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진 Jun 26. 2023

<농촌 체험하기 퇴고글>서로 다른 희생-스프링쿨러 설치

- '농촌에서 살아보기'과정에 대한 열세번째 글

  ‘농촌에서 살아보기’ 교육생 10명이 공동으로 가꾸고 있는 밭의 규모는 총 삼천평에 달할 정도로 넓었다. 그중 산채마을 바로 뒤편에 자리한 개인 텃밭은 이백 오십평 정도의 규모였다. 이것을 다섯팀이 오십평씩 나누어서, 각자 원하는 작물을 심었다. 

  2022년 5월초 어느 날 이 개인 텃밭 공간에 스프링 쿨러를 설치하였다. 매번 물을 떠다 살포하기가 불편하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미 지하수와 연결된 주관이 개인 텃밭 가까이까지 설치되어 있어서, 스프링 쿨러를 설치하기 용이하였다. 

  주관은 개인 텃밭 바로 옆의 비닐하우스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비닐하우스 작물의 뿌리에 물을 줄 수 있는 점적(點滴)호스가 이 주관으로부터 물을 공급받고 있었다. 동료들은 이 주관으로부터 노지 텃밭으로 향하는 보조호스를 연결하고, 보조호스들의 연결지점에 스프링 쿨러를 설치하였다. 스프링 쿨러 하나가 지름 12미터 정도의 원형 넓이로 물을 뿌려줄 수 있기 때문에, 그것에 맞게 간격을 띄워서 설치하였다.

  그런데 보조호스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생겼다. 채소가 심어져 있지 않은 텃밭의 고랑 사이로만 호스를 연결하면 좋은데, 개인 텃밭의 양끝에 위치해 있던 최선생님과 장미씨 텃밭에서는 호스가 이랑 위를 가로질러 가야만 했다. 보조호스가 꺾어져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텃밭 주인인 장미씨와 최선생님에게 이로 인해서 텃밭에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자신의 텃밭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좋아할 리 없었기 때문에, 사전 양해를 구해야 했다. 

 

  스프링 쿨러 설치에 장미씨와 최선생님의 입장이 조금 달랐다.

  장미씨는 스프링 쿨러를 연결하는 물 호스를 자신의 텃밭에 설치하는 데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물 호스는 텃밭의 작물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기도 하지만 미관상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동료들을 위해서 희생을 감수하기로 한 것이다.

  반면 같은 입장이었던 최선생님은 한참을 고민하였다. 최선생님은 스프링 쿨러의 물이 자신의 밭 일부에 닿지 않아도 좋으니까, 이랑이 아닌 고랑에만 설치해달란다. 물이 닿지 않는 부분에는 자신이 직접 물을 운반해서 뿌려 주겠다는 것이다. 텃밭에 손상이 가는 것 보다는, 힘들지만 자신이 직접 몸으로 때우겠다는 생각이다. 자신의 텃밭이 미관상 보기 싫어 지는 것뿐 아니라, 채소들이 다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장미씨는 공동체를 위하여 자신의 텃밭의 일부를 기꺼이 내주기로 했다. 최선생님도 스프링 쿨러의 물이 닿지 않는 밭에, 매번 직접 물을 길어서 작물에게 뿌려주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하기로 했다. 스프링 쿨러의 물이 자신의 모든 작물에게 물을 뿌려줄 수 있도록 설치해 달라는 무리한 주장도 하지 않았다. 최선생님도 장미씨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희생한 것이다. 


  두 사람의 텃밭에 스프링 쿨러를 설치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우리는 두시간이 채 지나기전에 설치 작업을 마무리하였다. 그 사이 여자 동료들은 개인 텃밭 바로 옆의 비닐하우스에 토마토 정식을 마무리하고, 사랑채 옆에 놓인 탁자로 모여들었다. 그곳에는 새참으로 순대와 막걸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전날 원주의 상가집에 다녀온 대표님이 사왔다고 한다. 

  나는 원주의 집으로 갈 때 운전을 해야 해서, 막걸리 한잔을 앞에 놓고 동료들이 떠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평상시 일을 할 때는 꼼꼼하고 농담도 별로 하지 않는 최선생님이지만, 술 한잔이 들어가자 말투가 많이 부드러워졌다. 반면에 장미씨는 활달한 성격 그대로 좌중의 분위기를 지배했다. 각자의 성격 차이가 농사짓는 스타일에도 그대로 반영되는 것 같다. 최선생님은 매사에 신중하게 의사결정을 하는 반면, 장미씨는 어떤 사안이든 빠르게 결정하는 스타일이다.


  며칠 뒤 텃밭의 스프링쿨러에서 시원한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나는 텃밭의 채소들을 하나씩 자세히 관찰하였다. 간밤에 얼마나 자랐는지, 해충이나 병에 걸린 흔적은 없는 지. 논밭의 채소나 작물들은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먹고 자란단다. 그만큼 정성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상추를 비롯한 각종 채소들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었다. 물밖에 주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아무 탈없이 잘 자라주는 작물들이 고맙고 대견했다. 


작가의 이전글 <초보 농사꾼의 하루>기초가 튼튼해야 농작물도 건강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