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진 Nov 25. 2023

<초보 농사꾼의 하루>멘토

- 귀농 첫해에 겪은 스물 일곱번째 이야기

  “이렇게 녹물이 많이 나오는 데 왜 청소를 안해줬나요? 토마토가 이 녹물을 먹는 거잖아요!”

  “토마토 곁순을 왜 제거하지 않았어요?”

  “점적 테이프를 토마토 가지에서 너무 멀리 설치했잖아요? 이러면 토마토에 물이 가겠어요?” 

  멘토인 박선생님이 나의 토마토 하우스를 처음 둘러본 날이었다. 도착하자 마자 지적을 하기 시작해서, 당장 해야 할 숙제들을 끝없이 내놓았다. 하우스에 들어가기 전에 하우스 옆에 설치되어 있던 대형 물통과 모터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모터의 뚜껑을 열어서 청소상태를 점검했다. 모터를 수돗물로 씻어내니까, 녹물이 잔뜩 묻어나왔다. 군대에서 점호시간에 관물대 검사를 받는 느낌이었다. ㅎㅎ

  하우스에 들어가서 오른쪽 팔뚝까지 옷을 걷어 부치고는 멀칭 비닐을 살짝 들어올렸다. 그리고 토마토 뿌리를 덮고 있던 흙속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잡고 있던 흙을 꺼내서 반죽하듯이 주물럭거렸다. 

   “흙이 이렇게 푸석푸석한 것은 물이 부족하다는 것이에요. 물을 좀 더 주세요.”

  2023년 6월초 어느 날이었다. 토마토를 정식하고 한달이 채 되지 않았는데, 토마토는 2화방의 꽃을 한참 피우고 있었다. 내가 토마토를 처음 재배하는 탓에, 잘 자라고 있는 지 여부를 알 수가 없었다. 이웃마을에 살고 있는 박선생님을 찾아가 이런 저런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전화를 드리니까, 박선생님이 직접 내 밭으로 오겠단다. 눈으로 토마토 재배 환경과 상태를 파악해보고 싶어했다. 

  하우스에 도착하자 마자 토마토에 물을 주는 모터 청소 상태를 확인하고, 하우스안에 있던 농약의 보관 상태도 체크했다. 그리고 손을 집어넣어서 토마토의 뿌리 자람이 건강한 지 여부도 확인하였다. 초보자가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직접 보여준 것이다. ‘역시 전문가는 다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선생님은 수천여평의 비닐하우스에 토마토를 재배하고 있을 뿐 아니라, 수만평의 노지 밭에 양상추를 비롯한 다양한 작물들도 생산해내고 있었다. 모두 유기농으로 재배를 하면서, 높은 매출을 창출해내고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도움을 받아서 농사를 짓고 있지만, 하루 종일 눈코 뜰새없이 바쁜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6월초 내 밭을 다녀간 뒤로는, 질문이 있으면 주로 카톡을 활용하였다. 토마토에게 어떤 증상이 나타나면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고, 그 처방에 대한 질문을 했다. 박선생님의 답변은 저녁 나절에나 오곤 했다. 낮에는 바빠서 미처 카톡을 열어볼 시간이 없는 듯했다. 거의 2~3일에 한번꼴로 질문을 하면서, 토마토의 유기농 재배방법을 배워 나갔다.  

  순조로울 것만 같았던 토마토 재배는 7월초에 암초를 만났다. 서울에 볼일이 있어서 이틀정도 자리를 비운 사이에 사건이 발생했다. 토마토 잎이 검게 변해가고 있었고, 어떤 것은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너무 놀라서 박선생님에게 급히 카톡을 보냈다. 한참이 지났는데도 답변이 없어서, 전화를 했다. 뉴욕에 출장 와있다고 했다. 

  “잎 곰팡이 병이 심각하네요. 내 집에 가면 유기농 살균제가 있으니까, 가져다가 뿌려주세요.”

  내가 보내준 사진을 보더니, 이렇게 진단과 처방을 해줬다. 나는 즉시 박선생님의 유기농 살균제를 가져와서 뿌려주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난 후에도 살균제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죽어가는 토마토 나무들을 10여그루 뽑아서 버렸다. 다른 나무로 전염되는 것을 막고 위해서였다. 

  살균제의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으면서 나는 속이 타기 시작했다. ‘올해 토마토 열매를 수확할 수는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머리속에 맴돌았다. 첫해에는 최소한 토마토를 수확하고 판매까지, 전체 cycle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올해보다는 내년이후 토마토 재배를 위해서 꼭 전체 과정을 겪어봐야 했다. 이런 나의 불안함은 박선생님에게 메시지를 더욱 자주 보내게 만들었다. 

   “살균제를 쳤는 데도 왜 토마토 잎이 말라 죽어가는 현상이 멈추지 않는 거죠?” 

   “살균제를 짧은 기간내에 여러 번 쳐도 되나요?”

   미국에서 바쁜 출장 여정을 보내고 있던 박선생님으로부터 짜증 섞인 답변이 왔다. 

   “왜 못 알아듣는 거죠? 살균제로 근원적인 치료가 되는 것이 아니고, 현재 수준에서 병이 확산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밖에는 못해요.”

   바쁜데 내가 이런 저런 질문을 해대니까 화가 난 듯했다. 그 뒤로는 꼭 필요할 때만 메시지를 보내게 되었다. 


  정부에서는 초보 농부를 도와주기 위한 멘토링사업을 진행한다. 농업분야의 전문가들을 매칭시켜주고, 정부에서 프로그램 비용을 지원해주는 제도이다. 멘토링을 해주는 사람들은 대부분 해당 작물분야에서 농사를 잘 짓기로 소문난 사람들이다. 그들은 수천평에서 수만평의 농사를 짓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자신들의 농사 일을 하는 것만 해도 하루가 금방 지나갈 것이다. 여기에 멘토링까지 해줄 시간적, 정신적인 여유를 가지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최신의 농업 기술을 배우려면, 현재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배우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멘토를 하는 사람은 멘토링을 할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야 한다. 자신의 농사 일에 얽매여서 바쁘게 지내는 사람에게 가르칠 시간을 빼내기란 쉽지 않다. 차라리 은퇴한 지 얼마 안되었거나, 은퇴를 준비하면서 농사 규모를 줄여가는 분이 멘토로서 적당할 것이다. 

  전문성이 있으면서도 멘토 서비스를 제공해줄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가진 멘토를 만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이것이 귀농을 유도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도움이 되려면, 적합한 멘토를 찾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초보 농부에게는 어려운 배움의 과정이기에, 멘토가 큰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농촌에서 살아보기 퇴고글>곰취의 생명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