배양액을 살포하니까,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지 밭과 비닐하우스를 포함해서 1천평에 가까운 밭에 배양액을 살포하는 데 3~4시간이 소요되었다. 

  

   2023년 4월 중순부터 감자를 시작으로 여러 작물들을 정식할 계획이었다. 친환경 농업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작물들을 정식하기 전에 밭을 충분히 작물이 자라기에 적합한 상태로 만들어 놓는 것이다. 유기물 퇴비나 석회 등을 이용해서 밭의 pH수준이 강산성이나 강알칼리성이 아닌 적정 수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부분의 작물들이 중성에 가까운 pH수준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pH 이외에도 전기 전도도(Electric Conductivity; EC), 유기물 함량 등을 체크해서, 적정 수준으로 만들어 놓는 것이 좋다.

  토양의 유기질 함량이 높더라도 이것을 무기질로 변환시켜줘야 작물이 소화시킬 수 있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미생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물에 유익한 미생물들을 밭에 많이 뿌려줘야 한다. 농업기술센터에서는 각종 유용한 미생물을 분양해주고 있어서, 이것들을 이용해도 좋다. 하지만 농가당 분양되는 미생물양이 제한되어 있고, 주민등록 이전이나 농업경영체 등록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분양 받을 수 없다.

  농업기술센터의 미생물 대신 자기 밭의 주변 산에 쌓여 있는 부엽토를 이용해서 미생물을 배양할 수 있다. 경작하는 밭의 주변 산에서 자란 나무들은 밭의 토양과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부엽토는 유익한 미생물들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생물을 배양하는 데, 돼지꼬리 가열기를 이용하면 1~2일 정도 소요된다. 배양된 미생물과 바닷물, 천매암, 산야초 액비 등을 물과 섞어서 밭에 뿌려주면, 미생물들이 활발히 활동하는 좋은 토양이 만들어진다. 작물을 정식하기 전에 3~4회 정도 미생물 배양액을 뿌려주라고, 친환경 농업 전문가들이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최소 5회 이상 뿌려줄 계획이었다. 그래서 작물을 정식하기 한달전인 3월중순부터 미생물 배양액을 살포하기 시작했다.

  횡성군 둔내면 삽교리의 3월 초중순 날씨는 여전히 싸늘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삽교리 근처에 자리한 태기산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은 체감온도를 크게 낮추기에 충분하였다. 바람이 얼마나 세차게 불면, 태기산 정상에는 여러 기의 풍력발전기가 가동되고 있겠는가! 미생물 배양액을 밭에 뿌리고 있으면, 태기산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귀가 시려왔다. 더군다나 호스 끝에서 나오는 배양액이 이리 날리고 저리 날리기를 반복했다. 그런 상태로 반나절을 뿌려줘야 겨우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고생하면서 미생물 배양액을 뿌려준 결과를 4, 5월에 관찰할 수 있었다. 작물을 정식하고 난 후 고랑사이에 자란 잡초를 뽑아줄 때나 작물을 건사할 때, 흔하게 지렁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작년에 전통 농법으로 옥수수를 재배할 때만해도 지렁이를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밭에서 지렁이를 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밭이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지렁이 분변은 작물에게도 유용한 무기질 영양분을 공급해준다. 

  땅을 튼실하게 만들어 놓는 작업부터, 친환경 농사를 짓기 위한 나의 첫걸음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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