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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an 23. 2022

<열아홉번째 이야기> 동료의 큰 부상으로 시작된 일주일

  12월초부터 2월까지 매주 월요일 sketch-up(스케치업) 교육을 받는다. 한옥을 짓기 전에 설계를 하고, 설계화면을 3D로 보여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직관적이어서 CAD보다 현장에서 더 많이 활용된다고 한다. 

  우리 학교의 선배기수이기도 한 강사님으로부터 스케치업의 다양한 기능에 대한 설명부터 들었다. 간단하게 도형을 만들고 이동시킨다거나, 갖가지 기능을 단축키로 만드는 과정들을 연습하였다. 이때까지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현재 우리가 야외 실습장에 짓고 있는 맞배집에 대한 설계작업에 들어가니까, 너무 어려웠다. 특히 기둥 윗부분에서 보아지, 보, 장혀, 도리와 만나는 부분을 입체적으로 만들 때는, 잘 따라갈 수 없었다. 복잡한 부분이어서, 많은 기능을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정수, 종철 등 동료들이 옆에서 도와주어서 간신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번 주 첫날부터 잘 이해가 안 되는 공부를 해서 그런지, 찜찜한 마음으로 시작하는 한 주였다. 지금까지 진행해왔던 치목이나 가공 등의 실습과정과 스케치업이 너무 비교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치목이나 가공 과정은 너무 재미있었고, 나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스케치업은 너무 어려울 뿐 아니라 배우는 과정이 재미도 없었다. 30년을 사무실에서 컴퓨터와 함께 근무했던 내가, 강의실에서 컴퓨터로 프로그램을 배우는 것이 재미없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첫날이어서 그렇겠지. 복습을 열심히 해서 따라가야지.’ 하는 결심을 했던 하루였다. 


  화요일 아침 교수님은 우리를 칭찬해주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서로 단합도 잘되고 분위기도 너무 좋다고 하신다. 특히 2달 가까이 한명도 부상을 당하지 않고 와주어서, 너무 고맙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게 왠 오비이락(烏飛梨落)인가? 교수님이 우리를 칭찬해준 날 오후에 용섭이가 발을 다치고 말았다. 

  그동안 우리가 치목한 기둥, 장혀, 도리, 서까래 등을, 실내 연습실 여러 곳에 종류별로 분류해서 쌓아 놓았다. 치목을 한 나무들은 야외 실습장에서 맞배집으로 조립하기 직전에 꺼내서, 가공을 해야 한다. 이날도 일부 치목한 나무들을 가공해야 했다. 그런데 그날 가공을 해야 할 나무들이, 하필 치목한 나무들이 쌓여 있는 안쪽에 놓여 있었다. 

  용섭이를 포함한 몇 명이 그것을 꺼내려고, 위에 놓여있는 나무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쌓아놓았던 다른 나무들이 무너지면서, 용섭이의 발등위로 떨어진 것이다. 놀란 우리들은 통증으로 서있지도 못하고 앉아있는 용섭이 주위에 모여들었다. 그리고 일단 냉찜질할 것을 찾으면서, 병원으로 갈 준비를 했다. 용섭이가 웃으면서 그다지 아픈 표정을 짓지 않아서, 내심 냉찜질 정도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이 심해지면서, 행정실장과 정환이가 같이 진부면에 있는 정형외과로 갔다. 

  한시간쯤 지났을까?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우리들에게 용섭이의 진단결과가 알려졌다. 발등 뼈가 금이 가고, 1~2개의 발가락 뼈가 부러졌단다. 기브스를 해야 하고, 최소한 5주 정도는 지나야 기브스를 풀 수 있다고 한다. 

  아침에 안전구호를 하면 뭣하나? 한순간에 이렇게 다쳐버리니. 마침 용섭이가 다칠 때 나도 옆에서 같이 작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미안했다. ‘다치기 전에 조심하라고 말을 해줄걸.’하는 생각이 들었다. 

  용섭이는 그 뒤 2달이 넘게 기브스를 하고 있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까 수업을 참관할 수는 있었지만, 직접 실습을 하지 못하는 갑갑함을 참아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섭이는 간단한 실습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한옥짓는 과정을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사그러들지 않았던 것이다. 보통 학생 같았으면 학교를 그만 두었을 것인데. 참 대단한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용섭이가 부상당하는 불운이 동료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지만, 우리는 하던 일을 계속 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 사진작가인 용현이가 불편한 마음으로 묵묵히 일하고 있던 우리들의 단체사진을 한 컷 찍었다. 맨앞 왼편에 다리를 다친 용섭이가 목발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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