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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ug 06. 2023

<초보 농사꾼의 하루>가는 인연, 오는 인연

- 귀농 첫해에 겪은 열아홉번째 이야기

  “따르릉 따르릉”

  밭에서 일하고 있으려니까, 핸드폰 벨소리가 한참을 울려댔다. 내가 직장에 다닐 때 모셨던 박사장님이었다. 가끔 메시지로 안부인사를 주고받기는 했지만, 통화를 하는 일은 드물었다. 무슨 일이 있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농사는 잘 되고 있니? 횡성 생활은 어때?”

  사회생활의 터전이었던 서울을 벗어나서, 강원도로 이사온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작은 규모이지만 농사를 짓고 사는 사람은 더욱 드물었다. 그런 내가 사는 모습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내일 그곳에 갈 일이 있는데, 얼굴 한번 보자.”

  박사장님은 등산을 좋아한다. 내가 사는 주변의 태기산이나 청태산에 가끔 오르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 다음날도 청태산 등반을 할 계획이란다. 

  

  중국으로부터 날아온 황사로 인해서 수도권의 공기가 좋지 않았던 2023년 4월 중순 어느 날이었다. 강원도도 황사의 영향을 받고 있기는 했지만, 그다지 심각하지는 않았다. 그날은 신반장과 함께 노지 밭에 미생물 배양액을 뿌리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감자를 시작으로 각종 작물의 정식이 며칠 남지 않아서, 미생물 배양액의 살포량을 늘렸다. 

  내가 임대한 노지밭은 산채마을 안쪽으로 한참을 들어와야 했다. 박사장님은 용케도 잘 찾아왔다. 오랜만에 얼굴을 뵈니까 무척 반가웠다. 박사장님을 팀장으로 모실 때, 술을 좋아하는 박사장님과 포장마차에 자주 들락거렸었다. 직선적인 성격이지만, 따뜻하고 뒤끝이 없는 스타일이었다. 내 밭을 구경시켜 드리고, 둔내 한식 부페집으로 모시고 갔다. 

  부페식당에서 제공하는 큰 쟁반에 가득 음식을 담아온 박사장님을 보고 내심 놀랐다. 많이 먹는 만큼 활동량도 많고 건강하다는 것을 의미하였기 때문에, 내 기분이 좋아졌다. 박사장님이 몇 달전에 수술을 하신 다음에는 더 등산과 식사하는 것에 신경을 쓴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서로의 건강에 대한 이야기, 같은 팀에서 근무했을 때 일어났던 이야기, 같이 근무했던 동료중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 이야기 등등…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박사장님과 나의 인생을 꾸민 과거의 추억들이다. 


  나는 횡성읍에 사는 전장군님의 밭일을 도와주기로 되어 있어서, 점심식사 후에 박사장님과 헤어졌다. 사실 밭일을 도와주는 것은 핑계였다. 전장군님 형수님이 여행을 가서, 며칠동안 전장군님 혼자 지내고 있었다. 이때를 기회로 작년 ‘농촌에서 살아보기’ 동료들 중에서 남자 동료들끼리 뭉치기로 하였다. 저녁식사를 같이 하기 전에, 전장군님 밭일을 도와주기로 했다.

  전장군님은 무려 700평정도 되는 밭을 임대하였다. 혼자 농사 짓기에는 넓은 땅이었다. 그날은 밭에 계분 뿌리는 작업을 하였다. 땅이 넓다 보니까, 계분 살포 작업도 여러 날에 걸쳐서 진행하고 있었다. 신반장과 내가 도와주어서, 그날 남은 밭에 계분 살포 작업을 마무리했다. 그 다음 날 트랙터를 가지고 있는 마을 분이 로터리작업을 해주기로 했단다. 

  전장군님 집 근처에 살고 있는 최선생님도 같이, 횡성읍의 돼지갈비 무한리필 집에서 만나서 저녁식사를 했다. 수입 돼지고기이기는 하지만 맛있었다. 남자 동기들끼리 소주 한잔씩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귀농 정착과정에서 동네 사람들과 적응하는 이야기, 정식할 농작물에 대한 이야기 등이 주요 주제였다.

  최선생님 부부가 가장 잘 정착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귀촌인 전원주택 단지내에 집이 있기 때문에, 주변에 이웃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웃들하고 잘 지내고 있었다. 반면 전장군님이 입주한 전원주택단지에는 택지만 개발되어 있고, 전장군님 집만 덩그러니 지어진 상태였다. 덕분에 이웃집이 없었다. 그래서 전장군님 부부는 주로 횡성읍의 여러 곳에서 개최하는 문화 프로그램을 들으면서 사람들을 사귄단다. 전장군님은 서예, 형수님은 영어회화와 민화를 배운단다. 신반장 부부 역시 주변 4~5호의 이웃집이 있는데, 평상시에 살고 있는 곳은 한 곳 밖에 없어서 조용히 살기에 좋은 환경이었다.

  

  새로운 만남을 만들어가는 동료들을 보면서, 묘한 생각이 들었다. 낮에 만난 박사장님과 저녁에 만난 ‘농촌에서 살아보기’ 동료들과는 대조되는 느낌이었다. 박사장님과는 과거의 추억이야기가 주류였지만, ‘농촌에서 살아보기’ 동료들과는 미래를 같이 할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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