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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Oct 10. 2023

<초보 농사꾼의 하루>어울림

- 귀농 첫해에 겪은 스물 네번째 이야기

  “혹시 원주시의 기업도시에 사시나요?” 

  ‘농촌에서 살아보기’ 과정에 들어와 있던 안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하자, 반가워했다. 그도 기업도시에 살고 있다고 한다. 

  “가능할 때 제 짐을 옮겨 줄 수 있어요?”

  나에게 뜬금없는 부탁을 해왔다. 갑자기 무슨 짐이냐고 물어보니까, ‘농촌에서 살아보기’ 과정을 그만두고 나간다고 한다. 그동안 산채마을에서 지내기 위해 가져왔던 짐을 옮겨야 한단다. 

  “교육 기간중에 갑자기 왜 나가세요?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요?” 

  나는 놀라서 물어봤다. 6개월 교육기간중에 프로그램을 이탈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다 보니까 농사 짓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가 힘들어서요.”

  안선생님은 70대였다. 수십년동안 버스 운전을 하면서, 운동을 거의 하지 않은 탓에 몸이 많이 약해진 상태란다. 게다가 농업계 고등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농촌에서 살아보기’에서 진행하고 있는 내용을 대부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날 안선생님이 부탁한 이불 보따리를 비롯한 몇몇 짐을 옮겨 주었다. 


  안선생님이 프로그램을 그만둔 것은 2023년 5월 중순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지난 후였다. 마을의 국궁 클럽(청태정)에서 월례대회를 개최하였다. 허총무가 월례대회의 준비 작업을 도와 달라고 카톡방에 올렸다. 나는 고추 정식을 하루 미루고 허총무를 도와주었다. 허총무는 나보다 3~4살 젊은 사람으로, 청태정의 대소사를 맡고 있었다. 차분하면서도 착한 성품을 가지고 있어서, 클럽의 모든 사람들이 좋아했다. 

  날씨가 청명해서, 활쏘기에는 아주 좋은 날이었다. 오전 10시쯤 산채마을의 뒷편에 있는 국궁장으로 향했다. 허총무와 함께 한중이 아빠가 있었다. 한중이 아빠는 그날 아침에 5발의 화살을 쏴서 모두 명중을 시켰다고 한다. 5시(矢) 5중(中)을 하게 되면 ‘접장’이라는 호칭이 주어진다. 활을 잘 쏘는 사람으로 예우를 해주는 것이다. 한중이 아빠는 자그마한 키지만 다부진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전혀 흔들리지 않는 자세로 시위를 당기곤 했다. 사냥을 오랫동안 하면서 체력을 다져왔다고 한다. 그런 한중이 아빠가 접장이 된 기쁜 날이었다.  

  “축하합니다!” 

  나는 한중이 아빠에게 축하 인사를 하였다. 한중이 아빠는 한껏 들떠 있었다. 몇 분 뒤에 나보다 1~2주일 먼저 국궁을 시작한 최사장님이 도착하였다. 유기농 비료를 유통하는 분이었다. 우리는 트럭을 몰고 마을 회관으로 가서, 큰 천막 2개를 가져왔다. 이것을 국궁장 바로 옆의 빈터에 설치하고, 산채마을에서 가져온 책상과 의자들을 배치해 놓았다. 먼지가 앉은 책상과 의자들을 닦고, 총무가 챙겨온 일회용 국그릇, 수저, 젓가락 등을 식탁 위에 배열해 놓았다. 월례대회가 끝나고 고기를 구워서 간단한 회식을 할 예정이었다. 

  그날 오후 2시에 월례대회가 시작되었다. 회원들은 3개 그룹으로 5명씩 나누어서 경기를 진행하였다. 초보자인 나는 C조에 속해 있었다. 부사두님이 우리 조의 주장이었지만, 초보자들이 많은 우리 조에서는 과녁을 명중한 화살 수가 많지 않았다. 나 역시 하나도 맞히지 못했다.   

  대회가 끝날 때쯤 둔내면장, 횡성군 체육부장, 횡성군 의회 부의장 등이 와서, 시상과 함께 간단한 축사를 해주었다. 그리고 준비된 삼겹살과 안주들을 가지고 회식을 진행하였다. 대부분의 회원들이 몇 번 밖에 보지 못한, 서먹한 사이였다. 이날 회식에서 술을 한잔씩 권하면서 인사를 했다. 덕분에 한층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마을 사람들과 왁자지껄하게 어울리는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나는 주로 ‘농촌에서 살아보기’ 교육생들과 함께 고기를 구웠다. 원주로 돌아가야 했기에, 술은 자제하고 고기만 먹었다. 

  “안선생님이 그동안 다른 교육생들하고 잘 어울리지 못했어요. 몸이 좋지 않아서 교육 프로그램 참여에도 소극적이었고요.”

   같이 고기를 굽던 윤반장이 안선생님이 프로그램에서 탈퇴한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교육 프로그램에 빠지는 일이 잦아지면서, 다른 교육생들과의 관계도 소원해졌다고 한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이 시작된 지 한달만에 그런 결정을 해준 것이 잘된 일이라고도 했다. 일찍 결심을 해준 덕에 교육생들의 공동체 생활이 좀 더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안선생님의 빈자리는 곧 채워졌다. 그로부터 2주쯤 뒤에 30대의 젊은 부부가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들은 지난 몇 년 동안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었는데, 여러가지 사정으로 어려웠다고 한다. 마침내 빈자리가 생기면서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젊은 부부가 같이 교육을 받으면서, ‘농촌에서 살아보기’ 교육생들간에 잘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는 형성되었다. 

  농촌은 도시와 다르게 어울릴 수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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