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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Sep 24. 2023

<농촌 체험하기 퇴고글>웅덩이에 빠진 트럭

- '농촌에서 살아보기'과정에 대한 열여섯번째 글

  2022년 5월에는 비가 오지 않는 날이 많았다. 마을 개울가에서 물을 길어서, 공동 농장의 작물들에게 수시로 뿌려주어야 했다. 모종을 심은 지 얼마되지 않아서, 자칫 말라 죽을 수 있는 시기였다.

  트럭에는 이천 리터짜리 큰 물통이 실어져 있었다. 우리는 트럭의 동력 보조장치(PTO; Power Take Off)를 이용해서 물을 주었다. 그 날도 물통에 물을 가득 채우고, 고추 밭이 있는 야트막한 산으로 차를 몰았다. 최근에 정식한 고추와 고구마 밭에 물을 주러 가는 길이었다. 무거운 물통을 싣고 있어서 조심스럽게 운전해야만 했다. 더군다나 내가 농업용 트럭을 운전한지 며칠 되지 않은 날이었다. 수동 기어로 된 차를 운전해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자원해서 운전대를 잡게 되었다.

  20년이 훨씬 넘은 중고 트럭이었다. 당장 폐차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낡았다. 대부분 차량에 장착되어 있는 운전대의 power steering 기능도 없었다. 마찰이 많은 비포장 도로에서 차를 회전시킬 때에는, 온몸의 힘을 사용해야만 겨우 돌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날은 무거운 물통 탓에 운전대가 더 뻑뻑해졌다. 

  야산의 5부 능선쯤에 고추 밭이 있었고, 조금 더 올라가면 감자 밭과 고구마 밭, 호박 밭이 차례로 나타났다. 천오백 평에 달하는 교육생들의 공동 농장이었다. 이곳에 가려면 구불구불하고 비좁은 비포장 산길을 비집고 올라가야 했다. 무거운 트랙터가 지나다녀서 그런지, 길이 여기저기 깊이 패여 있었다. 패여 있는 곳을 지날 때면 운전대가 휙휙 돌아가면서, 차가 좌우로 크게 흔들렸다. 차의 무게 중심이 흔들려 전복될 우려가 있어서, 조심스럽게 운전해야만 했다.

  고추 밭에 물주는 작업은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더 위쪽에 있는 고구마 밭 차례였다. 하루 전에 정식한 고구마의 잎들이 뜨거운 태양열 때문에 힘들어서 그런지, 축 늘어져 있었다. 


  한시간 정도 지났을까? 고구마 밭에 물주는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트럭을 돌려서 산채마을로 돌아가야 했다. 점심식사로 주문한 막국수가 도착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트럭 운전석에 앉는 순간 낭패감이 들었다. 돌아가려면 후진을 하거나 360도 돌려야 했는데, 후진해서 가기에는 너무 위험했다. 트럭을 돌리기에도 너무 좁은 공간이었다. 전진과 후진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360도 회전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때 사건이 발생했다. 트럭을 후진하는 과정에서, 그만 뒷바퀴 하나가 움푹 패어있는 웅덩이에 빠져버린 것이다. 옆에 있던 동료들도 망연자실했다. 여자동료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한 채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지켜보던 남자 동료들 4명은 힘을 합해서 트럭을 밀어보았다. 신반장과 전장군님은 웅덩이에 빠지면서까지 온 힘을 다해서 트럭을 밀었다. 하지만 이들의 힘만으로 빠져나오기에는 웅덩이가 너무 깊었다.

  교장선생님이 여기 저기 둘러보더니, 평평한 돌을 찾아서 웅덩이에 빠진 바퀴 앞에 놓았다. 젖어 있는 진흙보다는 단단한 돌을 밟고 올라서기 수월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1단 기어를 놓고 차를 움직여 보았다. 차는 헛바퀴만 돌뿐,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웅덩이의 진흙속으로 바퀴가 더 깊이 파묻혀버렸다. 

  “일단 산채마을로 걸어갑시다. 점심을 먹으면서 트럭 빼내는 방법을 대표님과 상의해보죠.”

  최선생님이 이렇게 의견을 제시했다. 한참을 씨름하던 우리는 트럭 빼내는 것을 포기하고, 걸어서 산채마을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실수를 해서 의기소침해진 나는 아무 말없이 걸어갔다. 동료들은 나에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농담을 건넸다. 


   막국수를 먹으면서, 트럭의 차 바퀴가 웅덩이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대표님에게 했다. 대표님은 짜증난 표정을 지었지만 아무 말씀도 없었다. 점심 먹고 가서 다시 한번 시도해보고, 안되면 연락을 달라고 했다. 트랙터를 몰고 가서 트럭을 빼내 보겠다고. 

  우선 트럭의 물통에 약간 남아있던 물을 근처 땅콩 밭에 마저 뿌려서, 트럭의 무게를 줄였다. 그리고 난 후 동료들이 모두 트럭을 밀었다.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때 대표님이 트랙터를 몰고 나타났다. 트랙터와 트럭을 두 개의 두꺼운 끈으로 연결하고, 트랙터로 트럭을 끌어내는 시도를 했다. 그 과정에서 두 개의 끈 중에 하나가 끊어지자, 대표님이 짜증나는 듯한 목소리로 나에게 이야기를 했다. 

  “트랙터로 끌어내는 동안, 트럭의 기어를 전진모드로 해놓아야죠!”

  트럭의 운전석에 앉아 있던 내가 기어를 1단으로 변환시키기 위해서, 잠깐동안 클러치와 브레이크를 잡았었다. 그 사이에 대표님이 트랙터로 트럭을 잡아 끄는 바람에, 트럭에 연결해놓은 끈 중 하나가 끊어지고 만 것이다. 대표님의 말투에는 ‘트럭 바퀴를 왜 웅덩이에 빠뜨렸느냐?’는 책망의 감정이 실려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순간 나도 짜증이 나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굳이 트럭을 운전할 필요가 없었는데, 왜 운전을 해서 이런 기분 나쁜 일까지 당해야지! 오히려 운전 안 하면 더 편한데.’ 

  대표님이 야단치는 말투로 뭐라고 하니까, 더욱 불쾌해졌다. 한참을 시도하던 끝에, 트럭이 웅덩이에서 빠져나왔다. 트랙터가 워낙 힘이 좋아서, 트럭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 문득 일이 해결되었는데, 굳이 짜증을 내서 감정의 앙금을 남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굳이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교육과정에 들어와서 내가 처음 친 큰 사고여서 그런 지, 뒷맛이 영 개운치 않았다. 다들 별다른 말이 없었지만, 마치 나의 실수인 양 치부되는 것 같아서 불편했다. 나는 굳이 트럭을 운전하는 일을 떠맡고 싶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다른 사람이 운전을 했으면 합니다.’라는 말을 동료들에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입안에서 맴돌 뿐이었다. 내가 안 한다고 하면, 누군가 강제로 떠맡아야 하는 그런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이 동료들을 힘들게 할 것이다. 

  앞으로도 수 개월 동안의 교육과정 중에, 이런 일들이 많이 발생할 것이다. 그때마다 힘든 일을 다른 동료들에게 미룬다면, 이 공동체 생활은 힘들어질 것이다. 그날 그 순간에 감정적으로 나의 마음을 드러내게 되면, 서로 배려하는 분위기가 깨질 것만 같았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감정적인 언어는 나뿐 아니라 조직에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하곤 했었다. 감정적인 행동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분위기를 깨뜨릴 수 있다. 이렇게 무너진 조직 분위기를 다시 추스르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거나, 혹은 이전의 분위기로 돌아가지 못할 때도 있었다. 무엇이든 망가뜨리는 것보다 만들어가는 것이 훨씬 어렵고 오랜 기간이 걸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의 큰 실수가 동료들간의 공동체 분위기를 깨뜨릴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보약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웅덩이에서 빼낸 트럭을 몰고 내려오면서, 내 머릿 속에서는 이런 저런 생각들이 교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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