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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Sep 15. 2023

<초보 농사꾼의 하루>장인 장모와의 여행

- 귀농 첫해에 겪은 스물 두번째 이야기

    “여기가 제가 토마토를 재배하고 있는 비닐하우스예요.”

   이른 새벽에 잠이 깬 장인어른을 모시고, 아침 드라이브를 나갔다. 우리가 머물고 있던 펜션에서 10분도 안되는 거리에, 내가 농사를 짓고 있는 비닐하우스와 노지 밭이 있었다. 비닐하우스에 심어져 있는 토마토를 보시고, 청양고추와 감자, 오이, 호박 등이 자라고 있는 노지밭도 둘러보셨다. 처음으로 장인어른께 내가 농사짓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장인어른과 장모님, 그리고 아내와 큰 처제가, 내가 농사짓고 있던 횡성군 둔내면의 한 펜션으로 여행을 왔다. 병원에서 일하시는 장인어른의 스케줄 때문에, 급하게 예약을 한 곳이었다. 큰 처제가 미국에서 살고 있는데, 15년만에 한국에 잠시 들어왔다. 전주에 살고 있는 시부모님과 친정부모님을 만나러 온 것이다.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온 큰 처제를 위해서 만들어진 여행이었다. 원래는 딸들과 장모님만 가려고 했는데, 건강이 좋지 않은 장모님을 염려한 장인어른이 같이 따라 나섰다. 

  사실 장모님의 건강이 좋지 못한 것을 감안할 때, 마지막 여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딸들이 적극적으로 여행을 추진하였다. 장모님은 퇴행성 관절염이 있어서, 걷는 것이 불편하였다. 최근 몇 달 동안은 치매증상도 약간씩 나타나면서 우울한 모습을 보이곤 했었다. 약국을 운영하면서 활발하게 살아오셨던 장모님이기에, 딸들은 걱정을 많이 하였다. 

  3박 4일 동안 둔내와 봉평, 강릉에서 맛있는 식당을 찾아다녔다. 강릉에서는 오죽헌과 경포대 해수욕장을 거닐기도 했다. 노쇠한 장인과 장모님을 배려해서 무리하지 않게 하루 하루를 보냈다. 일요일에는 둔내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는데, 처음 만난 신부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기도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나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자연속에서 살면서, 내 손으로 생산물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동안 회사에서 생산과정의 한 부분만을 맡아서 일을 해왔지만, 이제는 농촌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생산품을 만들어내고 싶었거든요.”

  사실 그동안 강원도의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다는 사실을 양가 부모님들께 말씀드리지 않았다. 평생 회사생활을 해오면서 살았기 때문에, 농사 짓는다고 하면 걱정하실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마침 장인, 장모님이 내가 농사짓고 있는 동네로 여행을 왔기에, 실제로 농사짓고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내심 농사짓는 내 마음을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잘 생각했어. 지구 온난화로 인해서 앞으로는 농사가 중요해질거야. 어떤 작물을 어떻게 재배하느냐에 따라서 노동의 강도도 조절할 수 있을 것이고. 농업에는 가공이나 유통 등 다양한 영역이 있으니까, 시도해볼 만하지.”

  뜻밖에도 비닐하우스와 노지밭을 둘러본 장인어른은 나를 응원해주었다.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면 설득을 시켜야지.’하는 마음으로 긴장하고 있던 나는 비로서 편안해졌다. 그 다음 날은 장모님과 아내, 처제들이 비닐하우스와 노지밭을 둘러보았다. 특히 비닐하우스안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토마토를 바라보면서 예상밖이라는 표정이었다. 생각보다 내가 토마토 재배를 잘하고 있다고 느낀 모양이다. 


  “자, 지금부터 오늘의 성경말씀을 같이 읽고 고민해보자.”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장인어른이 가족들을 불러 모았다. 장인어른과 장모님, 나와 아내, 그리고 두명의 처제가 펜션의 거실 소파에 둘러 앉았다. 둔내면의 한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들어온 직후였다.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사느냐보다 중요한 것이 있어. 바로 하느님 말씀안에서 사는거야. 하느님은 우리가 가야할 길을 언제나 인도해주시거든.”

  그날의 복음말씀을 읽은 뒤, 장인어른이 하신 말씀이다. 마치 전혀 새로운 길을 향해 걸음마를 떼고 있는 나에게 해주시는 이야기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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