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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Nov 21. 2023

<농촌에서 살아보기 퇴고글>곰취의 생명력

- '농촌에서 살아보기'과정에 대한 열여덟번째 글

  5월 중순인데도 벌써 대낮의 햇볕은 따스하기 보다는 뜨거웠다. 횡성군 둔내면이 해발 700미터에 가까운 고지대임에도 불구하고,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받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한낮의 더운 날씨를 피해서 오전 7시부터 곰취 잎을 따기로 했다. 곰취 밭이 있는 산채마을 팀장님의 맏언니 집에 도착한 시간은 7시가 채 되기 전이었다. 

  우리는 맏언니가 타주는 믹스 커피 한잔을 마시고는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곰취 밭은 족히 2천평은 되어 보였다. 어른 손바닥의 두세 배는 됨직한 커다란 잎들이 밭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곰취 밭의 양쪽으로 낮은 야산이 둘러싸고 있어서, 곰취를 재배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양지보다는 그늘이 있는 밭에서 잘 자라기 때문이다.

  삼일째 잎 따는 작업을 해서 그런지, 동료들의 손놀림이 첫날에 비해 무척 빨라졌다. 키가 1미터 정도 되는 곰취는, 하나의 줄기에서 잎이 3장 달린다. 이중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는 연한 녹색의 잎이 좋은 값을 받는다. 줄기의 15센티미터 정도 하단 부위를 잘라낸 후, 따낸 잎들을 모아 줄기부분을 묶어준다.  

  나도 동료들에 뒤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곰취 잎을 땄다. 작업에 익숙해지니까 수확하기에 적당한 잎들이 쉽게 눈에 들어왔다. 잎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바람에, 앉지를 못한 상태에서 허리를 숙이고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차츰 허리가 아파왔지만, 한 묶음의 곰취를 묶어내곤 했다. 줄기를 꺾어내는 기술도 늘어서, 한번에 여러 줄기를 잡아 채기도 했다.

  동료들은 여러 개의 묶음들을 쉽게 쉽게 만들어 갔다. 나는 동료들이 곰취 밭 사이사이에 묶어놓은 것들을 모아서, 40킬로그램 정도의 잎을 담을 수 있는 큰 비닐 봉투에 차곡 차곡 쌓았다. 그렇게 세시간 동안 우리들은 무려 20개의 비닐 봉투를 채웠다. 첫 날 12봉투도 채우지 못했던 것과는 천지 차이였다. 이제 동료들은 곰취 잎따기의 전문가가 된 것이다. 


  곰취 잎을 따면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전날 수확을 마친 곳을 피해서 작업하려고 했는데, 그곳을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분명 전날 동료들이 샅샅이 따내서, 땅이 보일 정도로 곰취가 줄어든 것을 확인했었다. 그런데 어디에나 잎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눈으로 직접 보기 전에는 믿기 어려운 현상이었다.

   전날 줄기를 꺾어낼 때마다, 기대어 서있던 다른 줄기들이 옆으로 무너지곤 했었다. 그런데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일어섰다. 수확하기에 적합하지 않아서 내버려 두었던 곰취들이, 하루만에 빈 자리를 채운 것이다. 놀라운 생명력이었다. 


  작물의 생명력은 곰취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2022년 장마철에 둔내면에는 비가 유독 많이 왔다. 비가 많이 오고 난 후, 산채마을의 노지 텃밭에 있던 엽채류나 고추 등 열매채소들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였다. 별다른 노력 없이도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동료들은 채소들을 대견해하곤 했다. 우리들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대표님이 한마디 거들었다. 

  “장마철에 물을 흠뻑 빨아들여서, 빨리 성장하는 야채들은 맛이 없어요. 제대로 된 성장 속도에 따라 차근차근 자라야, 속이 알차게 여물어요.”

  겉으로는 빨리 성장하는 야채들이 좋아 보이지만, 웃자라는 야채는 맛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도한 성장을 억제하면서도, 잎이나 열매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가진 비료를 뿌려준다. 인위적으로 작물의 질적 성장을 유도한다. 작물의 생명력을 활용해서, 사람이 원하는 성장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곰취 잎을 솎아 줌으로써 덜 자란 곰취들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처럼. 

  아무리 생각해도 작물의 생명력은 위대한 자연의 힘이다. 기후 변화에 적응하면서 스스로의 힘으로 자란다. 어린 모종이 커갈 때는 영양생장을 하면서 몸집을 키운다. 어느 정도 자란 후에는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 튼실한 열매가 만들어지도록 노력한다. 영양분을 열매에 집중시키는 생식성장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충분히 성장하게 되면, 작물이 만들어내는 맛있는 열매를 수확하면 된다. 이처럼 농부는 자연의 힘에 기대어 약간의 노력을 더해줄 뿐이다. 내가 농부가 되고 나서 얻은 값진 깨달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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