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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Dec 22. 2023

<초보 농사꾼의 하루>노지밭 구입하기

- 귀농 첫해에 겪은 스물 아홉번째 이야기

  ‘밭을 언제 구매해야 하나? 얼마나 큰 밭을 사야 하나? 하우스를 지을 거면, 어떻게 생긴 밭을 사야 하나?’

  머릿속으로 이런 질문을 가지고, 2022년부터 1년 반 동안 원하는 밭을 찾아 다녔다. 횡성군 둔내면뿐 아니라 인근의 안흥면, 강진면까지 가보았다. 밭과 가까이 위치해 있는 주택도 동시에 살펴봐야 했다. 그렇지만 내가 원하는 밭과 집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특히 밭과 집이 가까이 붙어있는 매물이 많지 않았다. 

  

  혼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규모는 오백평에서 일천평정도가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농업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최소 삼백평 이상은 있어야 한다.) 이 밭에 토마토 농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비닐하우스를 지어야 했다. 토마토는 노지밭에서 재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비닐하우스를 지으려면, 가능하면 땅의 경사가 작아야 한다. 그리고 토마토는 고랭지 기후에서 잘 되기 때문에, 횡성군에서 해발 고도가 높은 둔내면, 안흥면 등의 땅이 적합했다. 

  나는 집과 밭을 살 때, 귀농창업자금의 지원을 받고 싶었다. 무리해서 수억원의 현금을 마련하는 것보다, 저리의 귀농자금을 받아서 귀농생활에 soft-landing하고자 했다. 그러다 보니까 이 자금을 받는 것이 확정된 이후에 집이나 밭을 사는 것이 좋다.  

  귀농창업자금은 년중 상반기와 하반기, 두차례 신청을 받는다. 신청하고 최종 결정되기까지 3개월 내외가 소요된다. 나는 2023년 6월에 신청해서 8월에 최종 결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 자금은 2023년 12월까지 사용해야 한다는 통보도 같이 받았다. 결국 4개월정도의 사용 기한이 주어진 것이다. (연장신청을 하면, 사용기한을 추가로 6개월 더 늘릴 수는 있다.)

  이곳 둔내면이나 안흥면 일대의 부동산 거래 물량을 감안할 때, 4개월동안 내가 원하는 집과 밭을 동시에 구한다는 것은 굉장히 힘들다. 내가 원하는 기준의 매물이 잘 나오지 않을 뿐 아니라, 나온다 해도 가격을 포함한 여러가지 조건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대표님, 작년에 저희가 옥수수 재배를 했던 밭을 싸게 살수 있을까요?”

  2022년 ‘농촌에서 살아보기’ 과정에서 옥수수를 재배했던 노지 밭이 한때 매물로 나왔었다. 원래 논이어서 습기가 많았던 탓에, 가격이 저렴했었다. 한 해가 지났지만, 밭 주인이 여전히 그때 가격으로 팔 의향이 있는 지 궁금했다. 귀농창업자금 지원 서류에 내가 매입할 의사가 있는 토지의 주소를 적어 넣어야 한다. 그러려면 매입 가능한 곳인지를 사전에 알아봐야 했다. 이때가 2023년 6월 초순이었다.

  “한번 알아볼께요.”

  김대표님이 밭주인에게 연락을 하면서, 노지 밭 매입작업이 시작되었다. 밭 주인이 전년도에 내놓았던 가격으로 팔 의향이 있단다. 주변 노지 밭 시세보다 훨씬 저렴하였다. 나는 여러 날 고민을 했다. 

  ‘정상대로 하면 귀농창업자금을 받고 난 다음에 매입하는 것이 맞는데. 그러려면 몇 달을 기다려야 하고. 그 사이에 이 밭이 다른 사람들에게 팔려버릴 수도 있고.’

  ‘오히려 밭을 미리 구입해 놓으면, 귀농창업자금 심사할 때도 유리하지 않을까? 귀농하려는 의지를 강하게 보여주는 것이니까.’

  그러는 사이에 밭 주인이 다른 일정이 있어서, 산채마을에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서울에 살고 있어서, 둔내면에 자주 오기 힘든 실정이었다. 주인이 온 김에 만나 보기로 했다. 이후에는 밭 계약까지 그다지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농지를 미리 구입해놓으면, 귀농창업자금을 신청할 때 유리한가요?”

  노지 밭 계약을 하기 며칠전에 횡성군의 담당 공무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귀농창업자금 심사기준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아요. 귀농창업자금을 받기로 결정된 다음에 구입하시는 것이 안전하지요.”

  담당 공무원은 오히려 농지 구입 시점을 미루라고 권하였다. 맞는 말이다. 만일 귀농자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면, 나의 호주머니에서 수억원의 큰 돈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나는 계약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원하는 지역에, 이만한 가격수준으로 나오는 물건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귀농자금 심사기준에는 없더라도 귀농할 의사가 강하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노지 밭을 구입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지금도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주변 시세와 비교해서, 그만한 가격의 물건이 없기 때문이다. 자칫 귀농창업자금을 못 받게 될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이 자금을 활용할 수 있었다. 

  2023년 추수를 한 다음에는 내년 농사를 위해서 노지밭 정리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당초 논으로 쓰였을 정도로 습한 곳이었다. 이곳을 작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물이 잘 빠지는 밭으로 만들기 위해서, 1미터 이상 성토작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5톤 트럭으로 200여대 분량의 흙을 쏟아 부을 예정이다. 

  그 앞 단계 작업과정으로, 두꺼운 블록을 이용해서 내 밭 주위를 둘러쳤다. 성토한 흙들이 이웃집 밭이나 구거(溝渠)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내 밭의 중간에 있던 구거에는 이중벽관과 유공관(有孔管)을 묻어서, 밭으로 활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어림잡아 이백평 정도의 밭을 추가로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반듯하게 정리되어가는 넓은 노지 밭을 보면서, 내 가슴이 시원해졌다. 내년에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앞으로 수년동안 친환경재배를 통해서 이 땅을 살아있는 곳으로 만들 생각이다. 비료를 많이 주지 않아도 농작물들이 잘 자라는 비옥한 환경으로 만들 계획이다. 비옥한 땅위에는 토마토 농장이 만들어질 것이다. 친환경으로 재배되어 소비자들에게 건강을 선사하는 토마토 농장이 될 것이다. 동시에 나의 제 2의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곳이 되리라고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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