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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Dec 06. 2023

<초보 농사꾼의 하루>결혼식

- 귀농 첫해에 겪은 스물 여덟번째 이야기

  김대표님 따님의 결혼식이 야외에서 치러지던 날이었다. 6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비가 오는 날이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이날도 이른 아침부터 먹구름이 간간히 얼굴을 내비치면서,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를 뒷받침해줬다. 결혼할 신랑신부와 가족들뿐 아니라 결혼식 참석자들은 자주 하늘을 쳐다보면서, 제발 비가 오지 말아 달라고 빌었다.

  6월 10일 오후 4시에 있을 결혼식을 위해서, 신랑신부의 친구들과 결혼식을 준비하는 팀이 전날 산채마을로 내려왔다. 이들로 인하여 당일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다. 산채마을의 너른 야외 마당에 결혼식장이 꾸며지기 시작했다. 산채마을의 입구부터 축하 글이 담긴 현수막을 걸고, 손님들이 앉아서 식사할 테이블과 의자들을 배치하고, 야외 마당 바로 옆에 위치한 풀솜대 안에는 부페 음식들을 펼쳐놓고… 결혼식을 전문적으로 준비해주는 회사의 직원들이어서 그런지, 작업은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나는 아침에 장미씨가 문막의 꽃식물원에 주문해놓은 수국꽃 화분 두개를 가지러 갔다. 전년도 ‘농촌에서 살아보기’ 동료들 모임인 ‘아농회’에서 선물하기로 한 화분이었다. 수국꽃이 예쁘기도 하지만, 결혼식이 끝난 후에도 카페에 놓고 계속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준비하였다. 화분이 제법 커서, 차에 간신히 실을 수 있었다. 화분이 넘어져서 꽃이 꺾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횡성까지 고속도로로 40여분을 달려가는 동안 천천히 주행해야만 했다.

  산채마을 카페 입구에 수국꽃 화분 두개를 나란히 가져다 놓았다. 카페 앞 마당에서는 신반장과 농촌에서 살아보기 3기 교육생들이 결혼식 준비를 도와주고 있었다. 그 옆에서는 김대표님과 팀장님이 부지런히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이전에 딸을 결혼시키는 아버지가 축사를 하면서 울먹이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들보다는 딸을 결혼시킬 때, 부모의 마음이 더 서글프고 허전해지는 모양이다. 예로부터 딸은 ‘시집을 보낸다’고 하듯이, 남의 집에 떠나보내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리라. 김대표님과 팀장님이 묵묵히 결혼식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그 얼굴에서는 허허로운 느낌을 받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면서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떠다니는 구름을 내쫓고 싶은 모습이었다.


  결혼식 시간이 다가오면서 속속 손님들이 도착했다. 주차장으로 쓰기로 한 2천여평의 산채마을 옆 감자 밭에는 자동차들이 가득 들어찼다. 도착한 ‘아농회’ 동료들과 반갑게 안부를 주고받았다. 2년채 산채마을에 살면서 알게 된 마을 분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아침에 비라도 내리려는 듯이 찌뿌려 있던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맑아졌다. 하늘도 결혼을 하는 신랑신부를 축하해주는 듯한 따사로운 햇살이었다. 결혼식은 신랑의 축하송을 들으면서 즐거운 분위기로 가득 메워졌다. 신랑의 축하송에 맞추어서, 김대표님과 팀장님이 가볍게 춤을 추기도 했다. 

  결혼식 절차중에서 제일 인상적이었던 것은 신부의 아버지인 김대표님의 축사였다. 

  “첫째 아들을 낳은 뒤 정관 수술을 했어요. 고자가 된 거죠~ 그런데 어느 날 딸이 생긴 것을 알았어요. …… 이렇게 어려운 환경을 뚫고 나온 딸을 축하해주고 싶어요.”

  내가 다녀본 결혼식에서 제일 재미있는 신부 아버지의 축사였다. 하객들이 한바탕 웃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결혼식의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면서,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널찍한 풀솜대에는 음식들이 가득 차려져 있었다. 이미 하객들이 긴 줄로 늘어서 있었다. 350인분의 음식을 준비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오는 바람에 음식이 약간 모자라기도 했다. 하지만 결혼식의 즐거운 분위기를 이어 가기에는 충분하였다. 나는 아농회 동료들과 같은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즐겁게 담소를 나눴다. 

  신랑 신부가 손을 잡고 부모님들과 함께 테이블을 돌아다니면서 인사를 했다. 마을의 이웃 사람들과친척들, 친구들이어서 그런지, 진심으로 축하해주면서 즐거워하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따뜻한 햇볕이 덮고 있는 푸르른 산과 들을 배경으로 서 있는 신랑신부는,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참석한 하객들도 따사로운 날씨속에서 맛있는 음식을 즐겼다.  


  모든 결혼식 프로그램이 마무리되면서 손님들이 하나 둘씩 떠나고, 결혼식장을 꾸미고 있던 테이블, 의자 등을 철거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오후 6시가 가까워진 시간이었다. 그때서야 비가 오기 시작했다. 마치 오늘 결혼한 신랑신부를 축복해주기 위해서 하루 종일 참았다는 듯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하느님이 제 딸의 결혼을 축하해주신 것 같아요. 결혼식을 준비한 딸 부부와 가족들, 그리고 참석자들의 정성이 하늘에 미친 것이겠지요.”

  결혼식이 끝난 뒤에 벌어진 회식자리에서, 팀장님이 한 말이었다. 제발 비가 오지 말아 달라고 기원했던 우리들도 모두 기쁜 마음으로 떨어지는 비를 바라보았다. 무사히 결혼식을 끝낸 우리들의 마음을 개운하게 씻어주면서, 신랑신부의 행복을 빌어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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