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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ul 18. 2023

<한옥 대목반>기둥 가공 실패담

- 대목과정의 첫번째 퇴고버전: 열아홉번째 이야기

  “밑그림대로 가공을 해야지, 이렇게 작업해 놓으면 어떡합니까? 가공한 면도 깔끔하게 다듬어야지요!”

  내가 가공해 놓은 기둥을 쳐다보던 선생님은, 답답하다는 듯이 한 소리를 해댔다. 나는 나름 열심히 했지만, 밑그림하고 다른 결과물이 되고 말았다.

  “옹이가 여러 개 나와서 제대로 가공하기 어려웠어요.”

  나는 옹이 핑계를 대면서 변명을 했다. 사실 얼마전인 2021년 12월초 대들보를 가공할 때, 옹이로 인해서 쇠 끌의 목부분이 끊어져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그 뒤부터는 옹이가 보이지 않는 나무를 고르기 시작했다. 이날도 신중하게 여러 개의 나무 중에서 옹이가 보이지 않는 것을 골랐다. 

  그런데 나무를 고를 때 보이지 않던 옹이가 가공을 하면서 여러 개 나타났다. 장혀와 도리가 들어갈 자리를 만들기 위해 정교하게 잘라내야 했는데, 옹이때문에 쉽지 않았다. 나무가 두꺼우니까 옹이의 크기도 커서, 톱이나 끌로 잘라 내기가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가공작업중에 치명적인 실수까지 범하고 말았다. 잘라내지 말아야할 곳으로 톱질을 한 것이다. 두꺼운 나무를 잘라낼 때는 앞뒤면을 번갈아 살펴보면서 가공을 해야 한다. 그래야 밑그림이 그려진 대로 작업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반대쪽 면을 고려하지 않고 톱질을 하면서, 톱이 지나가지 말아야할 곳을 지나가 버렸다. 보나 장혀, 도리가 맞물려서 고정될 수 있도록 해주는 버팀목 부분까지 톱질을 해버린 것이다. 버팀목 부분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나타난 옹이들은 한 치도 안되는 나무 속에 박혀 있었다. 나는 말 그대로 한 치 앞도 보지 못하고, 옹이가 숨겨진 나무를 고른 것이다. 뜻밖에 나타난 옹이로 인해서, 한옥집에서 가장 중요한 기둥 만드는 과정을 망쳐버렸다. 아니, 거기까지가 내 역량의 한계였다.

  나의 첫 직장은 S그룹 경제연구소였다. 나는 나름 첫 직장에 만족하면서 지냈다. 큰 변화가 생긴 것은 미국의 한 대학교에서 교수를 하던 분이 팀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였다. 

  새로운 팀장은 모든 일에서 지시 일변도였다. 한마디로 ‘독불장군’이었다. 걸핏하면 작업 결과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처음부터 다시 해오라고 했다. 10여명의 팀원들이 밤 늦게까지 야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연구의 방향성이나 주요 storyline에 대한 팀원들의 의견도 무시되기 일쑤였다.

  팀원들 사이에서 안하무인 격인 팀장에 대한 반발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팀원들은 S그룹 경제연구소의 노무관계를 포함한 내부살림을 총괄하는 기획실장에게 미팅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더 이상 신임 팀장과 일을 같이 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문제의 시작은 기획실장과의 미팅에 참여할 대표중의 한명으로 내가 뽑혔다는 것이다. 아니 내가 자진해서 손을 들었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나이가 많은 팀원들은 앞으로 나서기를 주저하였다. 자칫 회사에서 미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나는 결혼한 지 얼마되지 않아서 아이도 없었고, 아내도 직장에 다니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었다. 

  S그룹은 노조가 없는 보수적인 사풍을 가지고 있었다. 부하직원이 상사의 리더십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기획실장과 미팅을 하면서, 이 문제가 연구소 전체적으로 큰 이슈가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임 팀장의 행태는 바뀌지 않았다. 결국 이 일로 인해서 나는 다른 직장으로 이직하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신임팀장의 이슈로 인해서, 뜻하지 않게 직장까지 옮기게 된 것이다. 나무의 한 치 속도 모르듯이, 우리의 인생도 한 치 앞을 내다보고 살아가기가 어려운 것 같다. 옹이 같은 장애물이 언제 나타날 지 모른다.


  2021년 12월 중순을 지나면서 외부 실습장에 본격적으로 한옥집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이미 만들어진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울 차례였다. 내가 만든 기둥도 세워졌다. 기둥위에 보를 끼워야 하는데, 잘 조립되지 않았다. 보의 사이즈와 맞지 않게 가공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한참동안 끌로 기둥과 보의 가공 작업을 추가로 해야만 했다. 추가 작업을 진행한 선생님과 동료들에게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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