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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Dec 01. 2023

<한옥 대목반>한옥의 과학, 왕지 맞춤

- 대목과정의 첫번째 퇴고버전: 스물 두번째 이야기

  외부 실습장에 짓고 있던 한옥 맞배집의 조립작업을 중단했다. 강원도의 추운 겨울날씨가 우리를 실내에 가둬 버렸다. 대신 실내 실습장에 사모정을 지어 나갔다. 실습장의 크기 제약때문에, 사모정의 하단부는 생략하고 지붕을 중심으로 한 상단부만 짓기로 했다.

  2022년 1월 하순경에는 지붕의 서까래를 얹을 수 있는 종도리와 종장혀를 각각 네 개씩 만들었다.  종도리와 종장혀가 서로 잘 결합될 수 있도록 가공할 차례였다. 이들이 맞물리면서, 사모정 지붕을 만드는 사각형 모양의 뼈대가 형성된다. 

  우리는 종도리가 서로 맞물릴 수 있도록, 가공에 필요한 밑그림을 나무 표면에 그려 넣었다. 그런 다음 손 톱을 이용해서 반원형으로 잘라냈다. 

  한옥의 서까래나 마루, 문 같은 가볍고 얇은 자재가 들어가는 곳을 연결할 때는 못을 사용한다. 못으로도 충분히 자재들의 무게를 버텨낼 수 있다. 하지만 기둥이나 보와 같은 무겁고 굵은 자재를 사용하는 곳에서는 못을 쓰지 않고 나무끼리 맞물려서 결합시킨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재의 하중을 더 잘 견뎌낼 수 있기 때문이다. 

  못을 사용해서 결합시키는 경우에는 간단히 못질만 하면 된다. 반면에 나무끼리 결합시키기 위해서는, 맞물리는 면을 가공해줘야 한다. 두꺼운 나무를 가공해줘야 해서 시간이 많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한옥 짓는 프로그램이 시작된 2021년 10월에는 실내에서 작업을 하고 나면 옷이 땀에 흠뻑 젖곤 했다. 한 겨울에 들어서면서는 땀이 나기는커녕 손발에 느껴지는 한기를 참기 어려웠다. 작업을 하다 보면, 난로 주변에서 차가워진 손발을 녹이는 동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쉬는 시간이면 자연스럽게 따뜻한 커피 한잔씩 들고 난로 주위에서 몸을 녹이곤 했다. 

  “받을 도리와 덮을 도리가 서로 딱 맞게 맞물리지가 않아. 왕지 맞춤이 어려운 과정이네.”

  벌써 가공 작업의 마무리 수순에 들어선 종석이가 한마디 했다. 

  “왜 왕지 맞춤이라고 부르지?”

  나에게는 ‘왕지 맞춤’이라는 단어가 생소했다. 왜 그렇게 부르게 되었는 지가 궁금해졌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한국 전통 목조 건축 기술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나무 부재 간의 결구법(結構法)이다. 가장 대표적인 결구법으로는 ‘이음’과 ‘맞춤’이라는 기술이 있다. ‘이음’은 길이방향의 부재를 연결시키는 기법이고, ‘맞춤’은 서로 방향이 다른 부재를 수직이나 수평, 또는 경사진 방향으로 연결할 때 사용된다. 못 사용을 최대한 억제하고 결구법을 이용해서 한옥을 만들어 가는 방법이 목조 건축의 핵심 기술이고, 이 기술에는 조상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져있다.

  ‘왕지 맞춤’은 실제 ‘반턱 맞춤’의 한 형식이었다. ‘반턱 맞춤’은 도리와 같이 직교하는 두개의 수평 부재를 맞물릴 때 사용한다. 부재 두께의 절반 정도를 비슷한 모양으로 가공해서 짜맞추는 것이다. 왕지도리를 반턱 맞춤 형식으로 조립해주면서, ‘왕지 맞춤’이라는 말로 불리는 것 같다.


  네 개의 도리를 가지고 밑에서 받치는 것과 위에서 덮어지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 사모정의 마루에서 잘 보이는 받을 도리는, 겉 피부가 깨끗한 목재를 사용한다. 받을 도리와 덮을 도리에 쓰일 자재를 정하고 난 뒤, 왕지 맞춤을 위한 가공을 했다. 그런 다음 서로 잘 맞물리는 지 체크하면서, 필요한 부분을 추가로 손질을 했다. 

  사각형 모양의 장혀도 도리와 같은 순서에 따라 왕지 맞춤 가공을 진행했다. 장혀는 원형이 아닌 사각형 모양이기 때문에, 왕지 맞춤 가공이 비교적 쉬웠다. 직사각형 부재의 절반을 따내면 되기 때문이다. 

 

  왕지 맞춤 형식으로 나무와 나무가 맞물리면서, 못이나 다른 재료를 쓰지 않고 나무끼리 단단히 엮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였다. 사실 더 신기한 현상은 집을 지어 놓은 다음에 만들어진다. 온도의 변화에 따라 나무가 줄어들거나 부풀면서, 왕지 맞춤을 해놓은 자리가 더 단단하게 맞춰지는 것이다. 날씨에 따라 변화되면서, 맞물린 자리가 하나의 나무와 같이 변형된다. 뿌리가 없는 죽은 나무에 불과하지만, 여전히 나무의 고유한 물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마치 살아있는 나무와 같이 서로 다른 몸체였던 나무가 일체화 되어가는 것이다.

  두 나무가 왕지 맞춤으로 하나의 몸으로 변화됨으로써, 수백년을 견딜 수 있는 건물을 만들어준다. 아파트는 지은 지 30년이 지나면 재건축 이야기가 나오곤 하는 것과도 비교된다. 나무가 만들어내는 한옥의 과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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