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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Oct 28. 2023

<초보 농사꾼의 하루>중국 종교집단

- 귀농 첫해에 겪은 스물 다섯번째 이야기

  "어? 형님이 계셨네! 잘 지내셨어요?"

    둔내면에 새로 생긴 중국집에서 신반장 부부와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마침 그때 근처에 살고 있는 종석이가 들어왔다. 전년도 평창한옥학교에서 같이 교육받던 친구였다. 그는 한쪽 구석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나를 발견하고는 인사를 건넸다. 

    "종석이구나! 잘 지냈어? 이 가게가 새로 문을 열어서 와 본거야~"

   나는 종석이와 같이 들어온 그의 친구에게도 인사를 했다. 얼마 뒤 다른 테이블에서 중국 음식과 함께 소주를 마시던 종석이가 내 자리로 왔다. 소주 한잔을 건네고는 우리가 식사하고 있던 식당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형님이 지내는 삽교리의 맨 안쪽으로 들어가면, 중국인들이 경작하는 농장이 있죠? 중국의 한 종교집단에서 운영하는 것인데요, 이 식당도 그들이 소유하고 있다고 하네요."

    이 종교집단은 둔내면 몇 곳에 큰 농장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얼마전에는 둔내면에서 제일 큰 호텔도 매입했다고 한다. 종석이는 이들이 둔내면의 경제권을 조금씩 장악해가는 모습이 우려된다고 했다. 이들이 중국에서 문제가 되어서 한국으로 온 것이라는 소문이 있어서, 마을 사람들도 경계심을 가지고 있단다. 다만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정당한 계약에 의해 논밭이며 호텔, 식당 등을 매입하고 있어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란다. 사실 이들이 부동산 계약을 할 때, 시세보다 훨씬 비싼 가격으로 구입을 하고 있었다. 이런 시골 마을에서 이보다 더 좋은 구매고객이 어디 있겠는가?

  

  둔내면의 중국 식당에서 종석이를 만나기 얼마 전이었다. 삽교리의 제일 안쪽에 위치해 있는 김대표님의 감자 밭에 일을 도와주러 가는 중이었다. 김대표님의 감자 밭에 가려면, 중국인들이 농사짓고 있는 큰 농장을 지나가야 했다. 이 농장은 몇 채의 주택이 있는 하나의 작은 마을이었다. 만여 평이 족히 넘을 듯한 밭이 이 주택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이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나무로 만든 바리 케이트가 쳐져 있었다. 누구도 들어오지 말라는 것이다. 담도 없는 농촌에서는 흔한 현상이 아니다. 

   마침 30~40명의 중국인들이 트랙터를 사용해서, 밭에 로터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다른 쪽에서는 관리기를 이용해서 멀칭 작업을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중국인 노동자들은 우리에게 인사도 하지 않지만, 우리가 인사해도 받지를 않아요. 오히려 길을 가다가 우연히 라도 마주칠 것 같으면, 오던 길로 되돌아가버리곤 하죠."

    김대표님이 중국인들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마을 사람들과 접촉을 못하게 해서, 갈등의 소지를 아예 없애 버리고자 하는 것이다. 이들 중국인들은 믿고 있는 종교집단에 자기의 재산을 모두 헌납한 뒤, 이곳이 운영하는 농장에 들어와 산다고 한다. 중국인 농장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중국으로 수출해서, 이곳의 운영자금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웃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인 농촌에서는, 이 종교집단이 매우 이질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로부터 얼마 후, 산채마을의 이장님 댁 옆을 지나가는 마을 도로를 따라서 화동리로 넘어가게 되었다. 삽교리와 화동리는 자그마한 야산을 경계로 하고 있었다. 이장님 댁을 지나서 삽교리 경계지점까지는 포장이 잘 된 2차선 마을 도로였다. 그런데 화동리 접경지역부터는 비포장 도로였다. 나지막한 야산의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도로라서 그런지, 크고 작은 돌들이 비포장 도로에 널브러져 있었다.

  조심스럽게 운전해가고 있는데, 시골의 한적한 곳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큰 건물이 나타났다. 마치 학교와 같은 모습으로 옆으로 길게 지어진 3층짜리 건물이었다. 중국 종교집단이 운영하는 숙박시설이라고 한다. 많은 중국인 노동자들이 둔내면의 농장에서 일을 하고 저녁에 돌아와 쉬는 곳이었다. 내가 삽교리에서 봤던 중국인들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이들이 왜 자기들의 나라가 아닌 한국에서 정착해 있는 것일까? 그것도 농촌마을의 한 구석에서. 중국정부의 종교집단에 대한 박해를 피해서 왔다는 소문이 사실인 것 같았다. 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생활하고 있는 지도 궁금하였다. 더 궁금한 것은 이들 종교집단이 앞으로 둔내면 마을 사람들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여부이다. 

  지금과 같이 마을 사람들과의 접촉을 일체 하지 않고 산다면, 융화가 되기 어려울 것이다. 다만 신도수가 늘어난다면, 농장을 포함해서 경제적 행위를 할 수 있는 기반을 확대해 나갈 것이다. 그 과정에서 둔내면 주민들과의 경제적 마찰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언제까지 독립된 생활공간안에서 갇혀 지낼 것인지, 그들의 행보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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