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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an 22. 2022

<열여덟번째 이야기> 보 만들기와 함께 한 일주일

  12월초가 되면서 아침 체감온도가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졌다. 하루종일 추워서 그런지, 어제 마신 술이 빨리 깨는 것 같았다. 

  어제는 아침부터 비가 주륵주륵 내리면서 센티멘탈한 감정이 들었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여서 가을이나 봄비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이전에 비가 오는 날이면 김광석 노래를 틀어놓고 파전을 안주삼아 막걸리를 마시던 때가 떠올랐다. 나이가 들어서인가? 아니면 평창의 자연환경이 감성을 자극해서 인가? 잘 모르겠지만 행복한 시절을 떠올리는 순간들은 언제나 행복하다. 

  이런 나의 감정을 다른 동료들에게 우스개 소리로 이야기하였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서, 점심때 체육부장이랑 몇 명이 장평 장터에 가서 감자전과 메밀전, 막걸리 몇병을 사왔다. 그리고 하루 수업을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 즈음에, 조촐한 파티를 열었다. 감자전과 메밀전이 맛있어서 그런지, 막걸리 5병이 금방 동이 났다. 

  그렇게 시작된 파티에 발동이 걸려서, 몇 명이 우리 집으로 왔다. 그들은 엊그제 코스트코에서 사다 놓은 종이 박스로 된, 큰 와인 2개를 모두 마셔버렸다. 코스트코의 종이박스에 있는 와인 1개가 와인 4병과 같은 양이니까, 와인을 8병 마신 것이나 진배없었다. 그냥 아무 스트레스 없이, 술을 즐겁게 마실 수 있는 순간이 인생에서 몇 번이나 있을까? 이날이 그런 순간중의 한번이었다. 모두들 많이 마셨지만 즐겁게 마신 탓인지, 그다지 취하지 않았다. 


  어제 보를 만들기 위해 4면이 서로 직각이 되게 다듬어 놓은 나무를 가지고, 오늘은 가공을 했다. 선생님이 보 모형을 가져다 놓고, 어떤 모양으로 가공을 할 것인지 알려주셨다. 보를 기둥 위에 얹고 장혀와 도리가 지나가도록, 필요한 부분을 따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런 다음 보 머리를 예쁘게 가공할 것이다.  


  보가 기둥과 정혀, 도리와 만나는 곳을 가공하기 위해서, 나무 위에 적합한 치수로 선을 그린다. 그리고 이 선을 따라 톱과 끌을 가지고 파낸다. 먼저 톱으로 파낼 부분을 필요한 깊이까지 잘라낸다. 이때 밑그림으로 그려놓은 선이 보이게끔 잘라내야 한다. 그려진 선 부분뿐 아니라, 선과 선 사이에 끌로 파낼 부분에도 적당한 간격으로 톱질을 해준다. 그러면 상대적으로 끌질을 하기 편해진다. 


  끌을 사용할 때는 약 45도 정도의 비스듬한 경사로 나무에 대고, 망치로 쳐서 나무를 파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내가 작업했던 나무에는 옹이가 많았다. 옹이는 송진이 뭉쳐진 것이기 때문에, 톱이나 끌로 한번에 파내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끌을 어느 정도 박아놓은 다음에, 망치로 끌을 세게 내려치면서 나무를 파냈다. 기술이 부족하니까 힘으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이 동작이 끌에게 부하를 많이 주었는지, 끌의 목부분이 부러지고 말았다. 역시 공구들도 자기가 할 수 있는 몫이 있는 법이다. 

  


  보가 기둥과 장혀와 만나는 부분을 톱과 끌로 가공한 다음, 머리부분을 조각했다. 보의 머리부분은 한옥집의 외부에서 잘 보이기 때문에, 보기좋게 조각해야 한다. 보 머리를 조각하는 작업은, 그동안 단순한 치목만을 해온 우리에게 다소 생소하면서도 어려웠다. 그동안 큰 근육을 쓰는 작업을 했다면, 이것은 소근육을 잘 활용해야 하는 섬세함이 필요했다.

  우선 보 머리를 아름답게 만들 밑그림을, 나무에 그려 넣어야 했다. 그림을 쉽게 그리기 위해서, 나무판자 위에 조각할 곳과 같은 모양의 그림을 그려 넣고, 이것을 잘라냈다. 이것을 보에 대고 그대로 그려 넣으면, 밑그림이 완성된다. 그리고 보 머리의 중간 부분에서 코를 만들 자리를 추가로 그려넣는다. 


  밑그림이 다 그려지면, 전기 톱으로 대강의 그림에 맞게 따낸다. 이 작업이 어려운데, 전기 톱을 잘 사용하는 선생님은 능숙하게 이 작업을 해나갔다.


  전기 톱으로 대강의 모습을 만든 다음에, 이제 끌로 조각을 해나간다. 이때 환끌을 이용하면 곡선모양을 만들어가기 편하다. 4명이 한 조가 되어서 같이 작업을 했는데, 우리 조의 일연, 정수, 종철이 워낙 잘 하기 때문에 수월하게 작업을 마무리했다.  


  우리는 일과시간이 끝나갈 즈음이면 언제나 그렇듯이, 난로 주위에 앉아서 망중한을 즐겼다. 그날 작업을 다 마무리하고 하교를 기다리는 순간이어서, 우리에게는 너무도 편안한 시간이다. 우리들이 난로앞에서 쉬는 모습을 사진작가인 용현이가 찰칵! 각자 다른 행동을 하면서, 쉬는 우리의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다. 우리들이 쉬고 있는 곳 바로 앞에 있는 나무들 위에, 수북이 쌓인 톱밥이 인상적이다. 일연과 나의 작업대인데, 우리가 그만큼 열심히 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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