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진 Jul 30. 2023

<초보 농사꾼의 하루>현수막 부직포

- 귀농 첫해에 겪은 열여덟번째 이야기

  “이 많은 현수막을 가지고 가서, 무엇을 하려는 건가요?”

  현수막 수거업체 사장님이 의아하다는 듯이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농사에 쓸 거예요. 밭 고랑사이에 깔아서 잡초가 자라는 것을 방지하려고요.”

  나는 웃으면서 사장님에게 설명했다. 필요한 만큼 가져가라고 했지만, 내 자동차에 실을 수 있는 현수막의 양은 한계가 있었다. 짐칸뿐 아니라 뒷좌석까지 가득 현수막으로 채워 넣었다. 


  금년 농사를 위해서 2022년 겨울 인천에 있는 한 현수막 수거업체를 방문했었다. 이 업체를 알아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현수막 수거업체의 정보가 많지 않았을 뿐 아니라, 현수막을 충분히 보유한 업체여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서울에 있는 수거업체를 접촉했는데, 보유 현수막이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며칠 뒤에 인천의 한 수거업체를 소개시켜 줬다. 

  힘들게 얻어온 현수막을 산채마을의 비닐하우스 한 켠에 보관해 놓았다. 내가 현수막을 옮기는 모습을 본 김대표님이나 마을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잡초 발생을 억제하기 위해서 부직포를 까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현수막을 이용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부직포조차도 비싸고 추가로 설치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용하는 농부가 거의 없었다.

  일반적으로 농부들은 고랑사이에 자라는 잡초는 강한 제초제를 뿌려서 죽였다. 그런데 농부들이 사용하는 제초제는 어느 농약보다도 강한 성분이 들어 있다. 생명력이 강한 잡초를 말라 죽게 하거나 아예 뿌리까지 죽일 정도이니까, 얼마나 강한 지 짐작할 수 있다. 고랑사이에 제초제를 살포하면, 옆에 있는 작물에게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나는 그것이 불만이었다. 사람이나 땅에 좋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023년 작물 정식을 하기 전에 현수막 부직포를 밭에 까는 작업을 할 때에는, 지나가던 마을 사람들이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형형색색의 부직포가 바닥에 깔려 있으니까, 쉽게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그 효용성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곤 했다. 이웃에 사는 농부가 재미있다는 듯이 한마디 내뱉었다.

  “그래도 잡초가 현수막을 들고 올라올 거예요. 하하하”  

  나는 농사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작물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작물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노력이, 오히려 농부의 무릎이나 허리를 망가뜨리는 경우가 많았다.  주객(主客)이 전도된 느낌을 받는 장면이다. 특히 나와 같이 나이가 있는 사람은 더 조심해야할 부분이다.

  그리고 작물의 산출량 증가보다는 사람에게 건강을 선물할 수 있는 친환경 작물을 재배하고 싶었다. 병충해 감염 가능성을 가능한한 줄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비록 유기농 농약이라도 그 사용량을 줄일 수 있는 길이다. 현수막 부직포도 그 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농사를 짓는 마을에서는 누구도 노지 밭의 이랑과 고랑을 넓게 만들어서 경작하는 사람이 없었다. 노지 밭뿐 아니라 비닐하우스도 마찬가지였다. 이랑 폭은 50~60센티, 고랑폭은 30~40센티가 고작이었다. 트랙터를 이용하면, 이 넓이로 이랑과 고랑을 손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랑폭은 90센티, 고랑폭은 50센티로 만들었다.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부담이 되도록 적게 가면서도 밀식으로 인한 병충해의 전염을 억제하기 위해서이다. 대신 한 이랑에 두줄 심기를 시도했다. 생산성을 어느 정도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

  울긋 불긋 현수막이 보이는 밭에 이랑과 고랑이 널찍하게 만들어진 모습을 보면서,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였다. 누구도 이렇게 하지 않고 있는데, 왜 이런 방식으로 밭을 만드는 지 이해해하기 어렵다는 듯이.

  

  첫해는 실패할 각오를 하고 해보고 싶은 test를 다해볼 심산이다. 첫해의 실패는 앞으로 내가 농사를 짓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첫해의 실패로 인한 심리적, 경제적 피해는 이후 실패의 경험을 바탕으로 재배되는 농산물로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해의 실패는 쉽게 용인될 수 있지만, 그 이후의 실패는 그 누구도 쉽게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초보 농사꾼의 하루>구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