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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Oct 01. 2023

<초보 농사꾼의 하루>셋방살이

- 귀농 첫해에 겪은 스물 세번째 이야기

  “여기 있는 물건들을 다 치워줘!”

  주인 할아버지가 큰 소리로 나에게 소리쳤다. 유기농 농약 몇 통을 그늘진 작은 창고에 놓아두었다. 이곳은 주로 주인 할아버지가 쓰는 곳이었다. 내 창고가 없는 실정이어서, 이곳 말고는 따로 보관할 곳이 없었다. 

  “농약들을 서늘한 장소에 보관해야 변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여기에 둔 건데요.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것도 아니어서요.”

  나는 볼멘 소리로 대답하였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여러 차례 치우라고 이야기했다. 기분이 나쁘기도 하고 서럽기도 했다. 어쩌겠는가! 농약들을 하우스 한쪽으로 옮겨 놓았다.

  처음으로 농사를 짓다 보니까, 이것 저것 물건들이 늘어났다. 삽, 괭이, 호미, 분무기 등등… 하우스를 임대해서 토마토를 재배하고 있는 나에게 보관할 수 있는 창고가 있을 리 만무했다. 다른 것들은 날씨와 상관없이 하우스 한켠에 보관하면 되었다. 그런데 농약이나 칼슘 등 액체로 된 것들은, 뜨거운 태양열을 받으면 성분이 변질되어서 약효가 떨어진다. 

  5월 중순에 토마토, 고추 등 각종 작물을 정식한 후에는, 유기농약을 예방 살포해줘야 했다. 병충해가 오기전에 예방하는 것이, 병이 걸린 뒤에 치료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유기농에 쓰이는 자닮오일을 비롯해서 자닮유황, 은행삶은 물 등 몇 가지 농약을 미리 준비해 두었다. 소형 연수기도 설치해 놓았다. 이것들을 주인 할아버지의 창고 한 켠에 놓아 두었던 것이다.


  며칠 전이었다. 신반장과 내가 경작하고 있던 노지밭에 미생물배양액과 자닮오일이 들어간 병충해 예방제를 살포하기로 했다. 아침 8시쯤 신반장을 데리러 자포곡리에 있는 신반장 집으로 가고 있었다. 마침 마을 길을 막고 하천 정비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조바심이 났다. 전날 비닐하우스의 주인 할머니로부터 잔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침 8시쯤 도착한 나를 보고 늦었다고 한마디 했었다. ‘오늘은 더 늦을 것 같은데, 또 잔소리를 듣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신반장 집에 갈 수 있었다.  결국 8시가 훨씬 넘은 시간에 하우스에 도착하였다.

  “아침 일찍 하우스를 열어놓기 어려우면, 아예 저녁에 닫지 마!”

  역시 주인할머니의 잔소리가 쏟아졌다. 여전히 밤에는 5도까지 기온이 떨어지는데, 어떻게 하우스 문과 옆 비닐을 열어놓을 수 있겠는가! 보통 10도 이하로 떨어지면, 토마토를 보호하기 위해서 저녁에 하우스를 닫아 놓는 것이 좋다. 

  주인할머니는 아침에 너무 늦게 열면 토마토들이 광합성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젊었을 때 토마토를 재배해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말씀하시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원주에서 출퇴근하면서 농사를 짓고 있는 나에게는, 아침 일찍 둔내에 온다는 것이 힘든 일이었다.

  

  셋방살이의 설움이 올라왔다. 30여년전 결혼하면서 서울 서교동의 작은 연립주택을 얻어서 신혼살림을 꾸렸었다. 그렇게 시작한 셋방살이를 벗어나는데, 한참이 소요되었다. 아내와 맞벌이를 했지만, 아파트를 사기위해서는 긴 기간이 필요했다. 내 집을 사기전까지 오랜 세월을 셋방살이의 설움을 견뎌야 했다. 오래된 집이어서 수리를 자주 해주어야 했을 뿐 아니라, 그 비용도 내가 내야 했다. 그러면서도 전세가격은 매년 올려 주어야만 했다. 

  셋방살이가 강원도로 귀농하기 위한 과정이려니 생각하였지만, 서러운 것은 서러운 것이다. 


  며칠이 지난 뒤였다. 주인 할아버지가 나보고 하우스 옆에 있는 자그마한 창고를 다 치워 놓았으니까, 사용하란다. 무조건 물건을 치우라고 했던 것이 미안했던가 보다. 나는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하고 난 후, 하우스 한 켠에 놓아두었던 농약들을 옮겨 놓았다. 쌓여있던 셋방살이의 서러운 감정이 녹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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