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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an 16. 2022

<열여섯번째 이야기> 추억을 만든 방어 회식

  지난 달에 이어 이번 달에도 한옥학교 대목반 전체 회식을 했다. 내가 회장에 취임하면서, 한달에 한번은 어떤 형태로든 회식을 진행하자고 제안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후에는 코로나 때문에 학교에서 피자와 통닭을 주문해서, 간단하게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뭔가 추억에 남길만한 회식으로 만들고 싶었다. 지난 달 첫번째 회식은 우리 10명의 동료들이 서로를 소개하는 자리였다면, 이번에는 좀 더 가까워지는 계기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방어 회식이다. 동해안에 인접한 강원도의 주산물이 생선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방어가 제철이라서 가격이 쌌다. 그리고 방어가 크기 때문에, 10명이 먹을 회를 떠와도 충분했다. 단 하나의 장애요인이 있다면, 누군가가 동해안의 수산시장으로 가서 회를 떠와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그 부담은 나와 총무인 종철의 몫이었다. 우리는 오전 수업만 참가하고 조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동해안 수산센터중에 제일 큰 주문진항으로 차를 몰았다. 평창IC부터 대관령을 넘어서 주문진으로 향하는 영동고속도로는 해발 고도가 700미터에 달한다.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해발 700미터대에서는 멜라토닌 호르몬 분비량이 증가해서, 저지대보다 적게 자도 피로회복 속도가 빠르다고 한다. 사람과 동식물이 가장 살기좋은 고도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영동고속도로에서 보이는 산과 들의 경치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그냥 차를 타고 갔을 뿐인데, 심신의 피로가 싹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주문진 수산시장에서 파는 주종 어류는 방어였다. 방어는 1년 내내 잡히기는 하지만, 가장 맛있는 시기가 겨울이다. 이 시기의 방어는 산란기를 앞두고 크기도 커지고, 몸속에 지방이 많아서 살이 쫄깃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그래서 대방어의 가격은 보통 1월에 가장 비싼데, 이때는 kg당 5만원까지 오르기도 한단다. 보통 8~10kg짜리 대방어 한마리로 15~20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이 나올 정도로 크기가 크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대방어는 보통 5kg이상, 중방어는 3~5kg, 소방어는 3kg미만이다.) 



  그날 주문진 수산센터에서는 대방어보다 약간 작은 것이 10만원, 중방어보다 약간 큰 것이 6만원에 거래되고 있었다. 우리는 중방어보다 약간 큰 것을 두 마리 샀다. 그러자 주인 아주머니가 쥐치 등 작은 물고기들을 서비스로 주셨다. (한달 뒤에 주문진 수산센터에서 우리가 샀던 중방어의 가격을 물어보니까, 10만원이 넘었다. 그만큼 우리는 가격이 좋을 때 샀던 것이다.)

  주문진 수산센터 한켠에는 물고기를 전문적으로 회로 썰어주는 가게가 있었다. 방어 사이즈가 워낙 크고 두마리였기 때문에, 아주머니 두 분이 열심히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30분가까이 소요되었다. 그리고 난 후, 근처의 대형마트에서 생선지리탕과 닭도리탕을 끓이는 데 필요한 야채와 햇반 등을 샀다. 이날 회식을 위해 동료들에게 갹출했던 금액과 거의 일치하는 비용이 소요되었다. 

  이렇게 대방어를 사서 회로 썰고, 탕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쇼핑하는 데 거의 2시간이 소요되었다. 바로 집으로 돌아가서 준비를 해야, 동료들이 학교 끝나고 올 시간에 겨우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종철이와 나는 부리나케 내가 사는 집으로 돌아왔다. 다른 동료들이 살고 있는 집보다 내가 사는 집이 학교에서 가까웠고 거실이 상대적으로 넓어서, 회식장소로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나와 종철이는 집에 도착하자 마자 닭도리탕과 생선지리탕을 끓였다. 요리사 출신인 종철이가 준비를 착착 진행했고, 나는 옆에서 종철이가 요구하는 대로 양파와 대파를 다듬고, 깻잎과 상추를 씻었다. 거의 준비가 끝나갈 무렵인 5시 20분쯤 동료들이 들이닥쳤다. 모두들 방어회를 무척이나 기다렸는지, 학교가 끝나자마자 출발했단다. 막 상을 펴놓은 상태라서 도착한 동료들이 우리가 준비한 회와 김치, 상추와 깻잎, 그리고 초장과 생와사비, 쌈장 등을 밥상위에 늘어 놓았다. 


  이날 회식을 위해서 호권이가 꼬냑을, 그리고 내가 싱글몰트를 한병씩 희사하였다. 그래서 우리들은 방어회와 함께 고급 술을 마시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가? 회식 분위기의 열기는 처음부터 뜨거웠다. 10명이 둘러앉은 상위에서 놓여있던 두병의 고급술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술도 좋았지만, 회도 무척이나 맛있었다. 회는 10명이 다 먹고도 남을 정도로 많았지만, 모두들 회로만 배를 채우겠다는 듯이 바쁘게 젓가락질을 해댔다. 30분쯤 뒤에 선생님이 도착하면서,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었다. 

  방어회는 부위별로 그 맛과 식감이 다르다. 그래서 부위별로 그것을 느끼고 먹었어야 하는데, 모두들 상위에 올라오는 대로 먹어 치우는 바람에, 내가 어떤 부위를 먹었는 지, 또 맛은 어땠는 지 느낄 사이가 없었다. ㅎㅎㅎ 하지만 무척이나 즐거운 분위기였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에,  그것으로 만족했다. 주문진항에서 회를 사오고 탕을 준비했던 종철이와 나는 더없이 기분이 좋았다. 

  회가 거의 사라질 무렵 종철이는 닭도리탕과 생선지리탕을 내놓았다. 그리고 사온 햇반을 모두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원하는 사람은 밥도 같이 먹었다. 그야말로 맛있는 음식의 연속이었다. 특히 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 동료들은 닭도리탕에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그만큼 맛있었던 것이다. 이날 준비한 회와 탕에 대한 동료들의 만족도는 아주 높았고, 그것은 두병의 고급술말고도 20병짜리 소주 한박스를 거의 다 마시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날 나는 술이 취해서 잘 기억이 나질 않았는데, 다음 날 들어보니까 내가 막내 축에 들어가는 유상이와 호권이에게 계속 술을 권했단다. 두 사람이 별로 술을 안마시고 조용히 앉아만 있는 것이 눈에 띄어서, 내가 계속 권했던 것같다. 결국 이 두 사람도 만취 상태가 되었단다. 누구는 거실에 놓여있는 소파에서 잠들고, 누구는 일찍 집으로 돌아가고… 거창했던 이날 회식은 자연스럽게 마무리 되었다. 내가 사회생활을 30년동안 했지만, 이날만큼 회를 마음껏 먹어본 회식은 없었던 것같다. 그만큼 동료들과 주고받은 이야기가 많았고, 서로간의 장벽을 허물 수 있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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