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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Oct 21. 2023

<한옥 대목반>동자주(童子柱)와 매생이 굴전

- 대목과정의 첫번째 퇴고버전: 스물 한번째 이야기

  요리사 출신인 종석이가 부침가루와 튀김가루를 섞어서, 매생이 굴전을 부칠 준비를 했다. 일현이가 옆에서 청양고추를 잘게 잘라서, 전을 부치는 재료에 섞어 넣었다. 그렇게 30분이 채 되기전에 첫번째 매생이 굴전이 완성되었다. 나는 평생 처음으로 매생이 굴전을 먹어보았다.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맛있었다. 몇 주전에 먹었던 파래전하고는 비교가 안될 정도였다. 굴을 포함해서 생선류를 거의 안먹는 유명이 조차도, 맛있다고 하면서 잘 먹을 정도였다.

  “매생이는 파래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맛있고, 그래서 비싼 거야. 거기에다가 싱싱한 굴이 들어갔고, 부침가루에다가 튀김가루까지 섞었기 때문에 맛있을 수밖에 없지.”

  동료들이 연이어 맛있다고 칭찬하자, 종석이가 겸손하게 대답을 했다.


  평창의 겨울은 우리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춥다. 체감온도가 영하 15도 이하로 떨어지는 것은 보통이다. 조금 춥다 싶으면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진다. 바람까지 불어대면, 밖에 나가기가 싫어질 정도이다. 마을들이 보통 해발 600~700미터 높이에 위치해 있으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2021년 1월 둘째 주에 그런 동장군이 찾아왔다. 한옥학교 동료들은 외부 실습장에서 맞배집 짓는 작업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실내 실습장에서 수업을 진행하였다. 맞배집의 기둥과 보, 주심도리, 주심장혀, 그리고 서까래 등은 이미 완성하였고, 일부는 조립까지 마무리했다. 이제는 보위에 올라갈 동자주(童子柱)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한다. 

  동자주는 말 그대로 작은 기둥인데, 보통 대들보 위에 올라가서 종장혀와 종도리를 떠받치는 역할을 한다. 종장혀와 종도리 위에 서까래가 있으니까, 결국 동자주는 서까래와 지붕의 무게를 떠안아야 된다. 기둥과 보가 한옥집의 뼈대를 만들어 준다면, 동자주는 뼈대를 덮어주는 지붕을 받쳐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동자주를 만드는 것은 한옥집이 완성되기 직전단계의 작업이고, 그것의 원 둘레는 상당히 크다.  

  체감온도가 영하 20도 가까이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실내연습장 문을 박차고 나가서 외부에서 원목의 치목 작업을 진행하였다. 전동 톱을 이용해서, 필요한 크기로 원목 자르는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전동 톱을 사용하면 톱밥 먼지가 많이 날릴 뿐 아니라,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주로 외부에서 작업하였다.

  전동 톱 작업을 여러 명이 동시에 진행하면 위험했다. 자칫 전동 톱날이 튀거나 하면, 바로 옆에서 작업하는 사람이 크게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두 군데에서만 나무 자르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동료들이 서로 하겠다고 나섰다. 작업하지 않고 멀거니 쳐다보고 있으면, 평창의 추위가 뼈속으로 스며들어오는 것이 막을 수 없었던 탓이다. 작업하는 두 명을 제외한 나머지 동료들은 제자리 뛰기를 하거나, 실내실습장에 있는 석탄난로나 전기난로 옆으로 피신하기도 했다.

  동자주를 완성할 즈음, 그날의 수업시간이 모두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추운 날씨와 싸우면서 일하느라, 나와 몇몇 동료들은 허기를 느꼈다. 더불어 몸의 피로를 풀어줄 수 있는 술 한잔이 생각났다. 우리들은 먹거리가 있는 내 집으로 몰려갔다. 내가 지난 주말에 사온 매생이와 굴로 전을 부쳐 먹기로 했다. 


  매생이 굴전이 워낙 맛있다 보니까, 술도 잘 들어갔다. 우리는 소주파와 와인파로 나뉘어져 술잔을 기울였다. 얼큰히 취한 우리들은 각자의 지나간 세월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한옥학교에서 처음 만난 사이라서,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유명이는 어릴 때 어렵게 자란 이야기, 자기가 연극을 하면서 겪었던 힘들었던 이야기 등을 쏟아냈다. 연극을 시작한 지 몇 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 커 보였다. 

  “남동생과 누나는 독일에서 음악 공부를 하고 있어요. 우리 삼형제 중에서 저만 미래가 불확실한 것 같아요.” 

  미래에 대한 안정감이 없는 자신의 처지가 형제들과 비교되면서 스트레스가 많은 것 같았다. 

  “30대는 삶을 만들기 시작하는 시기야.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차근차근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다 보면, 네 미래도 잘 만들어질거야.”

  제일 나이가 많은 나는 그의 용기를 북돋워주고 싶었다. 유명이의 고향은 제주도이고, 현재도 그곳에서 살고 있었다. 제주도의 자연환경에 적합한 한옥을 지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한옥학교에 입학하였단다. 한편으로는 연극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줄이면서,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힘을 얻고자 평창으로 왔다고 한다.    호림이는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남들처럼 같이 여행을 가거나 자식들에게 다정다감한 아버지를 많이 그리워했단다. 그래서 사춘기에 아버지에게 반항도 많이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버지와 같은 분야에서 일을 하면서, 아버지를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인테리어 업체를 경영하고 있어요. 주로 서울과 세종시에 지어지고 있는 아파트와 전원주택 단지를 대상으로 작업을 하고 있죠. 군대에서 대위로 제대한 후, 아버지 밑에서 일을 배우고 있어요.”

  호림이는 현재의 인테리어 사업을 한옥으로 확대해보고자 한옥학교에 입학하였단다. 잠시 쉼표를 찍는 시간을 가지면서,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코자 했던 것이다.  

  

  아직 30대의 젊은 친구들이기 때문에, 앞으로 살아갈 미래에 대해서 많이 응원해주었다. 한옥학교에서 기둥이나 동자주를 하나 하나 깎아서 맞배집을 완성해나가듯이, 이들의 인생에서도 동자주를 하나씩 만들고 있는 시기인 것 같았다. 서까래와 지붕을 떠받칠 수 있을 만큼 튼튼한 동자주가 만들어지면, 그들만의 집도 완성단계에 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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