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진 Jan 21. 2022

<열일곱번째 이야기> 피곤한 월요일을 치목의 즐거움으로

 코로나 때문에 좋아진 것이 딱 한가지 있다면, 미세먼지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덕분에 맑게 갠 가을하늘을 자주 볼 수 있게 되었다. 날씨가 좋아져서 인가? 아니면 코로나로 인한 봉쇄 생활에 지친 탓인가? 친구들과의 약속이 많아졌다. 지난 주 방어회식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금요일 저녁부터 회사 후배들과 식사, 토요일에는 구단에서 같이 일했던 친구들과 실내 포장마차에서 한잔, 그리고 일요일에는 대학 동기들과 골프…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돌아온 평창 한옥학교에서의 월요일은 피로와 싸우는 하루였다. 더군다나 새벽에 인천에서 차를 몰아 강원도에 들어섰을 때,  잔뜩 찌뿌린 하늘이 피곤에 지친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비나 눈이 올 모양이다. 산위에 자욱한 안개가 여기 저기 흩뿌려져 있는 것이, 하늘조차도 월요병을 앓는 모양이다. 나만큼 피곤한 주말을 보낸 날씨였다.


  잔뜩 흐려진 날씨에 이어 나의 기분을 처지게 만든 일이 또 있었다. 바로 강원도 귀농귀촌센터에 상담전화를 한 것때문이다. 제2의 삶을 만들어갈 여러가지 옵션중에 하나가 친환경 농산물을 작목하는 귀농이기 때문이다. 귀농귀촌센터에서 어떤 절차를 거쳐서 귀농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second house로 전월세의 전원주택을 찾고 있어서, 향후 살고 싶은 집이 위치할 지역을 결정하는 기준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싶었다. 귀농한다면 어떤 작물을 심어야 할 지에 따라서, 해당 작물이 잘 자라는 지역에 정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내해준 내용은 충격이었다. 우선 온라인 80시간, 오프라인 60시간의 교육을 받으란다. 궁금하거나 알아야할 사항들이 이 교육과정중에 대부분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난 후 살고 싶은 지역의 귀농귀촌센터나 농업기술센터에 가서 상담을 받아보란다. 몇 군데를 다니면서 상담을 받아보면,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단다. 

  역시 새로운 삶을 만들어간다는 것이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리라. 우리가 사회에 나가기전에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나 대학교까지 십수년동안 교육을 받으니까 말이다. 제2의 삶에 soft-landing을 하기 위해서도 그만큼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잔뜩 찌뿌린 하늘도 그렇고, 귀농귀촌센터와의 상담전화 결과도 그렇고. 월요일날그다지 즐거운 일이 없었다.  하지만 한옥학교에서 진행했던 수장재와 귀틀을 치목하는 작업에 집중하면서, 기분을 전환할 수 있었다. 

수장재는 한옥의 하중을 받아주는 자재가 아니어서, 기둥이나 보, 장혀, 도리 등 골격을 이루는 자재가 설치된 다음에 사용된다. 우리는 나중에 수장재로 추녀를 만들기도 했다. 비록 설치 순위가 빠르지는 않지만, 수장재로 쓸 원목들도 어느 정도 치목을 해놓아야, 필요할 때 바로 가공에 들어갈 수 있다. 

  수장재로 쓸 원목을 치목하기 위해서, 곱자와 수평자를 이용해서 원목의 양쪽 끝면에 중심선을 잡았다. 원목이 대부분 휘어져 있기 때문에, 중심선을 어떤 위치에 잡느냐가 매우 중요했다. 가능하면 4각형의 원목이 제대로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원목의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이 가능하면 적게 들어가도록, 중심선을 배치해야 한다. 

  그런 다음, 중심선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1.7치씩 띄어서, 중앙선과 평행한 두개의 선을 그렸다. 그리고 먹선으로 원목의 양쪽 끝면의 대칭이 되는 선을 원목의 겉면에 그린다. 이것이 전동 톱으로 잘라낼 선이 되는 것이다. 아직 전동 톱의 사용이 서투른 우리들을 위해서, 실수할 것을 대비해 양쪽에 각각 2푼정도의 여유를 둔 것이다. 


  전동 톱을 사용할 때 제일 힘든 것은 허리가 아프다는 것이다. 바닥의 받침대 위에 놓여진 원목을 잘라나가려면, 허리를 구부릴 수밖에 없다. 길게 놓여진 원목을 전동 톱으로 잘라나가다 보면, 허리가 아파온다. 허리가 아파오면, 자세가 비뚤어질 수밖에 없어서 잘라내는 선이 어긋나게 된다. 

  2푼정도의 여유를 두기는 하지만, 전동 톱이 워낙 잘 잘라지기 때문에 여유로 남겨둔  부분까지 파고들기도 했다. 톱이 안쪽으로 파고들어서 자른 면이 지저분해지기는 했지만, 실제 사용해야할 부분까지 파고들어가지 않아서 다행이다. 휴우~

 수장재를 파트너인 일연과 함께 몇 개 깎아내니까, 이번에는 사각정에 쓰일 귀틀을 만들어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귀틀도 수장재와 비슷한 순서대로 작업을 진행하는데, 다만 수장재보다 두꺼운 총 7치를 남기고 깎아냈다. 

  귀틀은 정사각형 모양의 각재이기 때문에, 4면이 서로 직각이 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처음에는 직각을 만드는 작업이 어려웠다. 한면만을 수평으로 다듬는 작업도 어려운데. 4면을 직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기준면을 수평으로 잘 다듬어야 한다. 그리고 난 다음 바로 옆면을 수평으로 다듬으면서, 기준면과 직각이 되는 지를 체크해가면서 치목을 해야 한다.   


  회사에서 책상에 앉아서 머리를 써야만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일과, 이곳 학교에서 몸을 잘 써야 결과물이 나오는 일은 사뭇 다르다. 지난 주말 쉬지도 못하고 피곤한 몸으로 회사에 나갔을 때는,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바로 업무 성과가 바닥을 긴다. 하지만 이곳 한옥학교에서는 원목을 가지고 하는 작업을 감당할 수 있는 체력만 있다면, 지난 주말의 피로도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머리쓰는 일보다는 상대적으로 쉽게 집중할 수 있는 것 같다. 운동삼아 한다는 생각으로 임한다면, 스트레스도 그다지 많지 않다. 

  물론 이곳 학교와 다르게 현장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면, 환경이 다를 것이다. 대가를 받으면서 일한다는 것은, 단순히 배우기만 하면 되는 학교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의 속성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한옥집을 짓는 작업 자체의 즐거움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열여섯번째 이야기> 추억을 만든 방어 회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