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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ug 24. 2023

<초보 농사꾼의 하루>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자?

- 귀농 첫해에 겪은 스무번째 이야기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과 골프를 즐겼다. 7월 중순이었지만 구름낀 선선한 날씨였다. 대학동기인 세혁, 시영, 영필이와는 1년에 3~4번씩 골프를 치는 사이이다. 대학교 다니면서 가깝게 지냈던 친구들이다. 나와 같은 나이여서, 모두들 은퇴를 했거나 은퇴를 앞두고 있는 친구들이었다. 자연스럽게 만나면 제2의 삶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 가가 중요한 화두였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자!’가 요즘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화두야.”

  춘천에서 귀산촌을 준비하고 있는 세혁이가 갑자기 엉뚱한 말을 꺼냈다. 산양삼, 병풍취 등의 산나물을 심은 이야기, 펜션을 지을 공간까지 도로를 만드는 이야기를 하다가 세혁이가 내뱉은 말이다. 세혁이는 수년전부터 수만평의 임야를 구입해서, 산나물을 심고 펜션을 짓는 등 체험농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영이와 영필이는 이해가 안된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세혁이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하지만 나는 세혁이가 왜 그런 말을 하는 지 바로 이해가 갔다. 


  내가 밭을 임대해서 작물을 재배하고 있는 곳은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삽교리라는 곳이다. 해발 600미터가 넘는 고지대에 위치해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남부 지방보다 늦은 5월달에 작물 정식이 이뤄진다. 

  나는 토마토, 청양고추, 감자 등 3~4가지 작물을 1~2백평씩 재배하고 있다. 그중 토마토는 5월초에 정식을 진행하였다. 지난 겨울 둔내면에 있는 종묘상인 ‘식물병원’에 미리 토마토 590주의 육묘를 부탁했었다. 

  토마토 모종을 정식하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다. 첫째는 감자 정식기를 이용하는 방법인데, 정식 작업을 빠르게 끝마칠 수 있다. 두번째는 모종삽을 이용해서 모종을 하나 하나 정식하는 방법이다. 후자는 텃밭 크기에 소량의 모종을 정식할 때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단점이 있다. 나는 정성을 들여서 정식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감자 정식기 대신 모종삽을 집어 들었다.

  나 혼자 정식작업을 진행하였기 때문에, 하루만에 끝마치기는 무리라고 생각하였다. 이틀에 걸쳐서 작업을 할 요량으로, 첫날 300주만을 식물병원에서 가져왔다. 전날 노지밭 옆의 산에서 떠온 부엽토를 물에 섞어서, 토마토 모종이 있는 모판을 침지해주었다. 모종이 잘 자라도록 미생물들이 가득한 물에 넣어준 것이다. 

  엉덩이 방석을 양쪽 다리에 끼워 넣은 후, 옆의 이랑 위에 올라앉아서 정식 작업을 시작하였다. 모종의 맨 아래부분에 있는 떡잎이 흙에 파묻히거나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정식을 진행하였다. 처음에는 더디었지만, 익숙해지면서 작업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비닐하우스의 출입문과 옆 쪽의 비닐을 열어놓았지만, 햇빛이 내려쬐는 하우스는 더워서 연신 땀이 흘러내렸다. 의외로 300주의 정식작업은 오후 12시 조금 지나서 끝났다. 순간적으로 고민이 되었다.

  ‘예정대로 내일 나머지 모종을 정식할까? 아니면 오늘 오후에 마저 작업을 끝내 버릴까?’

  이왕 시작한 이상 마무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점심식사 이후에 계속된 작업은 갈수록 힘들어졌다. 하우스 비닐을 뚫고 내리쬐는 햇빛은 오후가 되면서 더욱 더 강해졌다. 오전부터 구부정한 자세로 작업을 한 탓에, 허리와 무릎, 허벅지에 점차 감각이 없어져갔다. 가끔 쉬기 위해서 일어설 때는, 나도 모르게 “아이구, 허리야!” 하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작업은 오후 5시쯤 마무리되었다.

  문제는 정식작업이 끝난 뒤에도 마무리 작업을 한참동안 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정식을 한 뒤 물을 충분히 줘야 한다. 점적호스를 통해서 관수를 1시간이 넘게 해주고 나서야, 겨우 이랑들이 물에 적셔졌다. 그렇게 마무리작업까지 하고 나니까, 저녁 7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너무 무리해서 작업한 것을 후회했다. 몸에 무리가 간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내가 왜 정식작업을 하루만에 마무리하려고 했지? 회사에서는 무슨 일이든 끝까지 속도감있게 마무리하는 것이 필요했지만, 농사지을 때도 같은 자세로 일해야 하나?’

  농사를 짓는 원칙을 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회사생활 하듯이 농사를 짓게 되면, 얼마 못가서 몸이 망가질 것 같았다. 굳이 회사생활같이 빡빡한 삶을 살기 위해서 강원도로 귀농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서 첫번째 농사원칙이 만들어졌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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