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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Oct 15. 2023

<농촌에서 살아보기 퇴고글>전환의 시기

- '농촌에서 살아보기'과정에 대한 열일곱번째 글

  나와 가족들은 새벽 3시쯤 일어나서, 핸드폰에서 나오는 동영상에 집중했다. 첫째 아들인 민수의 대학교 졸업식이 중계되고 있었다. 직접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미안한 감정을 안고, 가족들 모두 이른 새벽에 민수의 졸업식 장면을 보기 위해서 일어났던 것이다. 이윽고 민수가 연단으로 올라갔다. 대학 학장이 졸업장을 수여하고 졸업 가운 위에 후드를 걸쳐 주었다. 비록 멀리 한국에서 보고 있었지만, 우리 가족들은 모두 환호성을 지르면서 민수의 졸업을 축하해주었다. 

  민수는 졸업을 하고 미국에 있는 회사에 들어가기를 원했다. 한두 달 전부터 수십 곳의 미국 회사에 원서를 넣고 인터뷰도 진행하고 있었다. 미국 회사의 채용 인터뷰는 보통 3~4단계로 이루어졌다. 민수는 몇 개 기업들의 최종 인터뷰까지 갔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외국인이라는 것때문에 떨어지곤 했다. 미국 기업들이 외국인에게 비자 sponsorship 해주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외국인의 미국 내 취업을 억제하기 위해서, 발급해주는 비자 숫자를 크게 제한해 놓은 탓이다. 외국인 신분인 민수는 2022년 8월말까지 취업을 하지 못하면, 한국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미국에서 꿈을 펼치고자 했던 민수에게는, 스트레스가 큰 상황이었다. 


   2022년에는 민수뿐 아니라 우리 가족들이 모두 다음 단계로의 인생의 전환 과정을 경험하고 있었다. 둘째인 찬수는 군대를 제대하고 미국 대학교의 복학을 기다리고 있었다.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해였다. 같이 대학에 입학했던 동료 학생들은 이미 졸업한 뒤여서, 학교에는 친하게 지내던 학생들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2년정도 손을 놓았던 전공과목 공부들도 다시 시작해야 했다.

  코로나 시기를 이용해서 군대에 간 것은 잘한 결정이었지만, 앞으로도 어려운 일정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찬수도 대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 미국의 회사에 취업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형과 비슷하게, 외국인으로서 비자 sponsorship을 해줄 수 있는 회사를 찾아야 한다. 

  나도 역시 제2의 삶을 준비하고 있었다. 2021년에는 한옥학교에서 6개월동안 생활한 데 이어서, 횡성에서 ‘농촌에서 살아보기’ 6개월 과정을 경험하고 있었다. 귀농을 염두에 둔 시간들이었다. 횡성에 살 집과 밭을 마련하고, 농사 지을 작목들을 결정하고, 농사짓는 법을 배우고…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내도 역시 눈코 뜰새 없이 바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5년동안 살았던 인천에서 서울로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이삿짐을 옮겨 놓은 다음에는, 언제나 아내의 할 일이 많았다. 이삿짐을 제 자리에 정리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서, 집안에서 수리가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외부 전문가에게 작업을 맡기고, 필요한 물품들을 구매하고… 거기에다가 남편이 강원도로 귀농을 준비하고 있어서, 강원도 생활도 준비를 해야 했다. 


  가족들이 각자 다음 단계에 연착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전환과정을 어떻게 슬기롭게 만들어 가느냐’가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보다도 과정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어차피 하느님께서는 우리 가족들이 각자 살아갈 길을 만들어 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다음 단계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보다는, 오히려 ‘어떻게 다음 단계로 진화해 나갈 것인가?’가 가족들에게는 더 의미 있을 것 같았다. 

  누구나 힘들 때는 가족들의 응원이 가장 큰 힘이 되듯이, 서로 힘들 때 더욱 깊은 애정과 추억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힘들 때 서로에게 보내준 응원의 박수가, 평생 가족들간 사랑의 깊은 샘물이 될 것이다. 천주교를 믿는 우리 가족들은 매일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을 때는, 위로의 말과 함께 유머로 최소한 한 시간이상을 웃을 수 있게 해준다. 

  가족들과 떨어져서 미국에서 혼자 지내고 있는 민수는, 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가족들과 화상 통화를 하곤 했다. 아내와 찬수, 그리고 나는 민수와 유머를 주고받으면서, 민수가 웃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실컷 웃고 나면, 그동안 쌓여 있던 불안과 걱정에서 잠시나마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서로 기도해주고 통화를 끝내곤 했다. 

  가족들의 기도에 힘을 내면서, 민수는 번번히 떨어지는 것에 굴하지 않고 여러 회사들에 계속 지원서를 냈다. 그해 7월 어느 날 드디어 최종 합격통보를 받았다. 민수가 원하는 금융 자산 운용 회사였다. 가족의 기도가 이뤄지면서, 민수는 자신이 원하던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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