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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ul 24. 2023

<초보 농사꾼의 하루>구굴기

- 귀농 첫해에 겪은 열일곱번째 이야기

  나와 신반장이 교대로 구굴기를 가지고 노지 밭의 이랑을 만들고 있었다. 아침에 작업을 시작할 때에는 신반장의 아내인 송이씨가 같이 와서, 유튜브에 올릴 영상을 찍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가벼운 마음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오늘은 구굴기로 밭에 이랑 만드는 작업을 할 거예요. 이것이 구굴기인데, 흙을 파내 옆으로 흩뿌려서 이랑을 만드는 역할을 하는 거지요.”

  신반장이 유튜브 영상 초입에 오늘의 작업 일정에 대해 소개하는 멘트를 했다. 그리고 멋진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신반장과 내가 교대로 구굴기 작업을 진행했다. 처음 시작했을 때의 가벼운 마음이 사라지고, 힘든 노동으로 느끼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4월 중순인데도 땀이 비오듯이 흘러내렸다. 흘러내리던 땀이 내 안경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작업중에는 흙이 묻은 장갑을 끼고 있어서, 땀을 닦기가 어려웠다. 더 이상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한참을 작업했다. 결국은 잠시 쉬면서 깨끗한 면 수건으로 안경을 닦고 나서야, 흐릿했던 시야가 밝게 트였다.


  “대표님, 고랑과 이랑을 넓게 만들고 싶은데, 어떤 기계를 사용해야 하나요?”

  “농업기술센터에서 구굴기를 빌려서 만들어야 돼요.”

  나는 이랑폭을 90~100센티, 고랑폭을 50~60센티로 넓게 만들고 싶었다. 고랑폭이 넓어야 작업하기 편했다. 되도록 이랑 사이를 넓게 해서, 병충해가 생기거나 전염되는 것을 줄이고도 싶었다. 그러면서도 면적당 작물 수확량을 되도록 많게 하기 위해, 이랑폭을 넓게 해서 두줄 짓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트랙터로 이랑을 만들면 손쉬웠다. 5~6개의 이랑을 한꺼번에 만들 수 있다. 그런데 트랙터로는 내가 원하는 이랑과 고랑 넓이를 만들 수가 없었다. 트랙터의 이랑 만드는 기계로 조절할 수 있는 이랑과 고랑폭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힘들지만 내가 원하는 크기의 이랑과 고랑을 만들 수 있는 구굴기를 농업기술센터에서 빌리기로 했다.

  농사 첫해이니만큼 해보고 싶은 것을 시도해보고 싶었다. 고랑폭이 너무 좁으면, 작업하는 사람들이 너무 불편하다는 것을 작년에 경험했었다. 앉아서 작업하기에 너무 좁다 보니까, 무릎과 허리에 무리가 많이 갔다. 더군다나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하려면, 병충해가 덜 생기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밀식하게 되면 통풍이 잘 안되기 때문에, 병충해 발생이나 전염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랑과 이랑 사이를 많이 떨어뜨리는 것이 유리하다. 

  임대한 밭이 원래 논이었기 때문에, 땅에 습기가 많았다. 이랑 높이를 가능한한 높게 만들어줘야,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구굴기로 같은 이랑을 두번 왕복하면서, 이랑 높이를 30센티정도까지 높게 만들었다. 

  우리가 초보인데다가 밭이 많이 질어서, 구글기를 똑바로 운전하기 어려웠다. 나중에 우리가 만들어 놓은 이랑을 보니까, 반듯하지 않고 삐뚤 빼뚤했다. 1천평의 밭에 이랑을 만드는 데 거의 하루가 소요되었다. 나와 신반장은 너무 지쳐서, 이랑을 반듯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고 싶은 심정이 강했다. 다음 날 관리기로 비닐 멀칭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에, 몸을 쉬어 줘야만 했다.


  전날 구굴기 작업을 해서일까? 다음 날 관리기로 비닐 멀칭작업을 할 때, 한결 수월하게 관리기를 다룰 수 있었다. 작업 중간에 신반장이 송이씨에게 관리기 작동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한결 여유있게 작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일찍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전날 만들어 놓은 이랑이 반듯하지 않은 탓에, 비닐 멀칭해놓은 이랑은 똑바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처음 사용해보는 구굴기를 이용해서,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것이 뿌듯했다. 이제 작물 정식을 위한 모든 준비가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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